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제가 힐문한 조목에 대해 답사하는 표문
중추원 학사(中樞院學士) 남재(南在)를 보내어 표문(表文)을 중국의 서울에 올리게 하였다.
"계명(誡命)030) 은 정성스럽게 밝게 보여주셨고, 천위(天威)는 지척(咫尺)에서 멀지 않으니, 깊이 두려워하여 사정을 호소하게 됩니다. 그윽이 생각하옵건대, 용렬하고 못난 자질로써 궁벽하고 먼 땅에 처(處)하였사오나, 성현(聖賢)의 교훈[垂訓]을 대강 들었으므로 중화(中華)를 마땅히 높일 줄을 알게 되었습니다. 홍무(洪武) 21년(1388)년에 신우(辛禑)와 최영(崔瑩) 등이 군대를 함부로 일으켜 요동(遼東)으로 향하고자 했으며, 25년(1392)에 왕요(王瑤)031) 와 정몽주 등이 신우의 부정한 뜻을 계승하여 장차 상국(上國)을 범하려 하므로, 신(臣)이 온 나라 신민(臣民)들에게 효유(曉諭)하여, 오랑캐가 중화(中華)를 소란하게 할 수가 없으며,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범할 수 없다고 말하니, 여러 사람이 모두 그 역리(逆理)와 순리(順理)를 알게 되고, 저들이 모두 그 죄에 자복(自服)하였으니, 다만 상천(上天)이 밝게 알 뿐이 아니오라, 실로 황제께서 환하게 보신 바입니다. 여러 번 윤허(允許)하신다는 명령을 받들었으므로, 항상 보답하려는 정성을 품고, 삼가 세시(歲時)에 예절을 차려서 직공(職貢)을 게을리 함이 없었습니다. 지금 삼가 수조(手詔)를 받들었사온데, 그 한 항목에, ‘지난번에 절동(浙東)·절서(浙西)의 백성 중에서 불량한 무리들이 그대를 위하여 소식을 보고한다.’ 하고, 한 항목에, ‘사람을 보내어 요동(遼東)에 이르러 포백(布帛)·금은(金銀)의 종류를 가지고 거짓으로 행례(行禮)함으로써 사유(事由)로 삼았으나, 마음은 우리 변장(邊將)을 꾀는 데 있다.’ 하고, 한 항목에, ‘최근에 은밀하게 사람을 보내 여진(女眞)을 말로 꾀어서 가솔 5백여 명을 데리고 몰래 압록강(鴨綠江)을 건너갔다..’ 하고, 한 항목에, ‘입으로는 신하라 일컫고 들어와 조공(朝貢)을 한다 하면서도, 매양 말을 가져올 때마다 말 기른 사람[豢馬]으로 하여금 이를 뽑아 보내게 하니, 말은 모두 느리고 또한 타서 피로한 것들이라.’ 하고, 한 항목에, ‘국호(國號)를 고치는 일절(一節)은 사람을 보내어 조지(詔旨)를 청하므로, 그대의 마음대로 하도록 허용했는데, 조선(朝鮮)을 계승하여 그대가 후손이 되게 하였소. 사자(使者)가 이미 돌아간 후에는 오래도록 소식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삼가 이것은 왕요(王瑤)가 스스로 흔단(釁端)을 만들었으므로, 나라 사람들이 그의 한 짓을 옳게 여기지 아니하여, 그를 집에 물러가 있게 하여 그 생명을 보전하게 하되, 처자(妻子)와 한 곳에서 그전처럼 단란하게 살고, 조석의 봉양(奉養)도 평상시와 같게 하였는데, 왕요가 비록 지극히 혼암(昏暗)하지마는 어찌 스스로 반성하지 않겠습니까? 이것은 곧 성은(聖恩)이 미치는 바이므로 신의 마음에 다른 뜻이 없음을 밝힐 수 있습니다.
또 절동(浙東)·절서(浙西)의 백성은 소식을 본디부터 서로 보고한 일이 없었는데, 하물며 왕씨(王氏)가 있었던 시기의 정상(情狀)이 신에게 무슨 상관이 있겠습니까? 요동(遼東)에 행례(行禮)하는 일 같은 것은, 이것도 또한 상국(上國)을 경앙(景仰)032) 하여 사신(使臣)이 왕래하는 때에 빈주(賓主)의 교접(交接)하는 의식이 있었던 것이니, 예의(禮儀)에 있어서 그렇게 한 것이온데, 꾀는 일이 어찌 감히 있었겠습니까? 여진(女眞)은 동녕부(東寧府)에 예속되어 이미 모두 군사가 되었으므로 마땅히 보내게 되었는데, 어찌 사람을 보내서 말하여 꾀겠습니까? 다만 요동 도사(遼東都司)가 탈환불화(脫歡不花)를 데려갈 때에, 그 관하(管下)의 인민들이 혹은 즉시 따라가지 않은 사람이 있는 것은 저들이 그 곳에서 편안히 살고 있기 때문이고, 신이 강제로 머물러 있게 한 것이 아니오며, 우리 나라에는 이바지할 것이 없으나 각자가 스스로 그 구업(舊業)을 지키고 있을 뿐입니다. 삼가 수조(手詔)의 내용에 따라 탈환불화(脫歡不花)의 본래 관하(管下)의 인민으로 그곳에 편안히 살면서 즉시 따라가지 않은 사람을, 사람을 보내어 조사해서 현재의 수효대로 발송(發送)하겠습니다.
요동(遼東)에는 이전에 본국(本國)033) 의 인민이 가서 요동에 의탁하고 있었으므로, 고향과 친척들을 생각하여 혹은 다시 도망해 와서 산골짜기 사이에 몰래 숨어 살고 있었는데, 신이 처음에는 절차(節次)를 알지 못하여 요동(遼東)에서 온 자문(咨文)에 의거하여 사람을 보내어 모두 체포하여 오게 하였습니다. 신은 생각하기를, 비록 본 계통은 소방(小邦)의 백성에게 나왔지마는, 그 성명(姓名)이 관군(官軍)034) 의 명부에 기재된 사람은 마땅히 용납해 두지 못하겠으므로 일찍이 벌써 돌려보냈으며, 그 도망해 와서 잡지 못한 사람은, 여진인(女眞人)인지 고려인(高麗人)인지 알지 못하나, 이미 도망한 군사에 관계되므로 아직 잡지 못하고, 몰래 숨어 간 곳을 살피지 못했사오나, 지금 사람을 파견하여 널리 찾아 체포하도록 하였으니 곧 날짜를 정해 보내겠습니다. 사정이 급박하여 놀라고 두려워서 먼저 이 사유를 아뢰옵니다.
공마(貢馬)가 좋지 않다는 것은 곧 토성(土性)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오며, 조처하여 출판(出辦)한 수효는 많았으나 느리고 약한 말도 혹 있었을 것입니다.
조지(詔旨)에 또 말씀하기를, ‘어찌 그대 고려는 전쟁의 재앙을 일으키는 데 급급한가.’ 하였사오니, 삼가 이 말은 진실로 황공하옵니다. 신이 비록 못나고 어리석지마는 광망(狂妄)한 데까지는 이르지 않았습니다. 황제의 덕을 입으면서도 그 덕을 꺼리고, 다른 사람의 허물을 책망하면서도 그 허물을 본받는 것은 진실로 인정(人情)이 아니온데, 어찌 이런 도리가 있겠습니까? 신이 만약 〈황제를〉 속인다면 하늘이 실로 굽어 살피실 것입니다.
생각하옵건대, 신은 일신(一身)의 미력(微力)으로써 죽음을 무릅쓰는 계책을 내어 맨 먼저 대의(大義)를 일으켜 화란(禍亂)의 발단을 근절했사오니, 진실로 대국(大國)을 섬기는 충성에서 말미암은 것이지만, 여러 소인(小人)들의 원망을 많이 받았습니다. 전일에 윤이(尹彝)·이초(李初) 등이 몰래 조정(朝廷)035) 에 가서 시비(是非)를 거짓 꾸몄사오나, 다행히 황제의 살피심을 입어 신의 심정을 통할 수 있었습니다. 이미 황제의 고명(高明)한 세상을 만나서 의뢰(依賴)를 삼고자 하므로, 비록 거짓의 참소가 있더라도 스스로 근심하지 아니하온대, 어찌 비단처럼 꾸민 참소의 말이 또 황제의 귀에 들어갈 줄을 생각하였겠습니까? 매양 삼가 공봉(供奉)하는 일에 힘을 다했사온대, 홀로 무슨 마음으로 모시(侮視)하고 흔단(釁端)을 일으키겠습니까? 하늘의 꾸지람을 만났으니 땅에서 스스로 용납할 수가 없습니다. 삼가 바라옵건대, 황제 폐하께서 해와 달 같은 총명을 드리우시고 하늘과 땅 같은 도량을 넓히시어, 참소하는 사람이 사방의 나라를 뒤섞어 어지럽힘을 살피시고, 소신(小臣)이 한 마음[一心]을 가짐을 어여삐 여겨, 특별히 큰 은혜를 내리어 먼 지방의 풍속을 편안하게 하시면, 신은 삼가 마땅히 신하의 절개를 시종여일하게 더욱 굳게 지키고, 황제의 연세(年歲)는 강녕(康寧)하시라고 배(倍)나 축원하겠습니다."
- 【태백산사고본】 1책 3권 10장 A면【국편영인본】 1책 44면
- 【분류】외교-명(明) / 어문학-문학(文學)
- [註 030]계명(誡命) : 황제의 경계하는 명령.
- [註 031]
왕요(王瑤) : 공양왕.- [註 032]
경앙(景仰) : 덕을 사모하여 우러러봄.- [註 033]
○乙亥朔/遣中樞院學士南在, 奉表帝京曰:
誡命昭示於丁寧, 天威不違於咫尺。 玆深悚懼, 用切籲呼。 竊念以庸陋之資, 處僻遠之地, 然粗聞聖賢之垂訓, 故得知華夏之當尊。 洪武二十一年, 辛禑、崔瑩等, 妄興師旅, 欲向遼東, 二十五年, 王瑤、鄭夢周等繼禑邪志, 將犯上國。 臣曉諭一國臣民, 以謂夷不可以亂華, 下不可以犯上。 衆皆知其逆順, 彼咸服其罪辜。 非但上天之明知, 實惟聖鑑之灼見。 屢奉曰兪之命, 常懷圖報之誠。 謹修歲時, 無怠職貢。 今者, 欽奉手詔節該, 一款, "曩者說兩浙民中不良者, 爲爾報消息。" 一款, "遣人至遼, 以布帛金銀之類, 假以行禮爲由, 意在誘我邊將。" 一款, "近者暗遣人說誘女眞, 帶家小五百餘名, 潛渡鴨綠。" 一款, "口稱稱臣入貢, 每以馬至, 令豢馬者調之, 馬皆駑下, 亦皆乘乏勞倦。" 一款, "更國號一節, 遣人請旨, 許爾自爲, 或祖朝鮮, 爾爲苗裔。 使者旣還, 杳無音信。" 欽此。 有王瑤自構其逆釁, 致國人不義其所爲, 退處于家, 獲保其命, 妻子之團圝自若, 朝夕之奉養如常。 瑤雖至昏, 豈不自反? 玆乃聖恩之所及, 可明臣心之無他。 且夫兩浙之民, 消息本無相報。 況在王氏之日, 情狀何與於臣? 至若行禮於遼東, 是亦景仰於上國。 當使介往來之際, 有賓主交接之儀, 在禮則然, 於誘何敢? 其有女眞隷于東寧, 旣皆作軍而當差。 安肯遣人而說誘? 但遼東都司起取脫歡不花之時, 其管下人民, 或有不卽隨行者。 由彼安土, 非臣勒留, 無所供於我邦, 各自守其舊業。 欽依手詔事意, 將脫歡不花原管人民安土不卽隨行者, 差人取勘見數, 發送遼東。 曩有本國人民往投遼東, 懷思鄕土及親戚, 或復逃來, 潛隱山谷之間。 臣初不知節次, 據遼東來文, 差人根緝獲到。 臣以謂雖其本系出於小邦之民, 然其姓名載於官軍之籍, 不宜容置, 曾已發還。 其逃來未獲者, 不知女眞、高麗, 旣係逃軍, 不行出首, 未審潛隱去處。 今爲差人, 遍行搜捕, 隨卽起解。 情迫驚恐, 先此奏陳。 抑貢馬之非良, 迺土性之所致。 措辦之數斯夥矣, 駑下之材或有焉。 詔旨又曰: "奈何爾高麗, 速構兵殃?" 欽此, 誠惶誠懼。 臣雖鄙愚, 不至狂妄。 蒙上之德而忌其德, 責人之尤而效其尤, 固非人情, 安有是理? 臣如欺罔, 天實照臨。 念臣以一身之微, 出萬死之計, 首倡大義, 以絶禍萌, 良由事大之忠, 多取群小之怨。 前者尹彛、李初等, 潛赴朝廷, 妄搆是非, 幸蒙睿照, 得達卑情。 旣遭聖明而以爲依歸, 雖有讒構而不自憂恤, 豈圖貝錦又干冕旒! 每盡力於虔供, 獨何心而侮釁! 逢天之譴, 無地自容。 伏望皇帝陛下, 垂日月之明, 擴乾坤之度, 察讒人交亂四國, 憐小臣永肩一心, 特霈洪恩, 俾安遠俗。 臣謹當臣節益堅於終始, 皇齡倍祝於康寧。
- 【태백산사고본】 1책 3권 10장 A면【국편영인본】 1책 44면
- 【분류】외교-명(明) / 어문학-문학(文學)
- [註 0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