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도 후보지인 계룡산으로 행차 도중 천도에 대한 의견을 말하다
이른 새벽에 임금이 거둥하려고 수레를 준비하도록 명하니, 지중추원사(知中樞院事) 정요(鄭曜)가 도평의사사의 계본(啓本)008) 을 가지고 서울에 와서, 현비(顯妃)가 병환이 나서 편치 못하고, 평주(平州)와 봉주(鳳州) 등지에 또 초적(草賊)이 있다고 아뢰므로, 임금이 기뻐하지 않으면서 말하기를,
"초적(草賊)은 변장(邊將)의 보고가 있던가? 어떤 사람이 와서 알리던가?"
하니, 정요는 대답할 말이 없었다. 임금이 말하기를,
"도읍을 옮기는 일은 세가 대족(世家大族)들이 함께 싫어하는 바이므로, 구실(口實)로 삼아 이를 중지시키려는 것이다. 재상(宰相)은 송경(松京)에 오랫동안 살아서 다른 곳으로 옮기기를 즐겨하지 않으니, 도읍을 옮기는 일이 어찌 그들의 본뜻이겠는가?"
하니, 좌우(左右)에서 모두 대답할 말이 없었다. 남은(南誾)이 아뢰기를,
"신 등이 외람히 공신(功臣)에 참여하여 높은 지위에 은혜를 입었사오니, 비록 새 도읍에 옮기더라도 무엇이 부족한 점이 있겠사오며, 송경(松京)의 토지와 집은 어찌 아까울 것이 있겠습니까? 지금 이 행차는 이미 계룡산(鷄龍山)에 가까이 왔사오니, 원하옵건대, 성상께서는 가서 도읍을 건설할 땅을 보시옵소서. 신 등은 남아서 초적(草賊)을 치겠습니다."
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도읍을 옮기는 일은 경들도 역시 하고 싶지 않을 것이다. 예로부터 왕조(王朝)가 바뀌고 천명(天命)을 받는 군주는 반드시 도읍을 옮기게 마련인데, 지금 내가 계룡산(鷄龍山)을 급히 보고자 하는 것은 내 자신 때에 친히 새 도읍을 정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후사(後嗣) 될 적자(嫡子)가 비록 선대의 뜻을 계승하여 도읍을 옮기려고 하더라도, 대신(大臣)이 옳지 않다고 저지(沮止)시킨다면, 후사(後嗣) 될 적자(嫡子)가 어찌 이 일을 하겠는가?"
하고, 이에 명하여 어가(御駕)를 돌리게 하였다. 남은 등이 이민도(李敏道)로 하여금 점을 치게 하니,
"현비의 병환도 반드시 나을 것이요, 초적(草賊)도 또한 염려할 것이 없습니다."
하므로, 서로 모여서 의논하고 가기를 청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그렇다면 반드시 정요를 처벌한 뒤에 가자."
하니, 남은이 아뢰기를,
"어찌 정요를 처벌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하였다. 임금이 마침내 길을 떠나 청포원(靑布院)의 들에 이르러 유숙(留宿)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책 3권 2장 B면【국편영인본】 1책 40면
- 【분류】왕실-행행(行幸) / 사상-토속신앙(土俗信仰) / 변란(變亂)
- [註 008]계본(啓本) : 임금에게 상주(上奏)하는 글월.
○丙子朔/昧爽, 上命駕, 知中樞院事鄭曜齎都評議使司啓本, 來自京城, 以顯妃未寧, 平州、鳳州等處, 又有草賊聞。 上不悅曰: "草賊有邊將報歟? 何者來告歟?" 曜無以對。 上曰: "遷都, 世家大族所共惡, 欲(籍)〔藉〕 以止之也。 宰相久居松京, 安土重遷, 遷都豈其意耶?" 左右皆無以對。 南誾曰: "臣等濫與功臣, 蒙恩上位, 雖遷新邑, 有何不足, 松京田宅, 豈足惜耶? 今此行已近雞龍, 願上往觀營都之地, 臣等留擊草賊。" 上曰: "遷都, 卿等亦不欲也。 自古易姓受命之主, 必遷都邑。 今我急觀雞龍者, 欲於吾身親定新都也。 孺子雖欲繼志遷都, 大臣沮以不可, 則孺子何能哉?" 乃命還駕。 誾等令李敏道卜之, 曰: "病必瘳, 草賊亦不足慮。" 相會議請往, 上曰: "然則必罪曜, 而後行。" 誾曰: "何必罪之!" 上遂行, 至靑布院之郊留宿。
- 【태백산사고본】 1책 3권 2장 B면【국편영인본】 1책 40면
- 【분류】왕실-행행(行幸) / 사상-토속신앙(土俗信仰) / 변란(變亂)