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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실록 49권, 정조 22년 9월 9일 己巳 4번째기사 1798년 청 가경(嘉慶) 3년

구일제를 성균관에서 행하다

구일제(九日製)를 반궁(泮宮)에서 설행(設行)하였는데, 어제(御題)는 ‘포촉불언 홍곡장장(抱蜀不言鴻鵠鏘鏘)’이었다. 제생(諸生)이 어제의 뜻을 이해하지 못하자, 어서(御書)로 제생에게 유시하기를,

"그대들은 상사(上舍)306) 출신 유생들로서 독서를 많이 하였을 것이니 어찌 햇수가 얼마 안되는 사학(四學)의 유생들과 비교가 되겠는가. 그런데 예로부터 지금까지 어제의 뜻을 이해하지 못해 백지(白紙) 답안을 내었다는 일을 그대들은 혹시라도 들은 적이 있는가. 더구나 내준 문제가 알기 어려운 것도 아닌데 더 말해 무엇하겠는가. 다사(多士)의 실력이 다듬어지지 않은 것은 바로 나의 수치이다. 그래서 이렇게 특별히 그대들에게 유시하는 것이다.

일찍이 듣건대 촉(蜀)은 제사 그릇이라고 하였다. 말하자면 임금이 공경하는 자세로 제기(祭器)를 지키면서 예(禮)로써 백관들을 통솔하면 아무 말없이 조용히 팔짱을 끼고 있어도 묘당의 정사가 모두 자연히 닦여지게 마련이요, 이렇게 해서 그 덕이 감응되고 교화가 행해져 밖으로 그 효과가 드러나는 것이 마치 큰 기러기가 날개를 활짝 펴고 높이 날아오르는 것을 연상케 하는데 백성들이 이를 노래로 부르며 찬미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뜻으로 ‘제기를 안고 아무 말 하지 않아도 묘당은 이미 잘 닦여지고 큰 기러기가 높이 날음에 백성이 노래부른다.[抱蜀不言廟堂旣修鴻鵠鏘鏘維民歌之]’라는 말이 있는데, 이것은 《관자(管子)》에 나오는 말307) 이다.

내가 매번 이 말을 여러 차례 되풀이하며 음미하곤 하는데 마침 국제(菊製)를 맞아 기러기 울음소리를 듣다가 상념이 떠오르기에 붓 가는 대로 써서 내린 것이었다. 그대들이 그토록 고루한 자들인 줄을 내가 일찍 알았더라면 이해하기 어렵지 않고 알기 쉬운 한 귀절의 말을 어찌 아껴 게시하지 않았겠는가. 율부(律賦)로 지어 내라고 하면 밤이 더욱 깊어지겠기에 과부(科賦)인 근체시(近體詩) 형태로 응시하게 했던 것인데 또 그대들의 하자를 덮어주기 위하여 이런 구차스러운 거조를 취하게끔 되었다. 3일 기한을 줄테니 제목 내린 것에 따라 지어 내어 조금이라도 오늘의 수치를 씻도록 하라."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49책 49권 33장 B면【국편영인본】 47책 110면
  • 【분류】
    인사-선발(選拔) / 교육-인문교육(人文敎育) / 어문학-문학(文學)

  • [註 306]
    상사(上舍) : 진사와 생원을 말함.
  • [註 307]
    《관자(管子)》에 나오는 말 : 《관자(管子)》 권1 지세(形勢) 제2에 나옴.

○設九日製于泮宮, 御題: ‘抱蜀不言鴻鵠鏘鏘。’ 諸生不能解識, 御書諭諸生曰: "爾等上舍生也, 讀書多聞, 豈比年淺四學生? 而古往今來, 拖白於御題之擧, 爾等曾或聞之乎? 況所揭者, 非難知者? 多士之魯莾, 卽予之恥。 此所以別諭爾等也。 嘗聞祀器也。 言人君敬守祀器, 以禮率群工, 則雖靜拱不言, 廟堂之政, 自無不修, 於是乎其德之感敎之行, 而著應於外者, 鴻鵠鏘鏘, 而民以詠歌歎美之。 有曰 ‘抱蜀不言, 廟堂旣修, 鴻鵠鏘鏘, 維民歌之’, 此《管子》之言也。 予每一復是言, 適因菊製, 聽雁起想, 信筆書下。 蚤知爾等如彼固陋, 則易知不難知之句語, 何靳而不揭示乎? 律賦製進, 尤致夜深, 以賦近體應試, 爲掩瑕纇, 行此苟且之擧。 限三日隨其題下製進, 少雪今日之恥。"


  • 【태백산사고본】 49책 49권 33장 B면【국편영인본】 47책 110면
  • 【분류】
    인사-선발(選拔) / 교육-인문교육(人文敎育) / 어문학-문학(文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