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종실록 13권, 고종 13년 1월 23일 을묘 2번째기사 1876년 조선 개국(開國) 485년

일본과 통상을 맺는 일에 관하여 최익현이 상소하다

국역

전 참판(參判) 최익현(崔益鉉)이 올린 상소의 대략에,

"신은 적들의 배가 왔다는 소식을 듣고 의정부(議政府)에서 응당 확정적인 의논이 있으리라고 생각하여 여러 날 동안 귀를 기울이고 기다렸으나 아직도 들은 바가 없습니다. 항간에는 그들의 속셈이 화친을 요구하는 데 있을 것이라고 소문이 떠돌아 입 가진 사람은 모두 분격하며 온 나라가 뒤숭숭합니다. 이 소문이 시행된다면 전하의 일은 잘못되고 말 것입니다.

화친이 상대편의 구걸에서 나오고 우리에게 힘이 있어 능히 그들을 제압할 수 있어야 그 화친은 믿을 수 있는 것입니다. 겁나서 화친을 요구한다면 지금 당장은 좀 숨을 돌릴 수 있겠지만, 이후 그들의 끝없는 욕심을 무엇으로 채워주겠습니까? 이것이 나라를 망하게 하는 첫째 이유입니다.

그들의 물건은 모두 지나치게 사치한 것과 괴상한 노리갯감들이지만, 우리의 물건은 백성들의 목숨이 걸린 것들이므로 통상한 지 몇 년 되지 않아서 더는 지탱할 수 없게 될 것이며, 나라도 망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나라를 망하게 하는 두 번째 이유입니다.

그들이 비록 왜인(倭人)이라고 핑계대지만 실제로는 서양 도적들이니, 화친이 일단 이루어지면 사학(邪學)이 전파되어 온 나라에 가득 차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나라를 망하게 하는 세 번째 이유입니다.

그들이 뭍에 올라와 왕래하고 집을 짓고 살게 된다면 재물과 부녀들을 제 마음대로 취할 것이니, 이것이 나라를 망하게 하는 네 번째 이유입니다.

이런 설을 주장하는 자들은 병자년(1636) 남한산성(南漢山城)의 일을 끌어들여 말하기를, ‘병자년에 화친을 한 뒤로 두 나라가 서로 좋게 지내게 되어 오늘까지 관계가 반석 같은데, 지금은 왜 그렇게 할 수 없단 말인가?’라고 합니다. 저들은 재물과 여자만 알고 사람의 도리라고는 전혀 모르는데, 그들과 화친한다는 것은 어떻게 하자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이것이 나라를 망하게 하는 다섯째 이유입니다.

뒷날에 역사를 쓰는 사람들이 이 일에 대하여 크게 쓰기를, ‘아무 해 아무 달에 서양 사람이 조선에 들어와 아무 곳에서 동맹을 맺었다.’라고 한다면, 이것은 기자(箕子)의 오랜 나라가 하루아침에 오랑캐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순조(純祖) 때에는 서양 사람이 몰래 들어왔다가 발각되어 죽음을 당했고, 우리 헌종(憲宗)도 들어와서 염탐하는 자들을 모두 주륙하였으니 이것이 전하의 가법(家法)이 아니겠습니까? 지금 기어든 왜인들은 서양 옷을 입고 서양 포를 쏘며 서양 배를 타고 다니니, 이는 왜인이나 서양 사람이나 한 가지라는 것의 뚜렷한 증거입니다. 무엇 때문에 그들에게 속겠습니까?

감히 고려 때의 우탁(禹倬)과 선정신(先正臣) 조헌(趙憲)의 고사를 본받아 도끼를 가지고 대궐 앞에 엎드렸으니, 삼가 바라건대 빨리 큰 계책을 세우고, 조정 관리들 가운데서 한 사람이라도 화친을 주장하여 나라를 팔아먹고 짐승을 끌어들여 사람을 해치려고 꾀하는 자가 있으면 사형으로 처단하기 바랍니다. 만일 그렇지 않을 경우 이 도끼로 신에게 죽음을 내리신다면 조정의 큰 은혜로 여기겠습니다."

하였다.


  • 【원본】 17책 13권 10장 B면
  • 【국편영인본】 1책 517면
  • 【분류】 교통-수운(水運) / 군사-관방(關防) / 무역(貿易) / 외교-일본(日本) / 상업-상품(商品) / 사상-서학(西學) / 역사-전사(前史) / 인물(人物) / 정론-정론(政論)
원문

前參判崔益鉉疏略: "臣聞賊船之報, 意謂廊廟, 當有定論, 側聽屢日, 尙無所聞。 外間喧傳, 意在求和, 萬口同憤, 四境洶洶。 此說施行, 殿下之事去矣。 和出於彼之乞憐, 而强在我, 足以制彼, 其和可恃也。 畏怯而求和, 則爲目前姑息, 向後溪壑之慾, 何以充? 所以亂亡者一也。 彼之物貨, 皆淫奢奇玩, 而我之物貨, 民命所寄, 通商不數年, 無復支存, 國必隨亡。 此亂亡者二也。 彼雖託倭, 其實洋賊。 和事一成, 邪學傳授, 遍滿一國。 此亂亡者三也。 彼欲下陸, 往來築臺而居, 財帛婦女, 惟意所願。 此亂亡者四也。 倡爲此說者, 引丙子南漢事曰‘丙子講和後, 彼此交歡, 至今若磐石。 今日何獨不然? 云。 彼徒知貨色, 無復人理, 與彼和好, 不知其何說。 此亂亡者五也。 異日秉春秋筆者, 大書其事曰: ‘某年某月, 洋人入朝鮮, 盟于某地’云, 則是箕聖故疆, 一朝沒於腥塵也。 我純祖時, 洋人潛入, 譏捕誅鋤, 亦我憲宗, 凡入譏詗者, 悉加顯戮。 此非殿下之家法乎? 今倭之來者, 服洋服, 用洋砲, 乘洋舶, 此倭洋一體之明證也。 柰之何爲其所瞞哉? 敢用禹倬、先正趙憲故事, 持斧伏闕。 伏願亟正大策, 而朝紳之間, 一有主和賣國, 率獸食人計者, 置之大辟焉。 如其不然, 乞以此斧, 加臣顯戮, 亦朝廷之大恩。"


  • 【원본】 17책 13권 10장 B면
  • 【국편영인본】 1책 517면
  • 【분류】 교통-수운(水運) / 군사-관방(關防) / 무역(貿易) / 외교-일본(日本) / 상업-상품(商品) / 사상-서학(西學) / 역사-전사(前史) / 인물(人物) / 정론-정론(政論)