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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조실록 1권, 총서 21번째기사

도조가 죽자 어린 교주 대신 임시로 환조 이자춘이 관직을 계승하다

지정(至正) 2년(1342) 임오 7월 24일에 도조가 훙(薨)하였다. 함흥부(咸興府)예안부(禮安部) 운천동(雲天洞)에 장사지내니, 곧 의릉(義陵)이다. 탑사불화(塔思不花)가 사유를 갖추어 개원로(開元路)에 사람을 보내어 알리니, 개원로에서 조감(照勘)해 보매, 탑사불화는 정실(正室)의 아들이므로, 탑사불화로 하여금 관직을 이어받게 하였다. 9월에 탑사불화가 돌아가[卒]니, 아들 교주(咬住)가 어리[幼]었다. 나해(那海)가, 그 어머니 조씨(趙氏)고려의 왕족(王族)임으로써 그의 형 완자불화(完者不花)와 함께 모두 원윤(元尹)010)정윤(正尹)011) 이 되고, 또 조 총관(趙摠管)의 세력을 믿고 드디어 분수에 넘치는 마음을 내어, 그 애고(哀苦) 중을 틈타 선명(宣命)과 인신(印信)을 훔쳐 가니, 관내(管內)의 군민(軍民)들이 모두 노하기를,

"조씨는 적실(嫡室)이 아닌데, 나해(那海)가 어찌 아버지의 관직을 이어받을 수가 있느냐?"

하였다. 환조(桓祖)탑사불화(塔思不花)의 아내 박씨(朴氏)에게 이르기를,

"형수께서 스스로 개원로(開元路)에 가서 변명하십시오."

하였다. 박씨안변(安邊) 사람 득현(得賢)의 딸이다. 환조교주(咬住)와 함께 박씨를 따라 개원로(開元路)에 나아가서 진소(陳訴)하니, 본로(本路)에서 사유를 갖추어 황제에게 아뢰었다. 지정(至正) 3년(1343) 정월에 원(元)나라에서, 조씨는 적실(嫡室)이 아니고, 교주(咬住)는 유약(幼弱)하다고 하여, 환조로 하여금 임시로 관직을 이어 받았다가, 교주가 정년(丁年)이 됨을 기다려 그에게 관직을 주도록 하고, 이내 사자(使者)를 보내어 나해(那海)를 목 베게 하였다. 나해가 이 소식을 듣고 선명(宣命)과 인(印)을 가지고 차인사(遮仁寺)에 숨으니, 잡아서 이를 죽였다. 완자불화(完者不花)는 영돈녕(領敦寧)으로 치사(致仕)한 이지(李枝)의 아버지다.


  • 【태백산사고본】 1책 1권 4장 A면【국편영인본】 1책 2면
  • 【분류】
    인물(人物) / 가족(家族) / 왕실(王室) / 역사(歷史)

  • [註 010]
    원윤(元尹) : 고려 때 종친(宗親)과 훈신(勳臣)의 작호(爵號).
  • [註 011]
    정윤(正尹) : 고려 때 종친(宗親)과 훈신(勳臣)의 작호(爵號).

至正二年壬午七月二十四日, 度祖薨, 葬于咸興府禮安部 雲天洞, 卽義陵塔思不花備由赴告開元路, 本路照勘, 塔思不花是正室之子, 令塔思不花承襲。 九月, 塔思不花卒, 子咬住幼。 那海以其母趙氏 高麗王族, 與其兄完者不花, 皆爲元尹、正尹, 又(籍)〔藉〕摠管之勢, 遂生覬覦之心, 乘其哀疚之中, 竊宣命印信而去。 管內軍民咸怒曰: "趙氏非嫡, 那海安可襲職!" 桓祖塔思不花朴氏曰: "嫂可自往開元路以辨。" 朴氏, 安邊得賢之女也。 桓祖咬住, 從朴氏詣開元, 陳訴本路, 具由以奏。 至正三年癸未正月, 趙氏非嫡, 咬住幼弱, 令桓祖權襲, 待咬住成丁而與之, 仍遣使來誅那海那海聞之, 懷宣命及印, 匿於遮仁寺, 執而殺之。 完者不花, 領敦寧致仕李枝父也。


  • 【태백산사고본】 1책 1권 4장 A면【국편영인본】 1책 2면
  • 【분류】
    인물(人物) / 가족(家族) / 왕실(王室) / 역사(歷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