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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지 / 강원도 / 삼척 도호부 / 울진현
울진현(蔚珍縣)
지현사(知縣事) 1인.
본래 고구려우진야현(于珍也縣)인데, 신라에서 지금의 이름으로 고쳐서 군(郡)으로 하였고, 고려에서 울진현이라 일컬었으며, 본조에서도 그대로 따랐다.【현의 사람들이 전하기를, “옛이름은 반이군(半伊郡) 또는 선사군(仙槎郡)이었다.” 한다. 】
약사진(藥師津)【현의 남쪽에 있다. 】골장진(骨長津)【현의 북쪽에 있다. 】사방 경계는 동쪽으로 바다 어귀에 이르기 8리, 서쪽으로 경상도 안동(安東) 임내 소천현(小川縣)에 이르기 63리, 남쪽으로 평해(平海)에 이르기 37리, 북쪽으로 삼척(三陟)에 이르기 32리이다.
호수가 2백 70호요, 인구가 1천 4백 83명이다. 군정은 시위군이 38명이요, 선군이 70명이요, 수성군(守城軍)이 4명이다.
토성(土姓)이 5이니, 임(林)·장(張)·정(鄭)·방(房)·유(劉)요, 속성(續姓)이 1이니, 민(閔)이다.영천(榮川)에서 왔는데, 향리이다. 】
땅이 기름지고 메마른 것이 반반이며, 풍속이 해산물로 생업을 삼고, 무예를 숭상한다. 간전(墾田)이 1천 3백 51결이요,【논이 3분의 1이다. 】토의(土宜)는 오곡과 뽕나무·삼·감·밤·배·닥나무이다. 토공은 꿀·밀[黃蠟]·철(鐵)·호도·석이·오배자(五倍子)·조피나무열매[川椒]·미역·칠·사슴포·여우가죽·삵괭이가죽·노루가죽·범의 가죽·돼지털·대구·문어·숭어·전복·홍합이요, 약재는 복령·승검초뿌리[當歸]·바디나물뿌리[前胡]·대왕풀[白芨]·오미자·인삼이요, 토산(土産)은 가는대와 왕대요, 염분(鹽盆)이 61이다. 자기소(磁器所)가 1이니, 현의 북쪽 10리 신곡리(薪谷里)에 있고, 도기소(陶器所)가 1이니, 현의 북쪽 12리 감대리(甘大里)에 있다.【모두 품질이 하품이다. 】
황산 석성(皇山石城)【둘레 6백 16보 5척인데, 때로 읍성(邑城)으로 삼으며, 안에 샘이 4, 못이 하나 있는데, 샘은 비록 크게 가물어도 모두 마르지 아니하나, 못은 크게 가물면 간혹 마른다. 】온천(溫泉)이 현의 북쪽 44리 흥부역(興富驛)의 서쪽 구수우 물산동(仇水亐勿山洞)에 있다. 역(驛)이 3이니, 흥부(興富)【옛 이름은 흥부(興府)이다. 】·덕신(德神)【옛 이름은 덕신(德新)이다. 】·수산(守山)이다.【옛 이름은 수산(壽山)이다. 】봉화가 4곳이니, 전반인산(全反仁山)이 현의 남쪽에 있고,【남쪽으로 평해(平海) 사동산(沙冬山)에, 북쪽으로 죽진산에 응한다. 】죽진산(竹津山)【북쪽으로 죽변곶(竹邊串)에 응한다. 】·죽변곶(竹邊串)【북쪽으로 긍출도산(亘出道山)에 응한다. 】긍출도산(亘出道山)이다.【북쪽으로 삼척 가곡산(可谷山)에 응한다. 】우산(于山)무릉(武陵) 2섬이 현의 정동(正東) 해중(海中)에 있다.【2섬이 서로 거리가 멀지 아니하여, 날씨가 맑으면 가히 바라볼 수 있다. 신라 때에 우산국(于山國), 또는 울릉도(鬱陵島)라 하였는데, 지방(地方)이 1백 리이며, 〈사람들이 지세가〉 험함을 믿고 복종하지 아니하므로, 지증왕(智證王) 12년에 이사부(異斯夫)하슬라주(何瑟羅州) 군주(軍主)가 되어 이르기를, “우산국 사람들은 어리석고 사나와서 위엄으로는 복종시키기 어려우니, 가히 계교로써 하리라.” 하고는, 나무로써 사나운 짐승을 많이 만들어서 여러 전선(戰船)에 나누어 싣고 그 나라에 가서 속여 말하기를, “너희들이 항복하지 아니하면, 이 〈사나운〉 짐승을 놓아서 〈너희들을〉 잡아먹게 하리라.” 하니, 그 나라 사람들이 두려워하여 와서 항복하였다. 고려 태조(太祖) 13년에, 그 섬 사람들이 백길토두(白吉土豆)로 하여금 방물(方物)을 헌납하게 하였다. 의종(毅宗) 13년에 심찰사(審察使) 김유립(金柔立) 등이 돌아와서 고하기를, “섬 가운데 큰 산이 있는데, 산꼭대기로부터 동쪽으로 바다에 이르기 1만여 보이요, 서쪽으로 가기 1만 3천여 보이며, 남쪽으로 가기 1만 5천여 보이요, 북쪽으로 가기 8천여보이며, 촌락의 터가 7곳이 있고, 간혹 돌부처·쇠북·돌탑이 있으며, 멧미나리[柴胡]·호본(蒿本)·석남초(石南草) 등이 많이 난다.” 하였다. 우리 태조(太祖) 때, 유리하는 백성들이 그 섬으로 도망하여 들어가는 자가 심히 많다 함을 듣고, 다시 삼척(三陟) 사람 김인우(金麟雨)를 명하여 안무사(安撫使)를 삼아서 사람들을 쇄출(刷出)하여 그 땅을 비우게 하였는데, 인우가 말하기를, “땅이 비옥하고 대나무의 크기가 기둥 같으며, 쥐는 크기가 고양이 같고, 복숭아씨가 되[升]처럼 큰데, 모두 물건이 이와 같다.” 하였다. 】
【영인본】 5책 679면
【태백산사고본】 57책 153권 10장 B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