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소전에 나가 비각을 열게 하고 사배례를 행하다
임금이 문소전(文昭殿)에 나아가 비각(碑閣)을 열라 명하여 사배례를 행하고, 구주(口奏)하기를,
"김치인이 당을 만들어 권세를 즐겼을 때 구상은 당인(黨人)을 따랐었습니다. 이때에 선후를 가릴 것 없이 척신이 함께 날뛰어 이처럼 놀랍고 괴이한 일을 저질렀으니, 종국(宗國)이 반드시 위망하게 되었습니다."
하고는, 인하여 관(冠)을 벗고 부복(俯伏)하여 내국(內國)의 제조 이하와 여러 승지를 모두 삭판(削版)하라 명하고 오위 장(五衛將)을 가승지(假承旨)로 삼았다. 이때에 큰 비가 내리고 뇌성(雷聲)이 있었으나 임금이 우산을 펼치지 못하게 하여 어의(御衣)가 모두 젖었다. 약방 도제조 한익모(韓翼謨)가 중관(中官)을 꾸짖기를,
"비록 주상의 명령이 있더라도 어찌 펴지 않을 수 있는가?"
하고는, 인하여 울면서 굳이 청하였다. 밖에 있던 시임·원임 대신이 문을 밀치고 들어와 모두 관을 벗고 회가(回駕)하기를 힘껏 청하였다. 임금이 하교하기를,
"오늘 추모하여 망배례(望拜禮)를 행할 때 승지를 불러 상소를 올리는 일은 예전에 없던 바인데, 만약 호흡에 관계된 것이 아니라면 어찌 감히 이렇게 하겠는가? 한 근의 나삼으로 기운이 갑자기 좋아졌다는 말과 송다를 마셨더니 걸음 걷기가 좋아졌다는 말은 한번 웃어야 할 말이다. 공갈하여 추숭(追崇)했다는 말 등은 관계됨이 가볍지 않으나 온실수(溫室樹)172) 를 묻지 않음이 어찌 다만 옛사람의 말뿐이겠는가? 척신인 몸으로 감히 이런 말을 전해야 하는가? 충자에게 묻고자 했으나 들어가서 생각해 보니, 설사 이런 일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이는 충자(冲子)에게 물을 일이 아니며, 묻지 않고 누워 있으면 이는 종국(宗國)에 관계되는 하나의 기회가 될 것이다. 만약 이렇게 하기를 그치지 않으면 장차 어느 곳에서 쉬게 될 것인지 마음이 견딜 수가 없다. 구궐(舊闕)에 들어가 고전(古殿)에 절하고 우러러 미미한 정성을 호소하겠다."
하였다. 창의궁(彰義宮)으로 환어하여 명하기를,
"김귀주를 사판(仕版)에서 영원히 지우고, 수어사(守御史) 김기대(金器大), 한성 좌윤(漢城左尹) 윤동절(尹東晳), 총융사(摠戎使) 김시묵(金時默)은 아울러 특체(特遞)를 명해 척신에 제방(隄防)을 엄하게 하는 뜻을 보여라."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79책 119권 13장 A면【국편영인본】 44책 429면
- 【분류】왕실-행행(行幸) / 왕실-국왕(國王) / 인사-임면(任免) / 인사-관리(管理) / 사법-탄핵(彈劾) / 재정-전매(專賣) / 농업-특용작물(特用作物) / 과학-천기(天氣) / 의약-약학(藥學)
- [註 172]온실수(溫室樹) : 한(漢)나라 때 상서령(尙書令) 공광(孔光)이 입이 무거워 친지들이 궁궐 온실에 무슨 나무들이 있느냐고 물어도 대답하지 않았다는 고사. 조정의 일을 전파하지 않아야 한다는 뜻.
○上詣文昭殿, 命開碑閣, 行四拜禮, 口奏曰: "金致仁植黨樂勢, 具庠趨附黨人。 此時不先不後, 戚臣跳踉, 作此怪駭, 宗國必至危亡矣。" 仍免冠俯伏, 內局提調以下諸承旨, 幷命刊版, 以五衛將爲假承旨。 時大雨有雷聲, 上不許張傘, 御衣盡濕。 藥房都提調韓翼謩責中官曰: "雖有上命, 豈可不張?" 因涕泣固請。 在外時原任大臣, 排闥入來, 皆免冠力請回鑾。 上敎曰: "今日追慕望拜時, 呼承宣投章之擧, 前古所無, 若非關係呼吸者, 焉敢若此? 一近羅蔘, 其氣頓勝之說, 其飮松節, 其步快勝之說, 此可一哂。 其於追崇恐喝等說, 關係不輕, 不問溫室樹, 豈特古人之言? 身爲戚臣, 敢傳于此乎? 欲問沖子, 入而思之, 設有是事, 此非問於沖子者, 不問而臥, 此關係宗國之一機會。 若此不已, 將稅駕於何地乎? 心不耐焉。 詣舊闕拜故殿, 仰籲微忱。 還御彰義宮, 命金龜柱永刊仕版, 守禦使金器大、漢城左尹尹東晢、摠戎使金時默幷命特遞焉, 以示嚴隄防於戚臣之意。
- 【태백산사고본】 79책 119권 13장 A면【국편영인본】 44책 429면
- 【분류】왕실-행행(行幸) / 왕실-국왕(國王) / 인사-임면(任免) / 인사-관리(管理) / 사법-탄핵(彈劾) / 재정-전매(專賣) / 농업-특용작물(特用作物) / 과학-천기(天氣) / 의약-약학(藥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