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도의 군사가 용인에서 패하다
삼도(三道)의 군사가 용인(龍仁)에서 패하여 이광(李洸) 등이 본도로 돌아갔다. 삼도의 여러 장수들이 이광을 맹주(盟主)로 삼고 진군하여 용인에 주둔한 적을 먼저 공격할 것을 의논하였다. 이에 권율(權慄)이 이광에게 말하기를,
"전로(前路)의 적진(賊陣)은 험한 곳에 웅거하여 있으니 쳐다보며 공격하기가 어렵다. 그리고 주공(主公)이 경내의 모든 병사를 징발해 들어와 구원하려고 하니, 국가의 존망이 이 한 번의 거사에 달려 있는데 되도록이면 신중히 하여 만전을 도모해야 한다. 곧장 조강(祖江)을 건너 임진을 막는 것이 마땅하니, 그렇게 되면 서로(西路)가 자연히 견고해지고 식량을 운반하는 길도 트이게 될 것이니 사기를 축적하여 틈을 엿보면서 조정의 명령을 기다려야 한다."
하였고,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먼저 수원(水原)의 독산성(禿山城)에 웅거하여 적을 유인하여 싸운 뒤 승리할 때를 틈타 진격하는 것이 온당하다."
하였다. 그런데 이광은 당시 지체한다는 비방을 당하고 있었으므로 마침내 진군을 재촉하며 말하기를,
"곧바로 양천(陽川)의 북포(北浦)에 도착한 뒤 진퇴를 의논하겠다."
하였다. 그러나 세 장수는 실제로 권율의 계책을 따르려 하였으므로 연명(聯名)하여 장계하기를,
"신들이 함께 군사 6만여 명을 거느리고 지금 수원 지역에 이르러 양천의 북포를 경유해서 군사를 도우려 하나 적이 경성에 있으니 앞뒤로 적의 공격을 받을 듯싶습니다. 조정에서 속히 지휘해 주기를 바랍니다."
하였다. 상이 선천(宣川)에서 장계를 보았는데, 조신(朝臣)들은 이미 그들이 진취(進取)하는데, 용맹스럽지 못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에 이광이 선봉장 이지시(李之詩)로 하여금 곽영(郭嶸)을 도와 접전(接戰)하게 하고 백광언(白光彦)과 군사 각 1천 명을 합해 거느리고 먼저 출발하게 하였다. 권율이 또 경계하기를,
"신중하게 하여 적을 가볍게 여기지 말고 우리 대군(大軍)이 오는 것을 기다려 싸우도록 하라."
하였다. 그러나 광언은 적의 수효가 적은 것을 보고 먼저 도전하였는데 적은 거짓으로 군사를 거두고 싸우지 않다가 아군의 주의가 해이해졌을 때 불의에 적병이 몰래 숲속에서 흩어져 기어나와 일시에 총을 쏘고 칼을 휘두르며 들어오니 광언과 지시가 먼저 탄환에 맞아 죽었다. 두 장수는 모두 용력(勇力)으로 명성이 있었는데, 그들이 죽었다는 말을 듣고 모든 군사의 사기가 떨어졌다.
이튿날 아침 군중에서 밥짓는 연기가 올라갈 때 적병이 산골짜기를 따라 돌입했다. 흰 말을 타고 쇠가면을 쓴 장수가 수십 명을 데리고 칼날을 번뜩이며 앞장서서 들어오니, 충청 병사 신익(申翌)이 앞에 있다가 그것을 바라보고 먼저 도망하자 10만의 군사가 차례로 무너져 흩어졌는데, 그 형세가 마치 산이 무너지고 하수가 터지는듯하였다. 이광·김수·국형은 30리 밖에 있었지만 역시 진을 정돈하지 못하고 모두 단기(單騎)로 남쪽을 향하여 도망하니, 적병 역시 추격하지 않았다. 병기와 갑옷, 마초와 양식을 버린 것이 산더미와 같았는데 적이 모두 태워버리고 떠났다.
군사가 처음 진격할 때에 경성에서 왜장 수십 대가 계속해서 성을 빠져 나갔는데 어디로 향하는지 몰랐었다. 아군이 그 소식을 듣고는 우리 군사를 피하여 가는 줄로만 의심하였는데, 뒤에 들으니 왜장이 광주(廣州)의 산골짜기에 군사를 잠복시키고 아군이 강가에 도착하기를 기다렸다가 뒤를 따라 습격하여 모두 섬멸할 계획이었다고 하였다. 이광 등이 패배하자 상하가 실망하여 모두들 이광이 군율을 실수한 것을 탓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6책 26권 13장 A면【국편영인본】 25책 617면
- 【분류】군사-전쟁(戰爭) / 외교-왜(倭) / 사법-탄핵(彈劾)
○朔己丑/三道兵潰于龍仁, 李洸等奔還本道。 三道諸將以洸爲盟主, 議進軍, 先擊龍仁屯賊。 權慄言于洸曰: "前路賊陣據險, 難以仰攻。 主公掃境內入援, 國家存亡, 在此一擧, 務在持重, 以圖萬全。 唯當直渡祖江, 以塞臨津, 則西路自固, 糧道亦通, 畜(銃)〔銳〕 伺隙, 以待朝廷之令可也。" 或曰: "宜先據水原 禿山城, 致寇而戰, 乘利而進。" 洸方以逗遛, 被人謗議, 遂促進兵曰: "直到陽川 北浦, 方議進退。" 三帥實欲用權慄策, 聯名狀啓曰: "臣等共率兵六萬餘人, 今到水原地, 欲由陽川 北浦濟師, 而賊在京城, 恐腹背受敵。 願朝廷急速指揮。" 上在宣川見狀啓, 朝臣已知其不勇於進取矣。 洸使其先鋒將李之詩, 助郭嶸接戰, 與白光彦合兵, 各一千先發。 慄又戒曰: "愼勿輕敵, 待吾大軍接後乃戰。" 光彦見賊少先挑戰, 賊佯斂兵不戰。 我軍意懈, 不意賊兵潛從草樹間, 散伏以進, 一時發銃揮劍以入, 光彦、之詩先中丸死。 二將皆以勇力有名, 聞其死, 擧軍氣奪。 翌朝軍中炊烟起, 賊兵從山谷間突至, 白馬將着金假面, 從數十人, 耀白刃居前。 忠淸兵使申翌在前, 望之先走, 十萬衆次第潰散, 勢如山崩河決。 洸、睟、國馨在三十里外, 亦不能整陣, 皆單騎南奔, 賊兵亦不追。 器甲、芻糧委棄如山, 賊悉焚之而去。 兵之初進也, 京城將倭數十隊, 相續出城, 而莫知所向。 我軍聞之, 疑其避我兵也, 及後聞之, 倭將方伏兵于廣州山間, 竢我軍到江上, 從後掩擊爲殲盡計云。 洸等旣敗, 上下失望, 皆咎洸之失律矣。
- 【태백산사고본】 6책 26권 13장 A면【국편영인본】 25책 617면
- 【분류】군사-전쟁(戰爭) / 외교-왜(倭) / 사법-탄핵(彈劾)