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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실록 47권, 고종 43년 3월 25일 陽曆 3번째기사 1906년 대한 광무(光武) 10년

이필화가 상소문을 올려 학교 설립을 제창할 것을 아뢰다

봉상사 부제조(奉常司副提調) 이필화(李苾和)가 올린 상소의 대략에,

"삼가 생각건대 오늘날 나라의 형세는 아득한 만사가 다만 인재를 교육시키는 길만 있으니 그렇게 하면 거의 뒷날 회복하는 터전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대개 예로부터 나라를 다스림에는 백성을 근본으로 하였는데, 백성들의 지혜가 개명하지 못하고서 나라를 보전한 경우는 있지 않았습니다. 융성한 삼대(三代)에는 널리 학교의 제도를 설치하여 수신(修身)·제가(齊家)·치국(治國)·평천하(平天下)의 도를 가르쳤습니다. 이로 말미암아 본다면 삼대의 백성들은 비록 종이나 천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소학(小學)에서 도야해 나오지 않은 사람이 없었고, 벼슬아치들에 미쳐서는 태학(太學)에서 인재로 성취되어 치국·평천하의 기술을 밝게 익히지 않은 자가 없었습니다. 삼대가 장구하게 나라를 유지하면서 그 백성을 보전할 수 있었던 것은 인재를 교육하였기 때문입니다.

아! 우리 본조(本朝)에서도 이를 거울로 삼아 나라를 세운 초기부터 삼대 때에 인재를 교육한 법을 숭상하고 공자(孔子)와 맹자(孟子)의 도덕의 학문을 존중하여 곧 학교를 일으키고 인재를 양성하는 것을 급선무로 삼았습니다. 이미 태학을 설치하고 다시 사부학당(四部學堂)을 설치하였으며 또한 동몽교관(童蒙敎官)을 두어 서울에서 교육을 하였습니다. 이미 향교가 있는데도 또 서원(書院)을 설치하였으며 또 글방을 두어 군읍(郡邑)에서 가르치게 하였습니다. 또 벼슬아치들이 진급에 조급하여 실제적인 학문을 습득하지 않을까 우려하여 특별히 호당(湖堂)을 설치하여 휴가를 주어 글을 읽게 하였으며, 또 산림(山林)에 파묻혀 있는 선비들이 깊이 숨어 나오지 않아 학문이 뛰어난데도 세상에 등용되지 못할까 우려하여 반드시 힘을 다하여 찾아내어 권장하고 포상함으로써 명예와 절의를 북돋았습니다. 이것이 우리나라가 문화가 융성하고 역사가 장구해진 까닭입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근세 이후로 학교가 폐지되고 교양에 대한 말을 들을 수 없으며,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책을 읽는 종자들을 다시 볼 수 없게 되었단 말입니까? 오늘날 나라의 형세와 백성들의 운명이 이처럼 극도에 달한 까닭은 교육이 없기 때문일 뿐입니다.

대저 오늘날 만국이 서둘러 맞아 들이거나, 천하 모두가 문명이라고 일컫는 것들을 가만히 살펴보면 이는 모두 인재를 교육한 큰 공효가 아닌 것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교육을 받지 못한 우리의 백성들을 저 교육을 받은 사람들과 대비해 볼 때 그 지혜와 우둔, 문명과 몽매는 하늘과 땅처럼 까마득히 차이가 날 뿐만 아닐 것입니다. 만약 이를 수치스럽게 여긴다면 교육을 급선무로 삼는 것 만한 것이 없습니다. 그러면 우리나라도 저 열국(列國)들과 동등한 나라가 될 것입니다. 이것이 신이 말한 교육 한 가지로 거의 훗날 회복하는 기틀로 삼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비록 그렇지만 이른바 교육이라는 것도 옛날과 오늘날의 차이가 있으니 옛것만을 고집하고 오늘날 학문에 어두운 것은 자막(子莫)의 집중(執中)과 같은 것이며, 그렇다고 오로지 오늘의 학문만 숭상하고 옛것을 버릴 것 같으면 그 근본을 잊어버리게 될 것입니다.

대체로 나라가 있고 백성이 있으면 반드시 종교가 있는 법입니다. 그러므로 종교가 흥하면 그 나라가 흥하고 종교가 쇠퇴하면 그 나라가 쇠퇴하니, 이것은 만고천하의 변치 않는 법입니다. 오직 우리나라가 진흥(振興)하지 못하는 것은 종교가 흥성하지 못한 데에서 말미암으니, 만일 나라를 진흥시키고자 한다면 반드시 그 종교를 흥성시키기를 힘써야 할 것입니다. 그런 다음에 오늘날의 학문을 배우면 병행하여 어그러지지 않을 수 있을 것입니다.

삼가 바라건대, 폐하께서는 속히 학부(學部)로 하여금 더욱 교육에 대한 책임에 힘을 쏟게 하소서. 규모로 말하면 먼저 공자와 맹자의 가르침을 부흥시키고 그 다음에 개명한 학문을 닦도록 할 것이며, 절차로는 특별히 더 문묘(文廟)를 존숭하여 제사와 음악과 오르고 내리며 절하고 읍하여 모두 성인을 사모하는 본뜻을 알게 하여 그 가르침을 존숭하게 해야 할 것입니다.

성균관을 대학교로 만들고 서울에는 하나의 서(署)에 각각 하나의 중학교를 설치하고 하나의 방(坊)에 각각 하나의 소학교를 설치할 것이며, 각 군(郡)에는 향교를 중학교로 삼고 하나의 면(面)마다 각각 소학교를 설치하고 하나의 이(里)에 각각 하나의 글방〔村塾〕을 설치하여 소학교를 졸업한 사람은 중학교로 올라가게 하고 중학교를 졸업한 사람은 대학교로 올라가게 해야 할 것입니다.

교과 과목을 정하고 성적의 고하를 평가하여 우수한 자를 뽑아서 정부에 추천하여 걸맞은 직책에 보충한다면 10년을 지나지 않아서 조정에 벼슬하는 사람들이 모두 대학교를 졸업한 사람들일 것입니다. 농업, 상업, 공업의 경우에도 모두 이렇게 하여 그 사람의 재주에 맞게 각국으로 파견하여 각각 해당하는 기술을 닦게 할 것입니다.

또 근면한 교사들을 채록하였다가 추천하여 쓰고, 또 사립학교를 세운 자와 보조를 넉넉히 베푼 자들을 채록하여 표창하면 몇 년이 못 되어서 국비(國費)를 들이지 않고도 반드시 온 나라에 학교가 널리 설립될 것이니, 어찌 인재가 성취되지 못하는 것을 근심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신은 바라건대, 우선 조칙(詔勅)을 내려 학부로 하여금 교육에 관한 꼭 맞는 법을 개정하게 하여 위로 태학부터 아래로 각군에 이르기까지 인재를 양성하는 방도를 실제로 행하게 할 것입니다. 한성부와 각 도의 도신(道臣)으로 하여금 학교를 사적으로 설립한 사람을 상주(上奏)하게 하고 훈장으로 포상함으로써 권면하고 장려하게 하소서. 신이 비록 배운 것은 없지만 오늘날 나라가 흥성하는 관건은 오직 교육이 흥성하는 데에 달려 있고 종교가 흥성하는 데에 달렸음을 분명하게 알기 때문에 참람되고 비루한 것을 잊고 폐하를 위하여 한번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삼가 바라건대, 폐하께서는 굽어 살펴주소서."

하니, 비답하기를,

"상소의 내용은 의정부(議政府)로 하여금 품처(稟處)하게 하겠다."

하였다.


  • 【원본】 51책 47권 17장 B면【국편영인본】 3책 426면
  • 【분류】
    교육-인문교육(人文敎育) / 사상-유학(儒學) / 정론-정론(政論)

奉常副提調李苾和疏略:

竊伏念今日國家之勢, 悠悠萬事, 只有敎育人材, 庶可以爲日後來復之基。 蓋自古爲國, 以民爲本, 民志未開而能保其國者, 未之有也。 三代盛時, 廣設學校之制, 敎之以修身齊家治國平天下之道。 由此觀之, 三代之民, 雖皂隷下賤, 莫不自小學陶鑄中出來, 及其仕者, 莫不由大學成就之材, 而明習治平之衛者也。 三代之所以能享國長久, 保有其民者, 以敎育人材故也。 猗! 我本朝, 有鑑于此, 自開國之初, 崇尙三代敎人之法, 尊重道德之學, 卽以興學校、養人材爲務。 旣置太學而又置四學, 又置童蒙敎官, 以敎於京師。 旣有鄕校而又設書院, 又有家塾, 以敎於郡邑。 又慮仕者之躁於進取, 不習實學, 則別置湖堂, 賜暇讀書。 又慮士林隱逸之士, 深藏不市, 學問優異而未用於世, 必極加採訪, 勸奬襃賞, 以勵其名節。 此, 我朝文化之盛, 而祚曆長久者也。 夫何近世以來, 學校廢墜, 敎養無聞? 至于今日讀書種子, 不可復見。 今日, 國勢民命, 至於此極者, 無敎育而已。 抑觀夫今之萬國所以能馳聘天下, 皆稱文明者, 莫非敎育人材之大效也。 然則以我不敎育之民, 對彼敎育之人, 其智愚昏明, 不啻若天淵。 如其恥之莫如急先敎育, 我國亦與彼列邦, 爲同等之國也。 此, 臣所謂敎育一事, 庶可以爲日後來復之基也。 雖然, 所謂敎育者, 亦有古今之異, 其泥於古而昧於今者, 子莫之執中也, 若專尙今而棄舊, 則忘其本也。 蓋有國有民, 必有宗敎。 故宗敎興則其國興, 宗敎衰則其國衰, 天下萬古不易之典也。 惟我邦國不振, 由於宗敎之不興, 如欲振興其邦國, 必懋興其宗敎也。 然後學今之學, 則可以竝行而不悖矣。 伏願陛下亟令學部, 益勵敎育之責任。 規模則先興之敎, 次修開明之學, 節次則特加尊崇文廟, 俎豆絃譎, 升降拜揖, 咸知慕聖之本意, 而尊崇其敎焉。 以成均館爲大學校, 而京師則一署各置一中學校, 一坊各置一小學校。 各郡則以鄕校爲中學校, 而一面各置小學校, 一里各置一村塾, 小學校卒業之人, 陞之中學校焉, 中學校卒業之人, 陞之大學校焉。 定其課程, 第其高下, 拔其優等者, 薦之於政府, 而充補其相當職, 不出十年, 仕於朝者皆大學校卒業之人。 至於農商工, 亦莫不然, 而隨其人材, 派送各國, 各修其藝焉。 又錄其敎師之勤者, 薦用之, 又採其私立學校者, 優施補助者而襃賞之, 不數年, 不費國金, 而學校之設, 必遍於國中矣, 何患人材不能成就乎? 臣願先下詔勅, 令學部改定敎育一致之法, 上自太學, 至于各郡, 實行其作成人材之方。 令漢城府及各道道臣, 上奏學校私立之人, 以勳章襃章, 以勸以奬焉。 臣雖不學, 的知今日國家之興, 惟在學校之興, 惟在宗敎之興, 故忘僭陋而爲陛下一言之。 伏乞陛下垂察焉。

批曰: "疏辭, 令政府稟處。"


  • 【원본】 51책 47권 17장 B면【국편영인본】 3책 426면
  • 【분류】
    교육-인문교육(人文敎育) / 사상-유학(儒學) / 정론-정론(政論)