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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실록 117권, 선조 32년 9월 20일 병인 3번째기사 1599년 명 만력(萬曆) 27년

김우옹·성영·조정 등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김우옹(金宇顒)을 형조 참판으로, 성영(成泳)을 좌윤으로, 조정(趙挺) 【훌륭한 선비이다. 그 단아한 품행이 보옥(寶玉)과 같아 사랑할 만하였다. 】 대사성으로, 임몽정(任蒙正)을 예조 참의로, 이거(李蘧)를 공조 참의로, 남이공(南以恭)을 홍문관 응교로,

사신은 논한다. 이공은 김신국(金藎國)과 한마음으로 유성룡(柳成龍)·윤두수(尹斗壽)의 복권을 담당하여 훗날 자신들의 발판으로 삼았다. 급기야 구의강(具義剛)·홍식(洪湜)의 논박을 입기까지 하면서도 오히려 자신의 처신을 고치지 못하였다. 그리하여 서로 날뛰면서 일어나 도리어 반대로 중상할 것을 모의, 홍여순(洪汝諄)을 기화로 삼아 함정을 만들어 추종자를 후원하고 등진 자를 밀어내면서 두 정승을 호령하고 삼사(三司)를 노예로 하여 국권을 잡고 조정 정사를 문란시켜 만연되고 고질화되게 하였다. 그러나 성감(聖鑑)이 속셈을 환히 알으시어 그 형태를 감추지 못하고 끝내 죄를 입었으니, 이른바 꾀를 잘 내는 자는 꾀에 패한다는 것이다. 아, 경계할 일이다.

이이첨(李爾瞻)을 문학으로,

사신은 논한다. 이이첨은 바른 사람이다. 문예에 능했는데 그 문장이 웅장하고 화려했으며, 위인이 단정하고 명민하여 조행과 언어가 분명하였다. 친상(親喪)을 당하여서는 6년 동안 죽을 먹으면서 연명하고 염장(鹽醬)과 과채(果菜)를 먹지 않았으며, 그 수심 띤 안색과 슬피 곡읍하는 것은 우매한 백성들도 모두 감동하는 바였다. 급기야 벼슬하자 조정에 우뚝 서서 바른 말 강직한 논박이 맨 먼저 정승 유성룡(柳成龍)에게 미치므로 죽지 않은 권간의 간담이 모두 서늘해졌다. 어버이 섬김을 효로 하고 임금 섬김을 충으로 하는 것 중 그 하나도 오히려 쉽게 얻을 수 없는데 하물며 이를 모두 겸한 자임에랴. 그러므로 당세에 제일 가는 사람이라 한다.

이호의(李好義)를 예조 좌랑으로, 김여순(金汝純)을 병조 좌랑으로, 강주(姜籀)를 병조 좌랑으로, 유숙(柳潚)을 설서로, 이빈(李蘋)을 순천 부사로, 박응인(朴應仁)을 남양 부사로, 이수(李綬)를 고부 군수로, 민여임(閔汝任)을 함종 현령으로 삼았다.


  • 【태백산사고본】 72책 117권 21장 B면【국편영인본】 23책 682면
  • 【분류】
    인사-임면(任免) / 역사-사학(史學)

○以金宇顒爲刑曹參判, 成泳爲左尹, 趙挺 【嘉士也。 溫雅琅琑, 玉珮瓊琚, 誠可寶也。】 爲大司成, 任蒙正爲禮曹參議, 李蘧爲工曹參議, 南以恭爲弘文應敎。

【史臣曰: "南以恭, 一心于金藎國, 擔當復責, 爲他日容身地。 及被駁, 猶不悛, 相與跳踉而起, 謀欲反中, 奇貨汝諄, 設爲陷穽, 附者援之, 背者推之, 號令兩台, 奴(肄)〔隷〕 三司, 柄國權紊朝政, 蔓且痼矣。 聖鑑照膽, 形態不得藏, 竟獲罪, 所謂工於謀者, 敗於謀。 吁, 可戒哉!"】

李爾瞻爲文學,

【史臣曰: "李爾瞻, 正人也。 善文藝, 雄富麗藻, 爲人端藏明斷, 玉色金聲。 持親喪六年, 啜粥以連命, 不喫鹽醬、果菜, 其顔色之戚, 哭泣之哀, 雖蚩氓, 皆知感動。 及仕, 獨立朝端, 危言讜論, 首及柳台, 未死權奸, 膽已落矣。 夫事親孝, 事君忠。 有一於此, 猶不易得, 況兼之者乎? 故曰當今第一人也。"】

李好義爲禮曹佐郞, 金汝純 〔爲〕 兵曹佐郞, 姜籀爲兵曹佐郞, 柳潚爲說書, 李蘋順天府使, 朴應仁南陽府使, 李綏古阜郡守, 閔汝任咸從縣令。


  • 【태백산사고본】 72책 117권 21장 B면【국편영인본】 23책 682면
  • 【분류】
    인사-임면(任免) / 역사-사학(史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