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조실록 14권, 태조 7년 윤5월 29일 갑진 2번째기사 1398년 명 홍무(洪武) 1398년 명 홍무(洪武) 31년

노모 봉양을 위해 제주 판관을 면직시켜 줄 것을 청한 김과의 진정전

국역

제주 판관(濟州判官) 김과(金科)가 진정전(陳情箋)을 올리었다.

"의리는 군신(君臣)보다 큰 것이 없고 정리는 모자(母子)보다 급한 것이 없으니, 군신의 의리와 모자의 정리가 둘이 다 같이 행하면서 서로 어긋나지 않는다면, 천하 국가의 도리가 어찌 이보다 나은 것이 있겠습니까? 삼가 생각하옵건대, 주상 전하(主上殿下)께서 잠저(潛邸)에 계실 때에 신(臣)처럼 국량(局量)이 작은 사람을 천대하지 않으시고 신을 막부(幕府)에 발탁해 두었으며, 왕위에 오른 초기에는 이내 신을 임명하여 친군위 도사(親軍衛都事)로 삼고, 다시 명하여 삼군부 진무(三軍府鎭撫)에 소속하게 하고 겸하여 원종 공신(原從功臣) 이화(李和)·이영(李英) 등의 반열(班列)에 끼이게 일컫게 되었습니다. 이로부터 그 후에는 여러 번 녹질(祿秩)을 옮겨 호조 좌랑(戶曹佐郞)에 이르렀으니 은혜가 지극히 후한 편입니다. 신은 일찍이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임금님 은혜의 만분의 일이라도 우러러 보답하기로 마음을 먹고, 이른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직책에 힘써서 일찍이 혹시도 게으른 적이 없었습니다. 병자년 봄 3월에 가운(家運)의 불행함을 당하여 신의 아버지가 병이 발생했는데, 신이 약을 맛볼 여가가 없으므로 직사(職事)를 사면(辭免)하기를 청했었습니다. 여름 4월에 신의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시므로 신이 3년 동안을 분묘(墳墓)를 지켰는데, 비록 조석으로 곡읍(哭泣)하는 시기이지만 대궐을 사모하는 정리는 어찌 감히 잠시 동안이라도 잊었겠습니까? 상제(喪制)를 마치고 난 후에는 외직(外職)을 얻어서 태평한 세상에 조그만 공적이라도 세우기를 원하였으니 이것이 신의 밤낮으로 임금에게 향한 정성입니다. 5월 21일에 신을 발탁하여 제주 판관(濟州判官)으로 임명하고 교수(敎授)의 직책까지 겸무하게 하시니, 더욱 임금의 은덕을 입게 되어 감축(感祝)하고 경행(慶幸)하옵니다. 즉시 임소(任所)로 가고자 하였으나, 신의 염려되는 것은 신의 어머니가 지금 이미 75세이온데, 늙고 쇠약하여 병석(病席)에 누워 조석으로 생명을 보전하기가 어렵게 되었습니다. 신이 이미 3년 동안이나 분묘(墳墓)를 지키고 있어 오랫동안 봉양을 못하였사온데, 지금 또 어머니를 떠나서 멀리 떨어져 있는 곳으로 가게 된다면 혼정 신성(昏定晨省)이 사이가 뜨고 음문(音問) 이 드물게 될 것이니, 어찌 다만 신이 어머니를 사모하는 것뿐이겠습니까? 또한 어머니도 신을 생각하여 더욱 병이 심할까 염려되오니, 이렇게 되면 신의 마음이 어찌 맡은 직책에 편안할 수가 있겠습니까? 고대의 기록에, ‘효도를 미루어 충성을 한다.’ 하였는데, 지금 신의 나이는 38세이므로 신하로 전하를 섬길 수 있는 시일은 장구하고 자식으로서 늙은 어머니를 효도할 수 있는 시일은 단촉(短促)하니, 이것이 신이 사면(辭免)할 의사를 우러러 진술하는 까닭입니다. 삼가 바라옵건대, 신의 하찮은 간청을 불쌍히 여기시고 혹시 신을 육지의 임무에 고쳐 임명하여 모자(母子)로 하여금 음문(音問)이 끊어지지 않게 한다면, 비록 문을 지켜 야경(夜警)하는 임무와 창을 메고 몽둥이를 잡는 천역(賤役)이라도 신이 어찌 감히 꺼리겠습니까? 늙은 어머니의 봉양을 마친 후에는 비록 종신토록 멀리 떨어져 있는 지역(地域)에 종사(從事)하게 되더라도 또한 어찌 감히 거절하겠습니까? 삼가 생각하옵건대, 임금께서 신을 고쳐 임명하여 효도로써 세상의 다스림을 밝히신다면, 군신(君臣)의 의리와 모자(母子)의 정리가 둘이 다 같이 행하면서 서로 어긋나지 않을 것입니다."

임금이 그 임무를 사면하도록 허가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3책 14권 11장 A면
  • 【국편영인본】 1책 126면
  • 【분류】 인사-임면(任免) / 인사-관리(管理)
원문

濟州判官金科, 上陳情箋曰:

義莫大於君臣, 而情莫急乎母子。 君臣之義、母子之情, 竝行不悖, 則天下國家之道, 何以加此? 恭惟主上殿下, 當潛邸之時, 不鄙臣斗筲之才, 擢置臣於幕府, 踐祚之初, 仍除臣爲親軍衛都事, 復命屬於三軍府鎭撫, 兼稱下於原從功臣等列。 自是厥後, 累遷祿秩, 至戶曹佐郞, 恩至渥也。 臣嘗以盡命竭力, 仰報聖恩之萬一爲心, 夙夜奉職, 未嘗或怠。 丙子春三月, 遭家不幸, 臣父遘疾, 臣嘗藥無暇, 乞辭職事。 夏四月, 臣父辭世, 臣守墳三載, 雖朝夕哭泣之際, 而戀闕之情, 豈敢斯須忘哉? 終制之後, 願得京外, 效毫髮於明時, 是臣日夜犬馬之戀也。 五月二十有一日, 擢臣除濟州判官, 兼敎授之職, 益荷上德, 感祝慶幸, 卽欲赴官。 然臣所慮者, 臣母今已七十五歲, 衰老褥疾, 朝夕難保。 臣旣以三年守墳, 久闕奉養, 今又離母, 赴於絶域, 則定省隔音問疎, 豈唯臣之戀母? 亦恐母之念我而益病也。 是則臣心豈得安於所職哉? 《傳》曰: "移孝爲忠。" 今臣年三十有八, 臣事殿下之日長, 子孝老母之日短, 此臣所以仰陳辭免之意也。 伏望憐臣卑懇, 儻改差臣於陸地之任, 令母子音問不絶, 則雖抱關擊柝之務、荷戈執殳之役, 臣何敢憚, 終養老母之後, 雖終身從事於絶域, 亦何敢辭? 伏惟上慈改差, 以明孝治, 則君臣之義, 母子之情, 庶可竝行而不悖矣。

上許免其任。


  • 【태백산사고본】 3책 14권 11장 A면
  • 【국편영인본】 1책 126면
  • 【분류】 인사-임면(任免) / 인사-관리(管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