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조실록 109권, 영조 43년 윤7월 24일 을묘 1번째기사
1767년 청 건륭(乾隆) 32년
이유수·민백흥을 승지로 삼고 태묘의 환안제에 쓸 향을 지영하다
이유수(李惟秀)·민백흥(閔百興)을 승지로 삼았다. 임금이 숭정전의 뜰에서 태묘의 환안제(還安祭)에 쓸 향을 경건히 맞이하였다. 승지가 연주군 부인(連珠君夫人)의 장적(帳籍) 및 인빈방(仁嬪房)의 가직노(家直奴)의 호적을 조사해서 아뢰었는데, 한성부의 당상과 낭관을 입시하라고 명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나는 송현궁(松峴宮)이 원묘(元廟)의 옛 궁인 줄로 알고 있었는데, 오늘에야 저경궁(儲慶宮)임을 알았다. 어의궁에 3대의 장적을 봉안한 것은 정말 우연이 아니다."
하였다. ‘한성부 당상에게 숙마(熟馬)를 내리고, 한성부 낭청은 수령의 빈 자리가 나오면 채용하라.’는 전교를 쓰라고 명하였다. 좌승지 민백흥(閔百興)에게 명하여 추기(追記)를 써서 저경궁에 걸게 하고, 도승지 이유수(李惟秀)에게 명하여 어의궁에 봉안할 어첩을 모시고 갈 때 세장(細仗)과 고취(鼓吹)로 앞에서 인도하라고 명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73책 109권 14장 B면【국편영인본】 44책 261면
- 【분류】왕실-사급(賜給) / 왕실-의식(儀式) / 왕실-종사(宗社) / 인사-관리(管理) / 인사-임면(任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