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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종실록 30권, 명종 19년 10월 13일 임오 2번째기사 1564년 명 가정(嘉靖) 43년

윤의중·박순·강사필 등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윤의중(尹毅中)을 강원도 관찰사로, 박순(朴淳)을 이조 참의로, 강사필(姜士弼)을 성균관 대사성으로, 안함(安馠) 【거칠고 비루하며 용렬한 사람이다. 윤임(尹任)과의 인척 관계로 떨쳐 일어나 등용되기 시작한 초기에 청현(淸顯)의 반열에 끼었다. 윤임이 죽어서 타고 오를 연줄이 없어지자 그의 아들을 윤원형의 첩 소생 딸에게 장가들여 벼슬길의 매개로 삼았다. 녹봉에 연연하여 행여 떨어져 나갈까 근심하며 붙좇아 받드는 사람을 이리 바꿨다 저리 바꿨다 못하는 짓이 없어 사람들이 비루하게 여겼다.】 을 승문원 참교로, 이거(李蘧)를 사헌부 장령으로, 이후백(李後白) 【성품이 단아하고 진중하며 강단이 있었고 조심하며 근신하였다. 글은 꾸밈을 좋아하지 않았고 벼슬에 임해서는 직분을 다했다.】 을 병조 정랑으로, 구봉령(具鳳齡)을 홍문관 부수찬으로, 이증(李增) 【사람됨이 침중하고 근신하였다.】 을 정자(正字)로 삼았다.


  • 【태백산사고본】 18책 30권 46장 B면【국편영인본】 20책 706면
  • 【분류】
    인사-임면(任免)

○以尹毅中江原道觀察使, 朴淳爲吏曹參議, 姜士弼爲成均館大司成, 安馠 【麤鄙庸劣。 因緣尹任姻婭之勢, 拔身之初, 冒忝淸顯之列。 及任之死也, 攀緣無路, 以其子娶元衡之妾女, 以爲媒爵之路。 其苟祿患失, 反覆趨附之事, 無所不至, 人皆賤惡之。】 爲承文院參校, 李蘧爲司憲府掌令, 李後白 【性端重剛斷,操心謹愼。 文不尙浮華, 居官盡職。】 爲兵曹正郞, 具鳳齡爲弘文館副修撰, 李增 【爲人沈重謹愼。】 爲正字。


  • 【태백산사고본】 18책 30권 46장 B면【국편영인본】 20책 706면
  • 【분류】
    인사-임면(任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