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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종실록 1권, 정종 1년 3월 13일 갑신 12번째기사 1399년 명 건문(建文) 1년

태상왕이 관음굴에 거둥하여 평주와 온천에 가려다가 되돌아오다. 중 신강을 만나 이방번·이방석의 죽음을 한탄하다

태상왕이 단기(單騎)로 관음굴(觀音窟)에 거둥하여 드디어 평주(平州) 온천(溫泉)에 가려 하다가 가지 못하고 돌아왔다. 태상왕이 장차 행차하려 하자, 임금이 듣고 놀라고 두려워하여, 내관 박영문(朴英文)을 보내어 청하기를,

"부왕(父王)께서 미리 가실 곳을 명령하지 않으시고 갑자기 온천에 가시면, 나라 사람들이 가신 곳을 알지 못하여 놀라고 두려워서 실망할 것입니다. 빌건대, 환궁하셔서 날을 가리어 행차하소서."

하였으나, 윤허하지 아니하였다. 문하부(門下府)에서 상언(上言)하였다.

"지난번에 간신 정도전(鄭道傳)·남은(南誾) 등이 마음대로 나라 권세를 잡고 임금의 총명을 가려서 적서(嫡庶)의 분수를 어지럽혔으므로, 화가 거의 불측한 지경에 이르렀었습니다. 다행히 태상왕께서 막지 못할 천명과 어기지 못할 인심을 아시고, 전하에게 선위(禪位)하시어서, 적서의 분수가 바루어지고, 장유(長幼)가 그 차서를 얻었습니다. 전하께서 태상왕을 섬기시되 시선(視膳)027) 과 문안(問安)을 매일같이 정성과 공경으로 하시고, 태상왕께서는 이미 나라 임금의 아버지가 되시었으니 높기가 비할 데 없습니다. 그 좌우에 모신 자가 마땅히 정성을 다해 계달하여 동정(動靜)에 절도가 있고, 출입에 때가 있도록 하여야 할 것입니다. 신 등이 가만히 들으니, 이달 26일 밤중에 태상왕께서 단기로 관음굴(觀音窟)에 거둥하셨다가 드디어 온천으로 가시려 하였다 하오니, 지금 농사 때를 당하여 그 폐단이 작지 않습니다. 엎드려 바라옵건대, 전하께서는 지성으로 움직이고 의리로 진달하여 그 행차를 중지하도록 청하셔서 신민의 소망에 부합하게 하소서. 또 나라를 다스리는 요법은 호령(號令)이 한 곳에서 나와야 합니다. 태상왕께서 어거하는 거기(車騎)와 복종(僕從)은 마땅히 전하께 아뢰어서, 전하께서 유사에 명하여 준비하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지금 환자(宦者) 이광(李匡)이 태상왕의 명령을 출납하면서 전하께 아뢰지 않고, 또 백관으로 하여금 가는 곳을 알지 못하게 하였으니, 진실로 국가의 대체에 합하지 못합니다. 청하건대, 이광을 유사에 내려 그 까닭을 국문하고 엄하게 징치하여 감계(鑑戒)를 남기시고, 이제부터는 태상왕이 타시는 거기(車騎)와 복종은 모두 전하께 아뢰도록 하소서."

임금이 유윤하고, 이광은 묻지 않았다. 태상왕의 좌우에서 이광을 논죄하여 상소하였다는 말을 듣고서 두려워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 이날 저녁에 환궁하였다. 백운사(白雲寺)의 늙은 중 신강(信剛)이 태상왕을 알현하니, 태상왕이 탄식하며 말하기를,

"이방번(李芳蕃)·이방석(李芳碩)이 다 죽었다. 내가 비록 잊고자 하나 잊을 수가 없구나!"

하니, 신강이 대답하기를,

"원하건대, 성상께서는 슬퍼하지 마십시오. 그의 불행과 성상의 상심(傷心)은 모두 자취(自取)한 것입니다."

하니, 태상왕이 그렇게 여겼다. 임금이 서운관(書雲觀)에 명하여 태상왕이 온천에 거둥할 길일(吉日)을 가려 아뢰게 하니, 태상왕이 크게 기뻐하였다. 임금이 헌수(獻壽)하고자 하니, 태상왕이 듣고 사양하기를,

"자식이 아비에게 연향(宴享)을 드리는 것이 비록 지정(至情)에서 나온 것이나, 내가 목욕하고 돌아오는 것을 기다리는 것이 좋겠다."

하니, 임금이 그대로 따랐다.


  • 【태백산사고본】 1책 1권 8장 B면【국편영인본】 1책 147면
  • 【분류】
    왕실-행행(行幸) / 왕실-국왕(國王) / 정론(政論) / 사상-불교(佛敎) / 사상-도교(道敎)

  • [註 027]
    시선(視膳) : 왕비(王妃)나 왕세자(王世子)가 임금의 수라상을 손수 보살피던 일.

○太上王以單騎, 幸觀音窟, 欲遂如平州溫泉, 不果乃還。 太上王將行, 上聞之驚懼, 遣內官朴英文請曰: "父王不預命所之, 而忽如溫泉, 則國人未知所之, 嘵嘵失望。 乞還宮, 諏日乃行。" 不允。 門下府上言: "往者, 奸臣鄭道傳南誾等, 擅執國柄, 蒙蔽聰明, 以亂嫡庶之分, 禍幾不測。 幸賴太上王, 知天命之不可遏、人心之不可違, 禪于殿下, 俾嫡庶正其分, 長幼得其序, 而殿下奉事太上王, 視膳問安, 日篤誠敬。 太上王旣爲國君之父, 尊莫比焉, 侍其左右者, 宜盡誠啓達, 以致動靜有節, 出入以時。 臣等竊聞今月二十六日夜半, 太上王以單騎, 出幸觀音窟, 欲遂如溫泉, 今當農時, 其弊不細。 伏惟殿下, 動之以誠, 達之以義, 請止其行, 以副臣民之望。 且治國之要, 號令當出于一。 太上王所御車騎僕從, 宜啓于殿下, 殿下命攸司以備焉。 今者宦官李匡, 出納太上王之命, 不啓于殿下, 又令百官不知所之, 固未合於國家之大體。 請下攸司, 鞫問其故, 痛懲垂鑑, 繼自今, 太上王所御車騎僕從, 皆啓于殿下。" 上兪允, 李匡, 置而不問。 太上王左右聞議之疏, 罔不恐懼, 是夕還宮。 白雲寺老僧信剛, 見太上王, 嘆曰: "芳蕃芳碩俱死矣。 予雖欲忘, 不可得也。" 信剛對曰: "願上勿用哀戚。 彼之不幸, 上之傷心, 皆自取也。" 太上王然之。 命書雲觀, 卜太上王幸溫泉吉日以聞, 太上王大悅。 上欲獻壽, 太上王聞之, 辭曰: "子之享父, 雖出至情, 待予浴還可也。" 上從之。


  • 【태백산사고본】 1책 1권 8장 B면【국편영인본】 1책 147면
  • 【분류】
    왕실-행행(行幸) / 왕실-국왕(國王) / 정론(政論) / 사상-불교(佛敎) / 사상-도교(道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