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상세검색 문자입력기
영조실록 99권, 영조 38년 4월 25일 무자 1번째기사 1762년 청 건륭(乾隆) 27년

왕세손의 회강을 거행하게 하다

임금이 경현당에 나아가 왕세손의 회강(會講)을 하게 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69세에 이처럼 3백 년 후에 〈처음〉 이런 일을 보게 되니, 참으로 뜻밖이다. 이번의 연교(筵敎)는 한림(翰林)과 주서(注書) 역시 강관(講官)과 함께 상확(商確)하여 1통을 만들어 1건(件)은 대내(大內)에 들이고 1건은 강서원에 걸어두어야 한다."

하였다. 임금이 세손에게 말하기를,

"태왕(太王)이 거빈(去邠)한 것082) 이 우리 시조(始祖)의 일과 서로 부합되어, 기산(岐山)에서 봉황(鳳凰)이 운 것과 〈태조(太祖)의 꿈에〉 신인(神人)이 금척(金尺)을 준 것은 모두 저절로 상서(祥瑞)가 이르렀으니, 하늘에 순종하는 임금은 바로 이런 상서가 있게 된다. 대저 나라를 세우기 어려움은 하늘을 오르는 것과 같고, 망하기 쉬움은 털을 태우는 것과 같다. 시험삼아 3백 년의 종사(宗社)를 생각건대, 네가 만약 부지런히 힘쓰기를 그만두지 않는다면 어찌 다만 4백 년뿐이겠는가? 주(周)나라 8백 년의 복조(福祚)에 거의 가깝게 될 것이다. 《맹자(孟子)》의 ‘인욕(人慾)을 막아야 한다.’는 말과 《예기(禮記)》의 ‘공경하지 않음이 없어야 한다.[無不敬]’는 말은 그 근본이 모두 ‘인의(仁義)’ 두 글자에 있는 것이다. 조선(祖先)의 마음은 자손이 현명하기를 바라기 때문에 너에게 바라는 것이 깊다. 조선(朝鮮)제(齊)·초(楚)와 달라서 삼한(三韓)을 통합하여 하나가 되어 혹시라도 강역(疆域)에 일이 있게 되면 본토(本土)를 지키는 이외에는 다른 방도가 없다. 내가 반드시 수성(守城)하고자 한 것은 우리 적자(赤子)를 버리고 다시 어디로 가겠는가? 일찍이 《남한일기(南漢日記)》를 보건대 성(城)에서 항복할 때 백성들이 울부짖으며 말하기를, ‘우리 임금이 어찌하여 우리를 버리는가?’라고 하였는데, 내가 매양 이 구절을 읽고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눈물을 흘렸다. 지금 비록 금성 탕지(金城湯池)가 있다 하더라도 가서는 안되는데, 만약 뜻밖의 일이 있으면 지켜야 하겠는가? 그렇지 않아야 하겠는가?"

하니, 세손이 말하기를,

"나라를 지켜야 합니다."

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나라를 지켜야 한다는 데에는 무슨 뜻이 있는가?"

하니, 답하기를,

"버려서는 안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나라를 세운 것은 임금을 위해서인가, 백성을 위해서인가?"

하니, 세손이 말하기를,

"임금도 위하고 또 조선(朝鮮)을 위해서입니다."

하매, 임금이 말하기를,

"그 대답이 좋으나 오히려 통창(通暢)하지 못함이 있다. 그 본뜻은 백성을 위해서 세운 것이다."

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너의 학문은 바로 박성원(朴聖源)의 힘이다. 스승을 존경하고 벗과 친하는 것은 《소학(小學)》의 도리이며, ‘어진 이를 어질게 여기되 색(色)을 좋아하는 마음과 바꾸어 하라.[賢賢易色]’는 것은 공문(孔門)의 가르침이다. 네가 후일 박성원을 경애(敬愛)하겠는가?"

하고, 또 하교하기를,

"하늘이 임금을 세우는 것은 자봉(自奉)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양민(養民)하기 위해서이다. 민심을 한번 잃으면 비록 임금이 되고자 하더라도 되지 못하니, 너는 백성 두려워하기를 사부(師傅)보다 더 해야 한다."

하였다. 세손이 안으로 돌아가니, 박성원이 말하기를,

"신은 세손이 점차 성취됨을 알고 있으나 언제나 사람의 마음은 칭찬하는 말을 들으면 자만심(自滿心)이 생기기가 쉽고, 자만하게 되면 게을러지니 그것이 매우 두렵습니다. 신의 생각에는 좋은 점은 반드시 지나치게 추장(推奬)할 필요가 없고 부족한 점만 매양 계칙(戒飭)을 가해야 하니, 이것이 성취하는 방도입니다."

하니, 임금이 찬(饌)을 들라고 명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68책 99권 14장 A면【국편영인본】 44책 97면
  • 【분류】
    왕실-국왕(國王) / 왕실-종친(宗親) / 왕실-경연(經筵)

  • [註 082]
    태왕(太王)이 거빈(去邠)한 것 : 태왕(太王)은 주나라 태왕(太王)을 이름. 옛날에 태왕이 빈(邠)에 있었는데, 적인(狄人)의 침입을 받아 이곳을 떠나 기산(岐山) 아래로 옮겨 기읍(岐邑)을 정하고 나라 이름을 주(周)라고 하였음.

○戊子/上御景賢堂, 王世孫會講。 上曰: "六十九歲, 見此三百年後此擧, 誠是料外。 今番筵敎, 翰注亦與講官商確, 作爲一通, 一件內入, 一件揭諸講書院可也。" 上謂世孫曰: "大王之去, 與我始祖事相符, 岐山鳴鳳, 神人金尺, 皆自致之祥, 而人君之順乎天者, 乃有此祥。 大抵成立之難如登天, 覆墜之易如燎毛。 試思三百年宗社, 汝若勉勉不已, 則奚但四百年? 家八百之祚, 其庶幾矣。 《孟子》之遏人慾, 《禮記》之無不敬, 其本都在於仁義二字。 祖先之心, 欲子孫之賢, 故望於汝者深矣。 朝鮮異於 , 統合三韓而爲一, 脫有疆域有事, 則守其本之外, 無他道矣。 予必欲守城者, 舍我赤子而更往何處? 曾見《南漢日記》, 下城時百姓呼號曰, ‘吾君何以棄我’, 每讀此句, 不覺涕淚。 今雖有金城湯池, 不可往矣, 如有不虞, 守乎否乎?" 世孫曰: "守國可矣。" 上曰: "守社有何意?" 曰: "不可棄而然也。" 上曰: "社稷之設, 爲君乎爲民乎?" 世孫曰: "爲君亦爲朝鮮。" 上曰: "其對好矣, 而猶有未暢焉。 其本爲民而設也。" 上曰: "汝之學問, 乃朴聖源之力也。 尊師親友, 《小學》之道, 賢賢易色, 門之訓也。 汝他日能愛朴聖源乎?" 又敎曰: "天之立君, 非爲自奉也, 爲養民也。 民心一失, 雖欲爲君, 不可得矣, 汝畏民甚於師傅可也。" 世孫還內, 朴聖源曰: "臣知世孫之漸有成就, 而恒情聞譽, 則易有自滿之心, 自滿則怠, 甚可畏也。 臣謂善處不必過奬, 不足處每加戒飭, 是爲成就之道矣。" 上命饋饌。


  • 【태백산사고본】 68책 99권 14장 A면【국편영인본】 44책 97면
  • 【분류】
    왕실-국왕(國王) / 왕실-종친(宗親) / 왕실-경연(經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