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평의사사에서 한양으로 도읍 정할 것을 아뢰니 가납하다
도평의사사에서 상신(上申)하였다.
"좌정승 조준·우정승 김사형 등은 생각하건대, 옛날부터 임금이 천명을 받고 일어나면 도읍을 정하여 백성을 안주시키지 않음이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요(堯)는 평양(平陽)에 도읍하고, 하(夏)나라는 안읍(安邑)에 도읍하였으며, 상(商)나라는 박(亳)에, 주(周)나라는 풍호(豊鎬)에, 한(漢)나라는 함양(咸陽)에, 당나라는 장안(長安)에 도읍하였는데, 혹은 처음 일어난 땅에 정하기도 하고, 혹은 지세(地勢)의 편리한 곳을 골랐으나, 모두 근본되는 곳을 소중히 여기고 사방을 지정하려는 것이 아님이 없었습니다. 우리 나라는 단군 이래로 혹은 합하고 혹은 나누어져서 각각 도읍을 정했으나, 전조 왕씨가 통일한 이후 송악에 도읍을 정하고, 자손이 서로 계승해 온 지 거의 5백 년에 천운이 끝이 나서 자연히 망하게 되었습니다. 삼가 생각하옵건대, 전하께서는 큰 덕과 신성한 공으로 천명을 받아 한 나라를 차지하시어 이미 또 제도를 고쳐서 만대의 국통(國統)을 세웠으니, 마땅히 도읍을 정하여 만세의 기초를 잡아야 할 것입니다. 그윽이 한양을 보건대, 안팎 산수의 형세가 훌륭한 것은 옛날부터 이름난 것이요, 사방으로 통하는 도로의 거리가 고르며 배와 수레도 통할 수 있으니, 여기에 영구히 도읍을 정하는 것이 하늘과 백성의 뜻에 맞을까 합니다."
왕지(王旨)로 아뢴 대로 하도록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2책 6권 14장 A면【국편영인본】 1책 70면
- 【분류】왕실-행행(行幸) / 역사-고사(故事)
○都評議使司所申: "左政丞趙浚、右政丞金士衡等竊惟, 自古王者受命而興, 莫不定都, 以宅其民。 故堯都平陽, 夏都安邑, 商都亳, 周都豐鎬, 漢都咸陽, 唐都長安。 或因初起之地, 或擇形勢之便, 無非所以重根本而鎭四方也。 惟我東方, 檀君以來, 或合或分, 各有所都, 及前朝王氏統合之後, 都于松嶽, 子孫相傳, 殆五百年, 運祚旣終, 自底于亡。 恭惟殿下, 以盛德神功, 受天之命, 奄有一國, 旣更制度, 以建萬世之統, 宜定厥都, 以立萬世之基。 竊觀漢陽, 表裏山河, 形勢之勝, 自古所稱, 四方道里之均, 舟車所通。 定都于玆, 以永于後, 允合天人之意。" 王旨依申。
- 【태백산사고본】 2책 6권 14장 A면【국편영인본】 1책 70면
- 【분류】왕실-행행(行幸) / 역사-고사(故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