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조에서 민치화 등의 상언에 대하여 아뢰다
예조에서 아뢰기를,
"전 현령 민치화(閔致和) 등의 상언(上言)을 살펴보니, ‘그 본생조(本生祖) 고 좌랑(佐郞) 민백증(閔百增)에게 두 아들이 있었습니다. 장자(長子) 고 승지 민양현(閔養顯)은 종숙(從叔)인 고 승지 민백순(閔百順)에게 출계(出繼)하여 고 좌의정 민진원(閔鎭遠)의 제사를 받들었고, 차자(次子)인 고 진사(進士) 민응현(閔膺顯)은 기해년065) 에 그 종조모(從祖母)인 정경 부인 이씨(李氏)의 상언으로 인하여, 민홍섭(閔弘燮)을 파양(罷養)066) 하고 본생 삼촌숙(本生三寸叔)인 민응현으로 다시 입후(立後)를 시켰으니, 곧 고 우의정 민백상(閔百祥)의 제사를 받들게 되었습니다. 죄로써 파양함이 이미 예론(禮論)에 어긋났으며, 생가(生家)를 절사(絶祀)시키고 출계함이 또 법전에 어긋납니다. 귀속(歸屬)할 곳이 없이 파양하는 것과 두 아들이 있으면서 절사된 것은, 윤상(倫常)에 어긋남이 이보다 심한 경우가 없습니다. 본생조(本生祖)의 절사가 지금 40여 년이 되었으니, 청컨대 그 본생 종조(本生從祖) 고 판서 민백흥(閔百興)의 제3자 민상섭(閔相燮)을 그 본생조 민백증에게 입후하도록 하소서.’하였습니다. 삼가 《대전통편(大典通編)》의 입후조(立後條)를 상고하건대, 이르기를, ‘남의 후계(後繼)된 자로 본생 부모(本生父母)에게 절사(絶嗣)가 되는 경우 파양하고, 본종(本宗)으로 돌아오며, 그 계후(繼後)가 되었던 집에는 다시 입후를 허용한다.’ 하였고, 또 이르기를, ‘만약 계후되었던 부모가 이미 죽어 다시 입후할 수 없는 경우에는 방친(傍親)에 반부(班祔)067) 하는 예에 따라 임시 그 신주(神主)를 받들게 하여 절사(節祀)되지 않도록 하며, 원래 본생가(本生家)에 다시 입후하는 법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조정에서 시행하도록 허용하는 바와 본조(本曹)에서 준행(遵行)하는 바는 곧 법전대로 할 뿐입니다. 앞서의 말에 따르면 파양하고 본종으로 돌아오는 것이 옳고, 뒤의 말에 따르면 임시로 받들게 하는 것이 옳습니다. 어찌 예(禮)와 율(律)에 없는 일에 따라서 앞으로 무궁한 폐단을 만들 수 있겠습니까? 지금의 이 요청은 스스로 시행이 될 수 없는 경우이나 윤상에 어긋남에 있어서는 진정 상언한 내용과 같습니다. 모든 사가(私家)의 변례(變禮)로써 의거(依據)하기 어려운 것은 반드시 조정에서 참작 절충하기를 기다려서 윤상을 어지럽히는 변고가 없게 하는 것이 또한 계도(啓導)에 마땅히 힘써야 할 바입니다. 지금 이 고 상신(相臣) 집안의 파양은 이미 상법(常法)에 어긋났고 윤상에도 크게 어긋났으며, 또 자식이 있는 사람으로 하여금 마침내 절사(節嗣)가 되게까지 하였으니, 그 집안의 통박(痛迫)스런 실정을 어찌 임금에게 호소하는 일이 없을 수 있겠습니까? 본조(本曹)에 있는 그때의 문서를 상고해 보면 고 상신의 부인이 민홍섭(閔弘燮)의 파양을 요청하였을 때에 본조에서 일이 외람되다 하여 시행치 말기를 요청하니, 이내 수의(收議)하라는 하교가 있었습니다. 고 상신 정홍순(鄭弘淳)은 말하기를, ‘한 번 인륜이 정해지면 곧 직계 족속이니, 어찌 바꾸는 이치가 있겠습니까? 말속(末俗)이 떠들썩함은 모두 이해(利害)에 따른 사심에서 나온 것입니다. 인륜를 손상시키고 의리를 무시함이 이보다 심한 경우가 없으니, 신은 늘 이를 한탄스럽게 여겼습니다. 해조에서 논한 내용이 엄정하여 다른 논의가 용납될 수 없습니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적신(賊臣) 송덕상(宋德相)은 좨주(祭洒)로서 헌의(獻議)하여 이르기를, ‘민홍섭(閔弘燮)은 곧 민백상(閔百祥)의 소생이 아니므로 특별히 파양을 허용하고 다시 입후하는 것도 예법에 해가 없으니, 그 파양을 허용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하여, 마침내 이 논의에 의하여 시행하였습니다. 대체로 이 부자(父子)의 서열을 계승하는 대륜(大倫)은 곧 천지의 정해진 법칙으로서 바꿀래야 바꿀 수 없고 갈아 없앨래야 없앨 수 없습니다. 성인이 계후(繼後)하는 뜻을 엄정히 하고, 조정에서 절사(絶嗣)를 잇는 법을 중요하게 여겨서, 명호(名號)가 한 번 정해지면 모두 기혈(氣血)이 이어진 부모·자식과 같을 따름이니, 소생의 여부를 헤아릴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비록 반역죄를 지어 처자가 죽음을 당하고 의형(劓刑)을 당한다 하더라도 어느 것인들 불가하겠습니까? 그러나 부자의 윤리에 있어서는 원래 죄벌이 미친다 하여 마음내키는 대로 변경할 수는 없습니다. 특히 적신(賊臣)의 근거 없는 어긋난 논리로 인하여 마침내 대륜에 어긋나는 극변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인가(人家)에 이와 같이 윤상(倫常)을 어지럽히는 일이 있으면, 반드시 이를 빙자하여 준례대로 삼을 것이니, 이른바 천지의 법칙이 끊어지고 어긋남은 더 말할 것도 없고, 실로 성세(聖世)에 마땅한 바가 아닙니다. 고(故) 상신이 ‘모두 이해(利害)의 사심에서 나왔다.’라고 한 것은, 시귀(蓍龜)068) 와 다름이 없는 견해입니다. 지금 그 집안의 호소를 맞이하였으니, 그 무너지고 어지러워진 근본을 규명하여 속히 시정 조치를 행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더구나 이미 파양하였다가 도로 입후한 경우도 많은 예가 있습니다. 민홍섭은 이미 파양되었던 데로 되돌아가고, 민응현(閔膺顯)은 그 본생의 종가로 돌아가야만 비로소 윤상의 차례가 바르게 되고 예절과 법에 모두 맞는다고 하겠습니다. 그러나 일이 매우 중대하고 어려워 한 예관(禮官)이 마음대로 단정할 일이 아닙니다. 청컨대 대신에게 문의하여 처리하소서."하니, 윤허하였다. 또 아뢰기를,
"시임과 원임 대신에게 문의하니, 영의정 서용보(徐龍輔)는 말하기를, ‘막중한 것이 천륜이요, 막엄한 것이 윤서(倫序)를 잇는 일입니다. 죄명은 죄명이요 예율(禮律)은 예율일 뿐이니, 어찌 죄명을 연고로 예율에 없는 법을 창설할 수 있겠습니까? 본생 부모가 절사(絶嗣)되게 되면 파양하고 본종(本宗)으로 돌아감이 곧 법전이요, 이미 파양하였다가 도로 입후함도 많은 전례가 있습니다. 해조(該曹)의 복계(覆啓)에서 이른 바 ‘이미 파양되었던 데로 되돌아가고, 그 본생의 종가로 돌아가게 해야 한다.’고 한 것은 과연 타당한 말입니다. 처음은 비록 어긋났으나 마침내는 바로 돌아갔으니, 인정과 천리에 모두 어긋나지 않습니다. 신은 본래 예(禮)의 뜻에 어두워 감히 단정해 말할 수 없습니다.’ 하였고, 좌의정 김사목(金思穆)은 말하기를, ‘천륜은 윤서(倫序)를 계승하는 뜻을 소중하게 하고, 국법은 본종(本宗)으로 돌아가는 것을 허용하였으니, 고 상신의 헌의는 논리가 엄정하고 예조 당상의 복계(覆啓)는 근거를 상고한 것이 명확합니다. 신이 그 사이에서 어찌 다른 견해가 있겠습니까? 이미 어긋난 논의를 시정하고 이미 끊어진 제사를 도로 이으면 예와 율에 서로 어긋나지 않을 듯합니다. 그러나 일이 매우 어렵고 신은 본래 예에 대한 식견이 어두워 감히 단언할 수 없습니다.’ 하였으며, 우의정 남공철(南公轍)은 말하기를, ‘제방(隄防)은 곧 제방이요, 윤리는 곧 윤리입니다. 민씨(閔氏) 집의 파양 문제는 당시에 고 상신의 논의를 신도 일찍이 들었습니다. 예조 당상의 회계(回啓) 가운데, ‘민홍섭은 이미 파양되었던 데로 되돌아가고, 민응현은 그 본생의 종가로 돌아가게 해야 한다.’고 한 것은 의리의 엄정함에 해가 없고, 실로 예와 율의 정당함에 맞습니다. 다만 널리 하문하여 전하께서 재결(裁決)하심이 어떻겠습니까? 대체로 남의 계후(繼後)가 된 자는 곧 소생(所生)과 다름이 없습니다. 그런데 불행히 사람의 집에 매우 무거운 죄를 범한 자가 있는 경우에 파양 문제를 어려움 없이 위에 호소하여 앞뒤에 이를 본받는 자가 허다합니다. 이는 화복과 이해의 사사로운 정리에서 나오는 경우가 많으니, 풍속을 손상하는 것이 진실로 작은 일이 아닙니다. 지금 상언(上言) 문제로 인하여 마땅히 법으로 규정하되, 충현(忠賢)과 공훈(功勳)의 적파(嫡派)로서 조정에서 그 제사를 걱정하는 데 대해 공의가 일치하여 전하께서 특별히 파양을 허용한 것이 아닌 경우를 제한 외에 본가에서 함부로 호소하여 이미 정한 천륜을 바꾸려 하는 자는, 유사(攸司)에 신칙하여 일체 금단하도록 하고 시행을 들어주지 않으신다면, 풍교에 빛나는 것이 적지 않을 것입니다. 어리석은 소견을 감히 이와 같이 덧붙입니다.’고 하였습니다. 대신들의 논의는 이러하니, 청컨대 전하께서 재결하소서."
하니, 그대로 따랐다.
- 【태백산사고본】 22책 22권 24장 A면【국편영인본】 48책 154면
- 【분류】정론-정론(政論) / 가족-가족(家族)
- [註 065]기해년 : 1779 정조 3년.
- [註 066]
파양(罷養) : 양자의 인연을 끊음.- [註 067]
반부(班祔) : 아들이 없는 사람의 신주(神主)를 조상의 사당(祠堂)에 함께 모시는 일.- [註 068]
시귀(蓍龜) : 점칠 때에 쓰는 가새풀과 거북.○辛未/禮曹啓言: "觀此前縣令閔致和等上言, 則 ‘其本生祖故佐郞百增, 有二子。 長子故承旨養顯, 出爲從叔故承旨百順後, 奉故左議政鎭遠祀次, 子故進士膺顯, 己亥年, 其從祖母貞敬夫人李氏上言罷養, 弘燮以其本生三寸叔膺顯, 更爲立後, 乃故右議政百祥之奉祀。 以罪罷養, 旣違禮論, 絶祀出繼, 又非法典。 無歸屬而罷養, 有二子而絶祀, 倫常乖舛, 莫此之甚。 而本生祖絶祀, 今至四十餘年, 請以其本生從祖故判書百興第三子相燮, 立後於其本生祖百增云。’ 謹按《大典通編》立後條曰, ‘爲人後者本生父母絶嗣, 則罷繼歸宗, 許其所後家改立後,’ 又曰, ‘若所後父母已死, 不得改立後, 則從傍親班祔例權奉其神主, 俾不絶祀, 元無本生家復爲立後之法。’ 朝家之所許施, 本曹之所遵行, 卽惟法典而已。 由前而言則罷繼歸宗可也, 由後而言則使之權奉可也。 豈可循禮律所無之事, 啓後來無窮之(弊)〔弊〕 乎? 今此所請, 自在勿施之科, 而若倫常之乖舛, 誠如上言內辭意。 凡百私家變禮之難於依據者, 必待朝家之酌量折衷, 俾無亂常之變者, 卽亦導齊之當務。 則今此故相家, 以罷養旣乖經法, 大違倫常, 而又使有子之人, 竟致絶嗣之境, 以其家痛迫之情, 安得無籲天之擧乎? 取考曹中所在伊時文蹟, 則故相夫人之請罷養弘燮時, 本曹以事係猥越, 仰請勿施, 仍有收議之敎。 故相臣鄭弘淳以爲, ‘一定人倫, 便是天屬, 寧有改易之理? 末俗紛紜, 都出利害之私。 傷倫蔑義, 莫甚於此, 臣常爲之愍歎。 該曹論列, 辭意嚴正, 尤無容他議’ 云。 而賊臣德相, 以祭酒獻議, 以爲 ‘弘燮, 旣非百祥之所生, 則特許罷養, 更爲立後, 無害於禮律, 許其罷養爲宜。’ 云, 畢竟依此議施行矣。 蓋此父子繼序之大倫, 卽天經地義之移易不得, 磨滅不得。 聖人嚴爲後之義, 朝家重繼絶之法, 名號一定, 均是屬毛離裏之親而已, 所生與否非可較量。 雖元惡大憝, 孥戮劓殄, 何施不可? 而至於父子之倫, 元無以罪累所及, 任意變改。 特以賊臣無稽之悖論, 竟至大倫乖常之極變。 其後人家似此亂倫之事, 必藉此爲例, 所謂天經地義, 斁絶乖舛, 更無餘地, 實非聖世之所宜有。 故相臣所謂 ‘都出利害之私’ 云者, 無異蓍龜之見。 今當其家呼籲, 溯其壞亂之本, 亟行釐正之擧, 斷不可已。 況旣罷還養, 亦多已例。 弘燮則還其已罷之養, 膺顯則歸其本生之宗, 方可謂倫序得正, 禮律俱合。 而事係重難, 非一禮官擅斷。 謂問議大臣處之。" 允之。 又啓言: "問議于時原任大臣, 則領議政徐龍輔以爲, ‘莫重者天倫, 莫嚴者繼序。 罪名自罪名, 禮律自禮律, 豈可因罪名之故, 而創禮律所無之法也? 本生父母絶嗣, 罷繼歸宗, 卽是法典, 而旣罷還繼, 亦多已例。 該曹覆啓所云, ‘還其已罷之養, 歸其本生之宗者。’ 果是切當。 而始雖乖戾, 卒乃歸正, 人情天理, 兩相不悖。 而臣素昧禮意, 不敢質言。’ 左議政金思穆以爲, ‘天倫重繼序之義, 國典許歸宗之法, 故相獻議, 辭理嚴正, 禮堂覆啓, 考据明的。 臣於其間, 寧有他見? 追正旣乖之論, 還續已絶之祀, 以禮以律, 似不相悖。 而事係重難, 臣素昧禮識, 未敢質言。’ 云。 右議政南公轍以爲, ‘隄防自隄防, 倫理自倫理。 閔氏家罷養事, 其時故相之論, 臣亦曾聞之矣。 禮堂回啓中, 弘燮則還其已罷之養, 膺顯則歸其本生之宗云者, 無害於義理之嚴, 實合於禮律之正。 惟在博詢上裁之何如? 而大抵爲人後者, 便與所生無異。 不幸人家有罪犯之至重者, 則罷養一款, 無難上籲, 由前由後, 比比爲之。 此多出於禍福利害之私, 而傷風敗俗, 誠非細故。 今因上言事端, 宜著令式, 除非忠賢功勳嫡派之朝家爲軫其祀, 公議所同, 自上特許移罷者外, 自本家, 擅自來籲, 欲易已定之天倫者, 飭令所司, 一切禁斷, 勿爲聽施, 則有光風敎。 宜不淺尠, 愚昧之見, 敢此附陳’ 云。 大臣之議如此, 請上裁。" 從之。
- 【태백산사고본】 22책 22권 24장 A면【국편영인본】 48책 154면
- 【분류】정론-정론(政論) / 가족-가족(家族)
- [註 0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