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종실록4권, 태종 2년 11월 19일 무술 2번째기사
1402년 명 건문(建文) 4년
전 승추부 판사 강회백의 졸기
전 참판승추부사(參判承樞府事) 강회백(姜淮伯)이 죽었다. 회백은 진양(晉陽) 사람인데, 공목공(恭穆公) 강시(姜蓍)의 아들이다. 병진년에 과거에 오르고, 임술년에 나이 26세로서 대언(代言)이 되었는데, 이해에 봉익 대부(奉翊大夫) 밀직 제학(密直提學)에 승진하였다. 을축년 겨울에 하정사(賀正使)로 경사(京師)에 갔고, 무진년에 또 경사에 조회(朝會)하였다. 기사년에 광정 대부(匡靖大夫) 판밀직사사(判密直司事)를 제수하여 교주(交州)·강릉도(江陵道)를 관찰(觀察)하였고, 신미년에 정당 문학(政堂文學)에 옮기어 사헌부 대사헌(司憲府大司憲)을 겸임하였다. 임신년 여름에 진양(晉陽)으로 폄출(貶出)되었다가, 7년 경진에 동북면 도순문사(東北面都巡問使)로 제수되어 정헌계(正憲階)에 올랐고, 조금 뒤에 참판승추부사(參判承樞府事)에 제수되었다. 병으로 집에서 죽으니 46세였다. 회백은 총명(聰明)이 남보다 뛰어나고 강개(慷慨) 노성(老成)하여, 가는 곳마다 성적(聲績)이 있었다. 다섯의 아들이 있으니, 강종덕(姜宗德)·강우덕(姜友德)·강진덕(姜進德)·강석덕(姜碩德)·강순덕(姜順德)이었다.
- 【태백산사고본】 2책 4권 24장 B면【국편영인본】 1책 252면
- 【분류】인물(人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