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종실록 139권, 성종 13년 3월 2일 경오 3번째기사 1482년 명 성화(成化) 18년

후원에 나가 무신들의 활 쏘는 것을 보고 정괄을 이조 판서로 삼다

후원(後苑)에 나아가서 무신들의 활 쏘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또 친정(親政)할 때에 이조 판서를 갈게 됨에 따라 이조 참판 정괄(鄭佸)이 이조 판서의 물망에 주의(注擬)138) 되어 들어갔는데, 어서(御書)로 ‘정괄을 승급시켜 판서를 삼는다.’고 하니, 정괄이 차서(次序)가 아니라는 것으로 사양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사람의 기량(器量)이 〈그 자리에〉 알맞은 이를 요(要)하는 것이니, 경(卿)은 판서가 될 만하다."

하니, 정괄이 재차 사양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큰 소임(所任)을 어찌 사양만 하느냐?"

하고, 이어서 도승지(都承旨) 이길보(李吉甫)에게 명하여 삽금대(鈒金帶)를 찾아 띠어주게 하였다. 그리고 또 영의정(領議政) 정창손(鄭昌孫)을 명소(命召)하니, 정창손이 즉시 들어와 보았다. 임금이 말하기를,

"경의 아들을 판서로 삼았다. 그래서 보게 하려는 것이다."

하니, 정창손이 절하고 사례하였다. 정사를 마치자, 정괄에게 명하여 입시(入侍)한 재상들의 줄에 앉게 하고, 또 여러 재상들에게 술을 돌리게 하였다. 정괄이 술을 부어 정창손의 앞에 올리고, 정괄이 마실 때 술잔을 비우지 못하니, 우의정(右議政) 홍응(洪應)이 옆에서 〈다 마시기를〉 권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자식을 아는 것은 아버지만한 이가 없다 하였으니, 영의정이 어찌 이조 판서의 주량(酒量)을 알지 못하겠는가?"

하니, 정창손이 그가 술을 잘 마시지 못한다고 대답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오늘 이 좌석에 있는 문신(文臣)들은 버들로써 시제(詩題)를 삼아 소시(小詩)를 지어 바치라."

하고, 곧 양(陽)·장(長)·왕(王)의 세 운자(韻字)를 불렀다. 이조와 병조의 낭관(郞官)들도 모두 시를 짓게 하고, 또한 내승(內乘) 이명숭(李命崇)에게도 명하여 지으라 하였다. 임금이 친히 높고 낮음의 등급을 매겨서 좌승지(左承旨) 노공필(盧公弼)의 시(詩)를 첫째로 삼아 정승들에게 보였다. 정승들이 아뢰기를,

"윤당(允當)합니다."

하자, 임금이 말하기를,

"〈이 시에는〉 날카로운 기상이 있다."

하니, 정승들이 말하기를,

"그러합니다."

하자, 홍응(洪應)에게 명하여 〈노공필에게〉 술로써 상을 주게 하였다. 그 시에 이르기를,

"상림(上林)의 좋은 절후 양춘(陽春)이 돌아오니,

어류(御柳)가 바람 따라 자라는 듯하여라.

미물(微物)도 임금의 은혜를 받았기에,

해마다 자라나 군왕(君王)을 받드네."

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김세형(金世衡)이 활을 힘차게 쏘지마는 궁력(弓力)이 약하다."

하였는데, 홍응이 대답하기를,

"대저 무재(武才)를 논할 적에 궁력(弓力)이 강하고 약한 것에 두지 아니하고 마땅히 많이 맞히면서 절묘한 것을 귀하게 여깁니다. 조종조에서 박이녕(朴以寧)을 일컬어 명장(名將)이라 하였습니다만, 그의 궁력은 매우 약하였다 합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과연 경(卿)의 말과 같다."

하였다. 임금이 김세적(金世勣)의 활쏘는 것을 보고 말하기를,

"김세적의 화살 나가는 길이 매우 낮다. 이것은 궁력(弓力)이 강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지금의 무신으로는 누가 가장 강한가? 그리고 박산(朴山)임득창(任得昌)과는 누가 뛰어나고 누가 모자라는가?"

하니, 김세적이 대답하기를,

"지금은 임득창보다 뛰어난 이가 없습니다. 그리고 또 임득창의 매부(妹夫) 김인(金潾)임득창과 서로 맞먹습니다."

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무과(武科)에 합격하였는가?"

하자, 김세적오순(吳純)이 말하기를,

"그렇습니다."

하였는데, 임금이 말하기를,

"그의 이름은 무슨 글자를 쓰는가?"

하니, 오순이 말하기를,

"신은 확실히 알지 못합니다."

하자, 임금이 두세 번 그의 이름을 외었다.


  • [註 138]
    주의(注擬) : 관원을 임명할 때 먼저 문관(文官)은 이조(吏曹), 무관(武官)은 병조(兵曹)에서 후보자 세 사람[三望]을 정하여 임금에게 올리던 것.

○御後苑, 觀武臣射。 且親政時, 吏曹判書當遞, 參判鄭佸, 注擬判書望以入, 御書: "鄭佸超爲判書。" 辭以不次。 上曰: "人器須要相當, 卿可爲判書矣。" 再辭。 上曰: "大任安可辭?" 仍令都承旨李吉甫, 覓鈒金帶帶之。 又命召領議政鄭昌孫, 昌孫卽入見。 上曰: "以卿之子判書。 爲欲使見之。" 昌孫拜謝下政訖, 命坐於入侍宰相之列, 又令行酒於諸宰。 酌酒進於昌孫前, 飮不盡盃, 右議政洪應, 從旁勸之。 上曰: "知子莫如父, 領議政豈不知判書之酒量?" 昌孫對以不能飮。 上曰: "今日在座文臣, 以柳爲題, 製小詩以進。" 卽呼陽、長、王三字爲韻。 令吏、兵郞竝製, 又命內乘李命崇製之。 上親第高下, 以左承旨盧公弼之詩爲第一, 以示政丞等。 政丞等啓曰: "允當。" 上曰: "有銳氣。" 政丞等曰: "然。" 命洪應賞以酒。 其詩曰: "上林住節屬春陽, 御柳隨風不勝長。 微物亦應霑雨露, 年年長得捧君王。" 上曰: "金世衡猛射, 而弓力弱者也。" 洪應對曰: "大抵論武才, 不在弓之强弱, 當以多中, 而妙爲貴。 祖宗朝, 朴以寧稱爲名將, 其弓甚弱。" 上曰: "果如卿言。" 上見金世勣射曰: "世勣矢道甚卑。 是弓力强故也。 且今時武臣, 誰爲最强乎? 朴山任得昌, 孰優孰劣?" 世勣對曰: "今時無出於得昌。 且得昌妹夫金潾, 亦與得昌相等。" 上曰: "中武科乎?" 世勣吳純曰: "然。" 上曰: "其名何字?" 吳純曰: "臣未的知。" 上再三誦其名。


  • 【태백산사고본】 20책 139권 2장 A면
  • 【국편영인본】 10책 305면
  • 【분류】 왕실-행행(行幸) / 왕실-의식(儀式) / 왕실-국왕(國王) / 인사-임면(任免) / 인사-관리(管理) / 군사-병법(兵法) / 군사-군기(軍器) / 어문학-문학(文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