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언식에게 봉작하는 것과 종정경으로 임명하는 것을 수의하다
이언식(李彦植)에게 봉작하는 것과 종정경(宗正卿)으로 임명하는 것 가운데 어느것이 편리한지를 수의(收議)하였는데, 영부사 이시수(李時秀)는 말하기를,
"대원군의 봉사인에게 돈녕부 도정을 맡기지 말고 종친부 도정(宗親府都正)으로 바꾸어 맡기며, 품계가 2품에 이르러야 비로소 봉군(封君)토록 한다면, 앞으로는 종반에 인재가 모자라는 탄식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하였고, 판부사 김재찬(金載瓚)은 말하기를,
"삼가례를 갖출 길일이 점점 박두합니다. 오직 이언식(李彦植)에게 봉작하자는 논의가 가장 타당한 듯합니다."
하였으며, 판부사 한용귀(韓用龜)가 말하기를,
"대원군께서 성궁(聖躬)을 낳아 기르신 공과 덕은 길이 백대에 전해질 것이니, 책훈(策勳)된 공신에 비길 바가 아닙니다. 지금 종반에 인재가 모자라는 때를 맞이하여 훈신의 자손에게 세습하는 예를 사용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하였고, 우의정 남공철(南公轍)은 말하기를,
"오직 성인이라야 예를 제정하고, 왕이라야만 법을 제정합니다. 이언식(李彦植)은 이미 다른 종성(宗姓)과 다릅니다. 국가의 막대한 경사를 맞이하여 주인의 일을 행하기 위하여 군(君)의 작호(爵號)를 봉함은 예절과 법에 불가할 것이 없을 듯합니다."
하였으며, 홍문관 제학(弘文館提學) 김이교(金履喬)는 말하기를,
"우리 왕조에서 관직을 설치할 적에는 비록 중국의 제도를 모방하였으나, 호명(號名)과 사실(事實)은 서로 들쭉날쭉하니, 개원(開元)의 예를 인용하기는 어려운 듯합니다."
하였고, 규장각 직제학 박종훈(朴宗薰)은 말하기를,
"지금 봉작이 없는 사람을 종부시 제조로 차출하고, 이르기를, ‘이는 종실이요, 이는 고례(古禮)라.’ 함은 신은 그것이 어떠한지는 모르겠으나, 세자의 존귀함으로 삼가례를 행함에 있어, 이 예절을 주관시키고 적임(適任)을 택하여 봉작을 가함도 또한 불가할 것이 없습니다."
하였으며, 예조 판서 이만수(李晩秀), 참판 윤익렬(尹益烈), 참의 한기유(韓耆裕)는 말하기를,
"일전의 헌의에서 먼저 봉작하는 문제를 말하고 변통하는 것이 사리에 맞는다 하였고, 끝에 종정경(宗正卿) 문제를 덧붙여 외람되이 한 말씀을 갖추었습니다. 이 두 문제를 가지고 논한다면 신 등은 봉작하는 것이 편의하다고 생각합니다."
하니, 하교하기를,
"다수의 의논에 따라 시행하라."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22책 22권 6장 A면【국편영인본】 48책 145면
- 【분류】왕실-종친(宗親)
○丁丑/以李彦植封爵, 與宗正卿孰便事, 收議。 領府事李時秀以爲: "大院君奉祀人, 不付敦寧都正, 換付宗親府都正, 階至二品, 始許封君, 從今以後, 可免宗班乏人之歎。" 云。 判府事金載瓚以爲: "三加備儀, 吉日漸迫。 惟是李彦植封爵之論, 最似得宜。" 云。 判府事韓用〈龜〉以爲, "大院君誕育聖躬之功之德, 永垂百世, 有非帶礪之勳所可比擬。 今當宗英之乏人, 宜用勳裔世襲之例。" 云。 右議政南公轍以爲, "惟聖制禮, 惟王作法。 李彦植旣與他宗姓有異。 當國家莫大之慶禮, 爲行主人之事。 加以君爵, 於禮於法, 恐無不可。" 云。 弘文提學金履喬以爲, "我朝設官, 雖倣中國之制, 號名事實, 互相參差, 開元之禮, 恐難援用。" 云。 奎章閣直提學朴宗薰以爲, "今以無封爵之人, 差宗簿提擧, 而曰 ‘此宗室也, 曰此古禮也,’ 則臣未知其何如也, 以貳極之尊, 行三加之禮, 主是禮而擇其人, 加之封爵, 亦無不可。" 云。 禮曹判書李晩秀, 參判尹益烈, 參議韓耆裕以爲, "日前獻議, 首言封爵事, 變通合宜, 尾附宗正卿事, 猥備一說也。 若取二者而論, 則臣等以爲, 封爵便矣。" 敎曰: "從多議施行。"
- 【태백산사고본】 22책 22권 6장 A면【국편영인본】 48책 14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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