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상세검색 문자입력기
선조실록 36권, 선조 26년 3월 20일 乙亥 7번째기사 1593년 명 만력(萬曆) 21년

유황상과 원황이 조선 정부에 중국군의 상황과 진군에 대해 보낸 자문

경략 찬획 계요 보정 산동 등처 방해 어왜 사무(經略贊畫薊遼保定山東等處防海禦倭事務)에 흠차된 4품관 병부 무고 청리사 원외랑(兵部武庫淸吏司員外郞) 유황상(劉黃裳)과 직방 청리사 주사(職方淸吏司主事) 원황(袁黃)이 이자(移咨)하였다.

"대개 급히 진병하여 왜적을 섬멸하고 곧바로 왕경(王京)을 수복하여 영원히 안정할 계획을 세우는 것은 누군들 그렇게 하고 싶지 않겠습니까. 여기까지 오래 머무르는 것이 어찌 나의 좋은 밭을 버려 두고 남의 메마른 땅을 가꾸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더구나 병화(兵火)가 천리를 적지(赤地)로 만들고 음식이 입에 맞지 않는데 집을 멀고 떠나 수레 밑에서 지내는 것은 무엇 때문이겠습니까. 대저 천병(天兵)이 동쪽으로 나온 것은 황제의 인자함에서이고 그대 나라의 왜적 침략을 가련히 여긴 것은 곧 성심(聖心)의 남다른 은혜에서이므로, 군사의 나아감을 누가 감히 청하며 군사의 물러남을 누가 감히 만류하겠습니까. 경략과 병부가 명을 받들어 황제의 성덕을 선양하고 황제의 위엄을 포장할 뿐, 시기를 살피고 형세를 헤아리는 것은 숨겨야 하는 기밀인데 누가 감히 엿볼 수 있겠습니까.

지금 평양을 이기고 황주를 되찾고 개성을 무찌르고 벽제에서 싸우고 함경도에서 몰아내기를 마치 바람이 옅은 안개를 쫓고 불이 마른 풀을 태우듯이 하여 삼한 백제(三韓百濟)가 이미 태평을 되찾고 창도 황성(蒼島黃城)이 옛터를 회복하였으며, 앞뒤로 벤 왜적의 머리가 2천여 급이고 말과 병기 갑옷과 안장 따위의 노획물이 그 수를 셀 수 없는 등, 두 달이 채 못 되어 큰 승리를 거둔 것이 네 번입니다. 사람이 숨을 돌리지 못하고 말이 쉬지 못한 채 얼음과 눈에 시달려 손가락이 얼어 빠졌으니 또한 괴롭지 않겠습니까. 손님에게 술을 권할 때도 쉬어가며 마시게 하려는 것은 급히 마시다가 토할까 염려되어서인데, 이제 남을 위하여 적을 죽이며 수천 리를 싸워 나아갔는데도 사람을 숨도 돌리지 못하게 하니, 이것이 어찌 인정이라 하겠습니까. 지금 장사가 힘껏 싸워 공이 높은데도 공경으로써 위로할 생각은 하지 않고, 군졸이 상처를 싸매고 병을 앓는데도 안타까와 하며 감싸주려 하지 않으며, 말이 병들어 죽은 것이 반인데도 먹이고 치료할 생각을 하지 않은 채, 마음 편하게 높이 누워서 마치 사람을 사서 싸움을 시켜 놓고 이긴 자의 주먹이 더 빠르지 않은 것을 괴이쩍어 하듯이 경솔히 자문을 띄워 진격을 채촉하고 있으니, 이것이 무슨 마음입니까.

그대 나라의 군신은 천시(天時)도 보지 못합니까. 2월 비가 그치지 않는데다 얼음이 풀리고 눈이 녹아 내리므로 수렁의 깊이가 두어 자[尺]나 되어 말이 배까지 묻힙니다. 아마도 그대 나라의 군병은 잘 싸우지는 못해도 수렁에는 잘 다닐 수 있는 것 같으니 그대들의 말을 앞세워 보십시오. 우리 군사는 곧바로 뒤를 따를 것입니다. 또 왕경(王京)은 길이 좁아서 평양과 비교가 되지 않으니, 반드시 드나들 산길을 살펴보아 습지를 피하고 마른 땅으로 나아가서 험준한 곳을 빼앗고 평탄한 곳을 점거하여야 됩니다. 어느 곳을 이용해서 매복시키고 어느 곳을 이용해서 기습할 것인가는 또한 지리의 비계(秘計)인데, 어찌 눈을 감고 수렁을 걸을 수 있겠습니까. 더구나 선진(宣鎭)의 군대 2천이 이미 왔고, 섭참군(葉參軍)이 훈련시킨 신병(神兵) 1천과 강상(江上)의 비장(飛將) 진인(陳璘)의 군병 3천과 촉(蜀)의 효장(驍將) 유총관(劉總管)의 번병(番兵) 1만과 개원(開元) 2관(關)의 호기(胡騎) 3천이 서로 잇따라 압록강을 건널 것입니다.

그대 나라는 군량이 이미 부족하고 마초도 모자라는데 힘써 넉넉히 준비하여 군사가 올 때를 대비하려 하지는 않고 지레 자문을 보내어 진격을 재촉하니 무엇 때문에 그러는 것입니까. 더구나 평양 동서의 관인(館人)은 지공(支供)이 고갈되었다고 지껄이며 돌아서서 숙덕이고 있으니 앞으로 어떻게 서쪽에서 오는 장수를 맞아서 황사(皇師)를 성심으로 접대할 수 있겠습니까. 이 때문에 서쪽에서 온 군병들이 모두 돌아 갈 생각을 갖고 있으니 한번 철수하여 강대(江臺)에서 지킨다면 어찌 통쾌하지 않겠습니까. 이럭저럭 시일을 보내며 게으름을 피우고 지연시켜서 일을 그르치는 것을 많이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대들은 단지 종이를 자르고 붓을 놀리는 짓만 하여 한갓 천병의 마음만 상하게 하고 있으니, 지혜롭지 못함이 너무 심합니다.

지금 임진강에는 천병이 벌써 여러 진영을 세웠고, 개성에 머무르는 남쪽 군병이 6천에다 봉산(鳳山)에 매복한 군병이 수천이며, 화기와 병기가 숲을 이루었고 전거(戰車)가 보산(寶山)에 범처럼 웅크리고 있으며 신포(神砲)는 북악(北岳)에 우레소리를 갈무리고 있으니, 다만 청명한 날씨에 깃발을 날리고 봄바람 따라 북을 울리는 일만 남아 있습니다. 그대 군신들은 이목을 모아 지리산(智異山)에 요사스러운 안개가 걷히고 한강에 나쁜 기운이 사라진 다음 그대의 왕경에 돌아가 옛 모습 그대로인 것을 보기나 하십시오.

자문에 관백이 군사를 보태어 도으로 해안을 침략할 것이라고 하였는데, 그대 나라는 참으로 관백을 범같이 두려워하고 있으나, 관백은 발굽자국에 괸 물속의 미꾸라지일 뿐입니다. 우리 산동 일대의 용맹한 군사 1백만과 전함 1천 척이 대기한 지 오래이며, 개모(蓋牟)에 구름처럼 둔치고 오골(烏骨)에 별처럼 포진하였는데 장수들의 기이한 옷차림과 금빛 투구가 창해에 환히 빛나고 있습니다. 게다가 절강(浙江)과 민중(閩中)의 군병이 섬라(暹羅)와 유구(琉球)의 군병을 이끌고 바로 그들의 소굴을 무찌를 것입니다. 장차 전쟁에 시달린 강에 돛을 달고 적도들의 굴혈인 섬에 깃발을 꽂아 곧바로 관백을 효수하여 은성(銀城)에 달 것이며, 서왜(徐倭)로 하여금 씨가 끊기게 하여 부산과 대마도에는 오직 바닷물만이 남게 할 것이니, 그대 나라에 또 무슨 걱정이 있겠습니까.

그대 나라의 충청·전라 두 도가 함락되지 않았고 군병 수만이 강남쪽에서 큰소리 치고 있지만 한번도 강을 건너와 왕경에 이른 적이 없고 한번도 개성에 와서 천병과 합세한 적이 없었으며, 함경도의 북녘은 말갈(靺鞨)건위(建威)의 오랑캐같이 굳세면서, 왜적이 벌써 고원(高原)을 버리고 갔는데도 어찌하여 1만의 기병을 거두어 평양에 도착시켜 마산(馬山)070) 에서 연합전을 펴게 하지 않았습니까. 지난날에 군사 3천 명을 거느리고 와서 거전(車戰)을 교련시키면서 3백뿐이라고 하였으니 참으로 가소롭습니다. 이는 자기네 군병을 독촉하여 스스로 방위하지 않고 반드시 천병으로써 자기를 방위하고자 하는 것이며, 자기네의 군병은 꺾일까 염려하여 출전시키지 않고 중국의 군병을 앞세우고자 하는 것입니다. 어찌 이처럼 남에게 바라는 것에는 후하고 자기네가 물러나는 것에는 관대합니까.

천병은 천자의 군병이고 진퇴의 명령은 경략의 권한이며, 사기(事機)에 따라 발동하는 것이 병가의 기밀인만큼, 병사(兵事)는 매번 간여할 수 없고 병권을 부여했으면 곁에서 간섭할 수 없는 것이며, 사기의 발동을 겉으로 드러낼 수 없는 법입니다. 진격하려면 짐짓 후퇴하는 것처럼 보이고 후퇴하려면 짐짓 진격하는 것처럼 보이며, 싸우지 않으려면 싸우려는 듯이 보이고 싸우려면 싸우지 않으려는 듯이 보이는 것으로 병법(兵法)의 운용은 기묘하기가 귀신과 같습니다. 경략이 수일 안에 성유(聖諭)를 받들어 신병 10만을 거느리고 도착할 것입니다."


  • 【태백산사고본】 19책 36권 34장 A면【국편영인본】 21책 667면
  • 【분류】
    외교-명(明) / 외교-왜(倭) / 외교-동남아(東南亞) / 외교-야(野) / 군사-전쟁(戰爭)

  • [註 070]
    마산(馬山) : 개천(价川)의 옛 이름.

○欽差經略贊畫薊遼保定山東等處防海禦事務加四品服兵部武庫淸吏司員外郞劉黃裳, 職方淸吏司主事袁黃移咨曰:

大略, 急進兵, 殲厥賊, 卽復王京爲永安計也, 孰不欲之? 久駐此者, 豈捨我菑畬, 耘人瘠土。 況此兵燹, 赤地千里, 飮食殊味, 遠離家室, 敦然車下, 顧何爲哉? 夫天兵之東也, 出皇帝仁慈, 憐爾小國被倭兇殘, 乃聖心之獨加, 故兵之進, 孰敢請之? 兵之退, 孰敢留之? 經略與本部, 但奉楊以宣德意, 以張皇威, 相時度勢, 隱于機密, 孰能窺測? 今克平壤, 捲黃州, 擣開城, 戰碧蹄, 驅咸鏡, 若風逐弱霧, 火燎枯草, 三韓 百濟, 已復太平, 蒼島黃城, 拱然故墟, 斬首前後二千餘級, 馬刀標袍甲鞍仗, 不計其數, 未兩月中而大捷者四矣。 人不得喘, 馬不得息, 寒苦氷雪, 瘃癉墮指, 不亦勞乎? 勸賓以酒, 猶欲賓憩而飮, 恐之急而湧也, 今爲人殺賊, 轉戰數千里, 而不欲人息而喘乎, 豈人情也耶? 今將士之力戰功高也, 不思敬戴以勞之, 軍卒之裹瘡疾病也, 不思惜而飽懷之, 馬瘦而死者半也, 不思飼而醫藥之, 怡然高臥, 若倩人鬪者, 尤怪勝者之拳, 不加疾也。 率爾咨來, 促其進戰, 此何心哉? 爾國君臣, 獨不見天時乎? 二月雨不休, 氷解雪淖, 泥深數尺, 上沒馬腹。 想爾國兵不能戰, 而能泥行哉, 請以爾馬先之。 吾兵卽繼于後。 且焉王京道隘, 非平壤比, 必相其出入山逕, 避濕就燥, 奪險占夷, 何由設伏, 何由出奇, 又地利之秘計也, 胡可閉目而步于潦乎? 況宣鎭兵已來二千, 葉叅軍所鍊神兵一千, 與江上飛將陳璘兵三千, 驍將劉總管番兵一萬, 開元二關胡騎三千, 相繼過鴨綠水矣。 爾國糧旣不足, 草又短小, 不思勉力豐辦以待兵至, 徑咨來催戰, 何爲其然也? 況平壤東西館人, 噋咈告竭, 背後有言, 將何以延西來之將, 而誠心以迓皇師。 以是西來之兵, 皆有去志, 一撤而守于江臺, 豈不爲快? 多見其因循(玩揭)〔玩愒〕 , 自怠自緩, 以悞爾事, 秪折蚕紙弄狼毫, 徒傷天兵心耳, 不智甚焉。 今臨津江天兵已列數營矣, 開城留南兵六千, 鳳山伏兵數千矣, 火器筤筅森如林矣, 戰車虎踞于寶山, 神炮雷蟠于北岳, 但向霽景, 以揚旍趁春風而伐皷。 爾君臣試凝耳目, 以觀妖氛, 掃于智異, 赤祲消于漢水, 還爾王京, 依然故物。 咨謂關白添兵而來, 東搶沿海, 爾國眞畏關白如虎也, 關白涔蹄中之一鰍耳。 吾山東一帶猛士百萬, 戰艦千艘, 待之久矣, 雲屯盖牟, 星布烏骨, 奇服之將, 金髹之鎧, 照耀滄溟。 況之兵, 率暹羅琉球之兵, 直勦其巢。 將駕帆紅塵之江, 掣旗銀蛟之嶼, 卽梟白也之首, 縣之銀城, 俾徐絶種, 釜山對馬, 惟餘海水, 爾國又奚憂? 爾國忠淸全羅二道未破, 兵有數萬, 雖聲言在江之南, 無一過江而抵王京者, 無一至開城與天兵合者, 咸鏡之北, 與靺鞨建威之胡, 其勁似也, 已去高原, 何不撤萬騎至平壤, 而會戰于馬山? 頃取兵三千, 敎爲車戰, 但曰三百, 良可大笑。 是不促其兵以自衛, 必欲天兵之衛己, 不摧其兵而出戰, 急欲中國之前征。 是何厚於望人, 而寬於自退也如此? 竊以天兵者, 天子之兵也, 進退之令, 經略之權也, 而機之所發, 兵家之微也, 兵之威, 不得輒干之, 權之歸, 不得旁撓之, 機之發, 不得陽動之。 將進也而固退之, 將退也而固進之, 不戰而示之以戰, 戰也而示之以不戰, 陰符之運, 妙若鬼神。 經略不數日, 奉聖諭, 率新兵十萬至矣。


  • 【태백산사고본】 19책 36권 34장 A면【국편영인본】 21책 667면
  • 【분류】
    외교-명(明) / 외교-왜(倭) / 외교-동남아(東南亞) / 외교-야(野) / 군사-전쟁(戰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