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소를 도읍으로 하자는 정당 문학 정총의 논의
정당 문학(政堂文學) 정총(鄭摠)이 말하였다.
"도읍을 정하는 것은 옛날부터 어려운 일입니다. 천하의 큰나라 〈중국 〉도 관중(關中)이니 변량(汴梁)이니 금릉(金陵)이니 하는 두어 곳 뿐인데, 어찌 우리 작은 나라로서 곳곳에 있겠습니까? 주나라가 관중(關中)에 도읍하였고, 진(秦)나라가 대신하여 관중(關中)에 도읍하였으며, 진 나라가 망하고 한 나라가 대신해도 역시 거기에 도읍하였으며, 변량은 5대(代)가 도읍하고 금릉은 6조(朝)가 도읍한 곳입니다. 도선(道詵)이 말하기를, ‘만약 부소에 도읍하면 세 나라 강토를 통일해 가질 수 있다.’고 했습니다. 전조는 시조 왕건(王建) 이전 3국이 정립할 때부터 3국을 통일한 이후에 단지 개성에 도읍하였는데, 왕씨가 5백 년에 끝나는 것은 운수(運數)이며 지리에 관련시킬 것이 아닙니다. 만약에 주 나라·진 나라·한 나라가 서로 계속해 가면서 한 곳에 도읍한 것을 보면, 비록 개성이라도 해가 없을 것 같습니다. 구태여 여기를 버리고 다른 곳을 구하려면, 다시 널리 찾아보는 것이 좋겠습니다. 무악의 터는 명당이 심히 좁고 뒷 주룡(主龍)이 낮으며, 수구(水口)가 쌓이지 않았으니, 길지(吉地)라면 어찌 옛사람이 쓰지 않았겠습니까?
- 【태백산사고본】 2책 6권 12장 A면【국편영인본】 1책 69면
- 【분류】왕실-행행(行幸) / 사상-토속신앙(土俗信仰)
○政堂文學鄭摠曰: "定都之所, 自古爲難。 且以天下之大, 曰關中、曰汴梁、曰金陵數地而已, 豈我小邦處處有之? 周都關中, 秦代之, 仍都關中, 秦亡漢代之, 亦都其地。 汴梁, 五代都之, 金陵則六朝所都。 道詵謂: ‘若都扶蘇, 統有三土。’ 前朝自始祖王建已前, 三國鼎峙, 統三以後, 只都開京。 王氏之終於五百年, 以其運數, 而不必係於地德。 若以周、秦、漢相繼而都一地觀之, 雖開京似無害也。 苟舍是而他求, 則更使廣覓之, 斯可矣。 毋岳之地, 明堂甚狹, 主山陷溺, 水口無關鏁。 夫豈吉地而古人不用之乎?"
- 【태백산사고본】 2책 6권 12장 A면【국편영인본】 1책 69면
- 【분류】왕실-행행(行幸) / 사상-토속신앙(土俗信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