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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실록26권, 선조 25년 4월 28일 정사 1번째기사 1592년 명 만력(萬曆) 20년

충주의 패전 보고가 이르자 파천을 의논하다

충주에서의 패전 보고가 이르자 상이 대신과 대간을 불러 입대(入對)케하고 비로소 파천(播遷)에 대한 말을 발의하였다. 대신 이하 모두가 눈물을 흘리면서 부당함을 극언하였다. 영중추부사 김귀영(金貴榮)이 아뢰기를,

"종묘와 원릉(園陵)이 모두 이곳에 계시는데 어디로 가시겠다는 것입니까? 경성(京城)을 고수하여 외부의 원군(援軍)을 기다리는 것이 마땅합니다."

하고, 우승지 신잡(申磼)은 아뢰기를,

"전하께서 만일 신의 말을 따르지 않으시고 끝내 파천하신다면 신의 집엔 80노모가 계시니 신은 종묘의 대문 밖에서 스스로 자결할지언정 감히 전하의 뒤를 따르지 못하겠습니다."

하고, 수찬 박동현(朴東賢)은 아뢰기를,

"전하께서 일단 도성을 나가시면 인심은 보장할 수 없습니다. 전하의 연(輦)을 멘 인부도 길 모퉁이에 연을 버려둔 채 달아날 것입니다."

하면서, 목놓아 통곡하니 상이 얼굴빛이 변하여 내전으로 들어갔다.


  • 【태백산사고본】 13책 26권 1장 B면【국편영인본】 21책 483면
  • 【분류】
    외교-왜(倭) / 군사(軍事) / 왕실-행행(行幸)

    ○二十八日丁巳, 忠州敗報至, 上召大臣, 臺諫入對, 始發去邠之議。 大臣以下皆涕泣, 極言其不可。 領中樞府事金貴榮啓曰: "宗廟園陵, 皆在此, 去將何往? 當固守京城, 以竢外援。" 右承旨申磼啓曰: "殿下若不聽臣, 終至播越, 則臣家有八十老母, 欲自刎於宗廟大門之外, 不敢從殿下去也。" 修撰朴東賢啓曰: "殿下一出城, 則人心不可保。 荷輦之夫, 亦將委諸路隅而走矣。" 仍失聲痛哭, 上色變, 遽還內。


    • 【태백산사고본】 13책 26권 1장 B면【국편영인본】 21책 483면
    • 【분류】
      외교-왜(倭) / 군사(軍事) / 왕실-행행(行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