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조 판서 이원익을 평안도 도순찰사, 최흥원을 황해도·경기 도순찰사로 삼다
이조 판서 이원익(李元翼)을 평안도 도순찰사(都巡察使)로, 최흥원(崔興源)을 황해도·경기 도순찰사로 삼아 모두 당일에 떠나도록 하였는데, 이는 장차 상이 서행(西幸)할 것을 의논할 때 대비하기 위해서였다. 원익은 일찍이 안주 목사(安州牧使)를 지냈고 흥원은 황해 감사를 지냈는데, 모두 은혜를 베푸는 정치를 하였으므로 민심이 귀의하였다. 그래서 그들을 먼저 보내 어루만져 달램으로써 순행(巡幸)에 대비하려는 것이었다.
그러나 도성은 여전히 사대문(四大門)을 닫은 채 백성들이 피난가는 것을 금지시켰다. 그래서 도성의 사민(士民)들이 밤이면 밧줄을 타고 성을 빠져나갔는데 가족을 서로 잃어버리는 자도 있었으며, 겁탈하는 도적이 곳곳에서 출몰하여 남의 재물을 약탈하기도 하고 부녀자를 납치하기도 하여 곡성이 길에 가득하였다. 대간 및 원임 대신·종실(宗室)이 합문(閤門)을 두드리면서 사직(社稷)을 버리지 말 것을 청하고 유생(儒生)들도 상소하였으나 이미 어찌할 수 없었다. 상이 서행(西幸)할 계책을 결정하자 대신이 입대(入對)하여 세자를 세워 백성들의 마음을 유지시키도록 청하니 상이 이르기를,
"중궁(中宮)의 춘추가 많지 않기에 일부러 세자를 일찍 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 국가의 형세가 이와 같으니 여러 사람의 의논을 따르는 것이 마땅하다. 광해군(光海君) 모(某)는 총명하고 효경(孝敬)하니 봉하여 세자로 삼으라."
하니, 대신들이 절하며 하례하기를,
"종묘와 사직의 복입니다."
하였다. 이날 광해군이 대내(大內)에 들어가 명을 받고 처음으로 궁료(宮僚)를 배치하였으며 백관이 진하(陳賀)하였으나 책봉하는 예절을 미처 갖추지 못했다.
- 【태백산사고본】 6책 26권 5장 B면【국편영인본】 25책 613면
- 【분류】인사-임면(任免) / 왕실-행행(行幸) / 왕실-종친(宗親) / 왕실-의식(儀式) / 군사-전쟁(戰爭) / 사법-치안(治安)
○以吏曹判書李元翼爲平安道都巡察使, 崔興源爲黃海道、京畿都巡察使, 皆卽日發遣。 以將有西幸之議, 而元翼曾爲安州牧使, 興源爲黃海監司, 皆有惠政, 爲民心所附, 故使之先往撫諭, 以備巡幸。 都城猶閉四門, 禁人出避, 都中士民, 夜縋城出, 有眷屬相失者。 刼賊處處間出, 掠人財貨, 婦女或被掠, 哭聲滿路。 臺諫及原任大臣、宗室, 扣閤請勿去社稷, 儒生或上疏, 然已無可爲矣。 上決策西幸, 大臣入對, 請建儲嗣, 以係人心。 上曰: "中宮春秋未暮, 故不早定儲矣。 今國勢如此, 當依僉議。 光海君某聰明孝敬, 可封爲世子。" 大臣拜賀曰: "宗社之福也。" 是日, 光海入大內受命, 初置宮僚, 百官陳賀, 而未及備冊禮焉。
- 【태백산사고본】 6책 26권 5장 B면【국편영인본】 25책 613면
- 【분류】인사-임면(任免) / 왕실-행행(行幸) / 왕실-종친(宗親) / 왕실-의식(儀式) / 군사-전쟁(戰爭) / 사법-치안(治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