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조실록 11권, 정조 5년 6월 26일 정유 1번째기사 1781년 청 건륭(乾隆) 1781년 청 건륭(乾隆) 46년

제주 3고을에 윤음을 내리다

국역

제주(濟州)의 세 고을에 윤음(綸音)을 내렸는데, 그 내용은,

"아! 탐라(耽羅) 한 섬은 천리 바다 밖에 위치하고 있는데, 귤유(橘柚)를 공물(貢物)로 바치는 것은 하(夏)나라 때의 양주(楊州)와 같고 해마다 화류(驊騮)를 바치는 것은 한(漢)나라 때 대완(大宛)에서와 같아서, 현모(玄牡)를 바쳐 희생(犧牲)에 대비하고 비실(篚實)로써 변두(邊豆)에 공봉(供奉)하였으며, 또한 빈주(蠙珠)·모혁(毛革)·죽목(竹木)·지전(芝箭) 등의 것으로 기용(器用)의 자료와 도규(刀圭)의 수요에 공급되는 것도 이루 헤일 수 없이 많다. 그곳의 백성들은 돌을 모아서 담장을 쌓고 띠풀을 엮어 집을 만들며, 풍속이 어리석고 검소하지만, 예양(禮讓)의 아름다움이 있으며, 질병(疾病)이 적어 수고(壽考)하는 이가 많으니, 또한 해도(海島) 가운데 하나의 도회(都會)이다. 그곳은 토지(土地)가 척박하여 모맥(麰麥)과 두속(豆粟) 만이 생산되고 다스림에 있어서는 거리가 멀어 뱃길에 기탁하고 있으니, 아! 또한 위태롭고도 험난하다. 그러므로 조정에서는 특별히 진념(軫念)하여 내지(內地)의 백성들과 똑같이 사랑하였고, 무릇 위무(慰撫)하고 민휼(憫恤)하는 방도에 있어 극진하게 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 아! 우리 선 대왕(先大王)께서는 지도(地圖)를 조사하고 공물(貢物)을 살펴 인정(仁政)을 시행하였으므로 흉년이 들면 배로 곡식을 운송해 먹여 주었고, 방물(方物)을 바치러 오면 식량을 주어서 보내었으며, 인재를 찾고 폐막(弊瘼)을 묻기 위해서는 번번이 암행 어사를 파견하였고, 요역을 가볍게 하고 형벌을 살피기 위해서는 매양 부임되어 가는 관원을 신칙하는 등 온 섬의 수많은 생령(生靈)들이 먼 곳 사람을 회유하는 정화(政化)에 흠씬 젖어온 지가 50년이 되었다. 과인(寡人)이 등극한 이래로 지금껏 한 가지 은혜도 그대들에게 크게 베푼 것이 없는 가운데, 전지(田地)에 흉년이 든 적이 없어 비록 천심(天心)이 돌보아 주는 혜택을 받았지만, 선박은 표류된 것이 있어 해파(海波)가 고르지 못한 것에 많은 부끄러움을 느낀다. 또 멀리 푸른 바다 가운데 있어 구중 궁궐과는 현격히 가로막혀 있기 때문에 고통이 있어도 공소(控訴)할 곳이 없고, 훌륭한 재략(才略)을 지니고 있어도 천발(薦拔)될 계제(階梯)가 없으므로, 내가 매우 안스럽게 여기고 있다. 아! 공물로 바치는 허다한 물종(物種)으로 인한 폐단이 반드시 많을 것인데, 누가 그대들을 위하여 그런 사실을 알리려 하겠으며, 주현(州縣)의 여러 아문(衙門)에서 시키는 부역이 반드시 번거로울 터인데, 누가 그대들을 위하여 이를 견제(蠲除)하여 주려 하겠는가?

하늘이 인재를 낳은 것은 실로 고금(古今)이 똑같은 것이고, 하늘이 사람에게 양심(良心)을 준 것은 섬과 육지가 차별이 없는 것이다. 가난한 마을이라도 어찌 고유(高維)·고조기(高兆基) 같은 준재(俊才)가 없겠는가마는 누가 과거(科擧)에 응시(應試)하려 하겠으며, 그곳 백성들 가운데 어찌 김평(金秤)·정씨(鄭氏) 열부(烈婦) 같은 효자와 절부가 없겠는가마는 누가 포양(褒揚)하려 하겠는가? 원목(元牧)과 산목(山牧)의 말들을 번식시키는 데 있어 말을 해치거나 백성을 해치는 정사가 없으며, 포인(鮑人)과 선인(船人)이 편안한 삶을 누림에 있어 생업을 잃거나 거처를 잃는 탄식은 없는가? 옥송(獄訟)은 그 판결이 공평하여 과연 억울함을 품은 부류들이 없으며, 이서(吏胥)들은 가렴 주구를 엄격히 금단하여 과연 피곤하게 시달리는 걱정이 없는가? 이와 같은 백성들의 고통이 눈에 완연히 떠올라 매양 남쪽을 바라볼 적마다 밥을 먹어도 맛이 달갑지 않다.

아! 멀리 있거나 가까이 있거나 모두가 나의 적자(赤子)인 것이요, 이제 나는 그대들의 부모인 것인데, 부모로서의 책임을 다하지 못하였으니, 한밤중에 일어나 생각하면 어찌 스스로 부끄럽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에 선부(選部)에 명하여 문신(文臣)·무신(武臣) 가운데 자급(資級)과 경력(經歷)이 있는 사람을 가려서 세 고을의 네 장리(長吏)를 바꾸어 앉혀 백성을 사랑하여 다스리는 정사를 새롭게 하게 하였다. 또 전 홍문관 응교 박천형(朴天衡)을 어사(御史)에 임명하여 가서 나의 속마음을 선포하고, 이어 과거(科擧)를 설행하여 시취(試取)하게 하였으니, 이때가 바로 소원이 있으면 반드시 이룰 수 있고 재주가 있으면 반드시 쓰여질 수 있는 기회인 것이다. 아! 그대 대소 군민(軍民)들은 내가 거듭 간곡히 내리는 하유(下諭)를 조용히 듣고 내가 채방(採訪)하려는 뜻을 잘 본받아서 나에게 숨기는 것이 없도록 하라. 아! 지난번 인복(引鰒)의 수효를 특명(特命)으로 감하게 한 것이 구우 일모(九牛一毛)에 불과한 혜택이었지만, 혹 일푼 반푼이나마 효과가 있고, 여섯 가지 고역(苦役)의 윤회(輪回)를 혁파한 것과 각 산장(山場)의 횡축(橫築)을 창시(創始)한 것과 구점군(驅點軍)의 전규(前規)를 영구히 제거한 것과 우마감(牛馬監)의 권상(勸賞)을 새로 정한 것에 있어서도 또한 전에 견주어 헤아려 보면 유익한 점이 있는가? 그 나머지 민막(民瘼)과 읍폐(邑弊)에 관계된 것은 그 일의 크고 작음을 막론하고 모두 모름지기 어사에게 달려가서 호소하면 내가 등문(登聞)되기를 기다려 그대들을 위하여 헤아려 처리하겠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1책 11권 94장 A면
  • 【국편영인본】 45책 249면
  • 【분류】 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 / 윤리(倫理)
원문

○丁酉/下綸音于濟州三邑曰: "咨! 爾耽羅一島, 處于海外千里。 包貢橘柚, 有似乎后之楊州。 歲獻驊騮, 有似乎家之大宛玄牡, 而備犧牲、篚實, 而供籩豆。 亦粤蠙珠、毛革、竹木、芝箭之屬, 可以資器用而需刀圭者, 指不勝摟。 厥民聚石爲垣, 編茅爲屋, 俗癡儉有禮讓, 少疾病多壽考, 抑海島之一都會也。 第其壤地嶢瘠, 惟麰麥、豆粟, 生之經紀契活, 寄于本道。 吁! 亦危乎崎哉! 肆朝家特垂軫念, 視同內服, 凡所以慰撫之、憫恤之者, 靡不肅極。 猗歟! 我先大王, 考圖按貢, 發政施仁, 告饑饉, 則船粟而往哺之, 獻方物, 則糇糧而資送之。 搜才詢瘼, 則輒遣衣繡之臣, 輕徭審刑, 則每飭佩符之官, 環一島幾萬生靈, 涵囿於柔遠之化者, 五十五所矣。 逮寡人御極以來, 迄無一惠一恩之覃及爾等, 田無荒歲, 縱荷天心之眷顧, 舟有漂流, 多愧海波之不揚。 又是逖矣滄溟, 隔絶九重, 有疾苦而控訴無處, 抱才略而薦拔罔階, 予甚憐之。 噫! 貢獻之許多物種, 弊端必滋, 而孰肯爲爾等導達? 州縣之幾處衙門, 差役必繁, 而孰肯爲爾等蠲除? 生才實均於今古, 降衷無間於島陸。 圭竇之間, 豈無如高維高兆基之俊彦, 而孰肯賓貢, 編戶之中, 豈無如金秤烈婦之孝節, 而孰肯褒揚? 元牧、山牧之蕃孶, 而能無害馬害民之政? 鮑人、船人之寧謐, 而能無失業失所之歎歟? 訟獄則剖決稱平, 而果無抱冤之類; 吏胥則誅求痛斷, 而果無疲困之患歟? 似此民隱, 宛在目中, 每一南顧, 玉食靡甘。 噫! 無遠、無邇, 皆予赤子。 今予爲爾等父母, 而未能盡父母之責, 中宵興惟, 寧不自恧? 玆命選部, 擇文武有資歷者, 易三邑四長吏, 俾新字牧之政。 又命前弘文館應敎朴天衡, 爲御史, 往布予心腹, 仍令設科試取。 此正有願必送, 有才必用之會也。 咨! 爾大小軍民, 靜聽予申懇之諭, 克體予採訪之意, 無隱于予。 噫! 向來引鰒之特命減數, 雖不過九牛之毛, 或有, 一分半分之效, 而至於六苦役之革罷, 輪回各山場之創始, 橫築驅點軍之永除前規, 牛馬監之新定勸賞, 亦有比前斟酌之益否? 自餘係關于民瘼、邑弊者, 事無巨細, 感須奔訴于御史, 予其待登聞, 爲爾等裁處。"


  • 【태백산사고본】 11책 11권 94장 A면
  • 【국편영인본】 45책 249면
  • 【분류】 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 / 윤리(倫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