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조하 홍봉한의 졸기
봉조하 홍봉한(洪鳳漢)이 졸(卒)하였다. 홍봉한은 영안위(永安尉) 홍주원(洪柱元)의 현손(玄孫)이다. 영종(英宗)갑자년475) 에 과거에 급제하였는데, 변변치 못한 재능으로 왕실의 지친(至親)임을 가탁하여 특별히 영종의 위임(委任)을 받았으므로, 오영(五營)과 육관(六官)의 장관을 지냈다. 신사년476) 에 복상(卜相)되어 지위가 상상(上相)에 이르렀는데 작은 기국에 갑자기 귀하게 되었으므로 모질고 강퍅한 성질을 멋대로 부렸다. 10년 동안 정권(政權)을 잡고 있으면서 나라를 좀먹고 백성을 병들게 하였으며 선류(善類)들을 미워하여 은밀히 중상(中傷)당한 사람이 많았다. 아들 셋과 아우 둘이 모두 조정에 포열(布列)되어 권병(權柄)을 농락하여 마구 휘둘렀는데, 권세의 기염이 대단하여 감히 따지는 사람이 없었다. 임오년477) 의 화변(禍變)이 있었을 때 뭇 신하들은 간담이 무너져 내려 어찌할 줄을 몰랐는데, 홍봉한이 앞장서서 아뢰기를, ‘신은 오로지 성궁(聖躬)만 알 뿐입니다.’ 하였는데, 얼마 안되어 다시 정승이 되어 거리낌없이 방자한 짓을 마구하였다. 그 뒤 또 추숭(追崇)하여 입묘(入廟)시키려 한다는 이야기를 가지고 이연(离筵)478) 을 공동(恐動)시켰는데, 이는 대개 스스로 용서받지 못할 죄를 진 것을 알고 임금의 뜻을 엿보아 살피려는 것이었으니, 이에 한때 청의(淸議)를 지닌 자 가운데 공격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 영종신묘년479) 에 인(䄄)과 진(禛)의 일로 인하여 파면되어 서인(庶人)이 되었었으나, 용서하고 억지로 치사(致仕)하게 했었는데, 이때에 이르러 졸하였다. 하교하기를,
"내가 의지하고 있는 것은 오직 자궁(慈宮)뿐인데, 자궁께서 이런 슬픈 일을 당하시어 애훼(哀毁)가 지나치시니, 나의 마음이 더욱 어떠하겠는가? 초종(初終)의 예장(禮葬)에 관계된 모든 일을 일체 청풍 부원군(淸風府院君)의 예에 의거하여 후하게 거행하도록 하라. 아! 자궁의 마음을 위로해 드릴 길 없다. 그리고 이는 예전(禮典)에 기재되어 있는 것이니, 성복(成服)하는 날 마땅히 나아가 조문(弔問)해야 한다. 유사(有司)로 하여금 전례를 조사하여 거행하게 하라."
하고, 또 동원 비기(東園秘器)480) 를 지급하고 녹봉(祿俸)은 3년을 기한으로 계속 지급하게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6책 6권 68장 A면【국편영인본】 45책 74면
- 【분류】인물(人物) / 왕실-비빈(妃嬪) / 재정-국용(國用)
- [註 475]갑자년 : 1744 영조 20년.
- [註 476]
신사년 : 1761 영조 37년.- [註 477]
임오년 : 1762 영조 38년.- [註 478]
이연(离筵) : 서연(書筵).- [註 479]
신묘년 : 1771 영조 47년.- [註 480]
동원 비기(東園秘器) : 조선조 때의 궁궐에서 쓰는 관곽(棺槨). 장생전(長生殿)에서 미리 만들어 보관하였다가 필요한 때에 썼음. 동원(東園)은 한(漢)나라 때의 관곽을 제조·관리했던 관서(官署)임.○庚申/奉朝賀洪鳳漢卒。 鳳漢 永安尉 洪柱元玄孫。 英宗甲子登科。 以斗筲之才, 托肺腑之親, 特被英宗委任, 摠五營、長六官。 辛巳枚卜, 位至上相。 而小器暴貴, 狠愎自用。 十年秉政, 蠧國病民, 疾惡善類, 多被陰中。 三子、兩弟, 竝列于朝, 賣權弄柄, 勢焰薰灼, 人莫敢誰何。 壬午禍變之日, 群臣崩剝震蕩, 而鳳漢挺身奏曰: "臣惟知聖躬。" 未幾復相, 縱恣無忌。 後又以追崇入廟之說, 恐動离筵。 蓋自知罪負罔赦, 欲伺覘上意也。 於是, 一時持淸議者, 莫不攻之。 英宗辛卯, 因䄄、禛事, 免爲庶人, 施宥, 勒令致仕, 至是卒。 敎曰: "予之爲命者, 惟慈宮。 而慈宮遭此至慟, 過爲哀毁。 予心尤當如何? 凡係初終禮葬等事, 一依淸風府院君例, 從厚擧行。 噫! 無以慰慈心。 且是禮典所載, 成服日, 當臨弔, 其令攸司, 按例擧行。" 又命給東園秘器, 祿俸, 限三年仍給。
- 【태백산사고본】 6책 6권 68장 A면【국편영인본】 45책 74면
- 【분류】인물(人物) / 왕실-비빈(妃嬪) / 재정-국용(國用)
- [註 47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