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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실록10권, 정조 4년 9월 24일 己亥 1번째기사 1780년 청 건륭(乾隆) 45년

황경원, 김상철, 이휘지 등이 활인서의 혁파를 논의하다

주강하였다. 활인서(活人署) 제조 황경원(黃景源)이 특진관(特進官)으로 입대(入對)하여 아뢰기를,

"애당초 활인서를 설립한 것은 대개 도하(都下)의 백성들이 만약 돌림병을 앓을 경우 구제하여 살리게 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다만 활인서에는 원래 재력이 없어서 서울 무녀(巫女)들의 신포(身布)를 활인서에서 조금 받아들여 원역(員役)의 1년 요포(料布)를 지급해왔습니다. 그러다가 선대왕 갑오년337) 에 여공(女貢)을 폐지하였으므로 서울 무녀들이 내는 신포도 따라서 폐지되었습니다. 그러자 특별히 평안도 별향고(別餉庫)의 돈 5백 80냥을 하사하여, 균역청(均役廳)으로 올려 보내고 균역청에서 본 활인서에 그 대신 지급하라고 명하였습니다. 작년에 경연관(經筵官) 송덕상(宋德相)의 말로 인하여 다시 무녀들의 신포를 받아들이게 하였기 때문에 균역청에서 대신 지급해 주던 돈도 폐지하였습니다. 그런데 서울의 무녀들은 이미 외방으로 내쫓아 공물을 거둘 수 없기 때문에, 활인서의 원역의 1년 요포가 다시 나올 곳이 없게 되었습니다. 신의 생각에는, 국가에서 이미 혜민서를 설치하여 병든 백성들을 구제하게 하였으니, 굳이 또 활인서를 둘 필요는 없으므로 임시로 감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여깁니다."

하니, 비답하기를,

"근래에 다만 관서의 이름만 있고 실효는 없었다. 사람을 구제하는 일만 폐지하였을 뿐만 아니라 아울러 원역의 살림살이조차도 폐지되었다고 하니, 경의 요청에 따라 시행하라고 해도 무방할 것 같다. 그러나 내가 의심을 가지는 것은 갑자기 혁파하면 애례(愛禮)338) 의 의리에 어긋날까 염려되고 또한 명분을 따르는 정사가 아니기 때문이다. 아무튼 묘당으로 하여금 품처(稟處)하게 하겠다."

하였다. 그 뒤 차대에서, 영의정 김상철이 아뢰기를,

"활인서를 형세상 그대로 둘 수 없다면 그 아문을 없애고 혜민서로 넘기는 것이 진실로 타당합니다. 그런데 만일 존양(存羊)의 의의 때문에 갑자기 폐지할 수 없다면, 대장(臺帳)에 기록된 무녀를 모두 호조에 예속시켜 일체로 세금을 받아들이고 활인서의 요포 지급은 종전대로 균역청에서 거행하는 것이 타당할 것입니다."

하고, 우의정 이휘지는 말하기를,

"활인서를 혁파한다면 실로 존양의 의의에 어긋납니다."

하고, 호조 판서 김화진은 아뢰기를,

"서울의 무녀는 지난번에 이미 한강 밖으로 축출하였으니, 무녀의 신포는 그 읍에서 징수하여 납부하도록 하는 것이 옳겠습니다."

하니, 모두 그대로 따랐다.


  • 【태백산사고본】 10책 10권 27장 A면【국편영인본】 45책 185면
  • 【분류】
    과학-지학(地學) / 행정-중앙행정(中央行政) / 보건(保健) / 재정-역(役) / 재정-국용(國用) / 사상-토속신앙(土俗信仰)

  • [註 337]
    갑오년 : 1774 영조 50년.
  • [註 338]
    애례(愛禮) : 《논어(論語)》 팔일편(八佾篇)에, 자공(子貢)이 곡삭(告朔)의 희양(餼羊)을 폐지하려고 하자, 공자(孔子)가 말하기를, "사(賜)야 그대는 그 양(羊)을 아끼는가? 나는 그 예(禮)를 사랑하노라." 한 데서 온 말로, 존양(存羊)의 뜻이 포함됨.

○己亥/晝講。 活人署提調黃景源, 以特進官入對啓言: "活人署當初設立, 蓋以都下人民, 若有癘疫, 則使之救活, 而但本署元無財力, 京巫女若干身布, 自本署收捧, 以給員役一年料布。 先大王甲午, 罷女貢, 故京巫女貢, 亦隨而罷。 特賜平安道 別餉庫錢五百八十兩, 命上送均廳, 自均廳, 給代于本署矣。 昨年因經筵官宋德相言, 復捧巫女布, 故均廳錢給代, 亦停罷, 而京巫女旣逐送外方, 無以收貢, 故本署員役一年料布, 更無出處。 臣意, 則國家旣設惠民署, 救療病民, 不必又置活人署, 權減爲宜。" 批曰: "近來但有署號, 果無實事。 不但廢活人之擧, 幷與員役接濟, 而廢之云, 則依卿請許施, 似無所妨, 而予所持疑者, 遽然革罷, 恐乖愛禮之義, 亦非循名之政。 第令廟堂稟處。" 後於次對, 領議政金尙喆啓言: "活人署, 勢不可仍置, 則革其衙門, 付之惠民署, 誠得宜, 而若以存羊之義, 猝不可罷, 則案付巫女, 竝屬地部, 一體捧稅, 該署給代, 依前自均廳擧行爲宜。" 右議政李徽之曰: "活人署若革罷, 則實非存羊之義。" 戶曹判書金華鎭啓言: "京城巫女, 向旣逐出江外。 巫稅則自該邑徵納宜矣。" 竝從之。


  • 【태백산사고본】 10책 10권 27장 A면【국편영인본】 45책 185면
  • 【분류】
    과학-지학(地學) / 행정-중앙행정(中央行政) / 보건(保健) / 재정-역(役) / 재정-국용(國用) / 사상-토속신앙(土俗信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