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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조실록 6권, 태조 3년 8월 11일 무인 1번째기사 1394년 명 홍무(洪武) 27년

왕이 무악을 둘러보고 유숙하다. 천도할 장소에 대한 분분한 의론

임금이 무악(毋岳)에 이르러서 도읍을 정할 땅을 물색하는데, 판서운관사 윤신달(尹莘達)과 서운 부정 유한우(劉旱雨) 등이 임금 앞에 나와서 말하였다.

"지리의 법으로 보면 여기는 도읍이 될 수 없습니다."

이에 임금이 말하였다.

"너희들이 함부로 옳거니 그르거니 하는데, 여기가 만일 좋지 못한 점이 있으면 문서에 있는 것을 가지고 말해 보아라."

신달 등이 물러가서 서로 의논하였는데, 임금이 한우를 불러서 물었다.

"이곳이 끝내 좋지 못하냐?"

한우가 대답하였다.

"신의 보는 바로는 실로 좋지 못합니다."

임금이 또 말하였다.

"여기가 좋지 못하면 어디가 좋으냐?"

한우가 대답하였다.

"신은 알지 못하겠습니다."

임금이 노하여 말하였다.

"네가 서운관이 되어서 모른다고 하니, 누구를 속이려는 것인가? 송도(松都)의 지기(地氣)가 쇠하였다는 말을 너는 듣지 못하였느냐?"

한우가 대답하였다.

"이것은 도참(圖讖)으로 말한 바이며, 신은 단지 지리만 배워서 도참은 모릅니다."

임금이 말하였다.

"옛사람의 도참도 역시 지리로 인해서 말한 것이지, 어찌 터무니없이 근거 없는 말을 했겠느냐? 그러면 너의 마음에 쓸만한 곳을 말해 보아라."

한우가 대답하였다.

"고려 태조송산(松山) 명당(明堂)에 터를 잡아 궁궐을 지었는데, 중엽 이후에 오랫동안 명당을 폐지하고 임금들이 여러 번 이궁(離宮)으로 옮겼습니다. 신의 생각으로는 명당의 지덕(地德)이 아직 쇠하지 않은 듯하니, 다시 궁궐을 지어서 그대로 송경(松京)에 도읍을 정하는 것이 좋을까 합니다."

임금이 말하였다.

"내가 장차 도읍을 옮기기로 결정했는데, 만약 가까운 지경에 다시 길지(吉地)가 없다면, 삼국 시대의 도읍도 또한 길지가 됨직하니 합의해서 알리라."

하고, 좌시중 조준(趙浚)·우시중 김사형(金士衡)에게 일렀다.

"서운관이 전조 말기에 송도의 지덕이 이미 쇠했다 하고 여러 번 상서하여 한양(漢陽)으로 도읍을 옮기자고 하였었다. 근래에는 계룡산이 도읍할 만한 땅이라고 하므로 민중을 동원하여 공사를 일으키고 백성들을 괴롭혔는데, 이제 또 여기가 도읍할 만한 곳이라 하여 와서 보니, 한우 등의 말이 좋지 못하다 하고, 도리어 송도 명당이 좋다고 하면서 서로 논쟁을 하여 국가를 속이니, 이것은 일찍이 징계하지 않은 까닭이다. 경 등이 서운관 관리로 하여금 각각 도읍될 만한 곳을 말해서 알리게 하라."

이에 겸판서운관사 최융(崔融)윤신달·유한우 등이 상서하였다.

"우리 나라 내에서는 부소(扶蘇) 명당이 첫째요, 남경(南京)이 다음입니다."

이날 저녁에 임금이 무악 밑에서 유숙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2책 6권 10장 B면【국편영인본】 1책 68면
  • 【분류】
    왕실-행행(行幸) / 정론(政論) / 사상-토속신앙(土俗信仰)

○戊寅/上至毋岳, 相定都之地。 判書雲觀事尹莘達、書雲副正劉旱雨等進曰: "以地理之法觀之, 此地不可爲都。" 上曰: "汝等妄相是非。 此地若有不可, 則考諸本文以聞。" 莘達等退, 相與論議。 上召旱雨問之曰: "此地竟不可乎?" 對曰: "以臣所見, 實爲不可。" 上曰: "此地旣不可, 何地爲可?" 旱雨對曰: "臣不知。" 上怒曰: "汝爲書雲觀, 謂之不知, 欺誰歟? 松都地氣衰旺之說, 汝不聞乎?" 旱雨對曰: "此圖讖所說。 臣但學地理, 未知圖讖。" 上曰: "古人圖讖, 亦因地理而言, 豈憑虛無據而言之? 且言汝心所可者。" 旱雨對曰: "前朝太祖松山明堂, 作宮闕, 而中葉已後, 明堂久廢, 君王屢徙離宮。 臣疑明堂, 地德不衰, 宜復作闕, 仍都松京。" 上曰: "予將決意遷都。 若曰近境之內, 更無吉地, 則三國所都, 亦爲吉地, 宜合議以聞。" 乃謂左侍中趙浚、右侍中金士衡曰: "書雲觀在前朝之季, 謂松都地德已衰, 數上書請遷漢陽, 近以雞龍爲可都, 動衆興役, 勞擾生民, 今又以此地爲可都, 及其來觀, 則旱雨等曰: 不可, 反以松都明堂爲可, 互相爭論, 以誣國家, 是曾無所懲故也。 卿等趣令書雲員吏, 各陳可都之地以聞。" 兼判書雲觀事崔融尹莘達劉旱雨等上書以爲: "一國之內, 扶蘇明堂爲上, 南京次之。" 是夕, 上次于毋岳下。


  • 【태백산사고본】 2책 6권 10장 B면【국편영인본】 1책 68면
  • 【분류】
    왕실-행행(行幸) / 정론(政論) / 사상-토속신앙(土俗信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