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조실록 116권, 영조 47년 4월 12일 壬午 2번째기사
1771년 청 건륭(乾隆) 36년
은신군 이진의 졸기
은신군(恩信君) 이진(李禛)이 제주(濟州)의 귀양간 곳에서 졸(卒)하였다. 임금이 그 사실을 듣고 하교하기를,
"아! 이번의 처분이 국가를 위해서라고 하지만 마음에는 지금까지 차마 못할 일이라고 여겼었다. 본주(本州)의 계본(啓本)이 어제 도착하였는데, 중관(中官)이 혹시 상심할 것을 염려하여 머뭇거리면서 머물러 두게 하였다가 오늘에야 비로소 알렸으니, 슬픈 마음을 어디다 비유하겠는가? 관재(棺材)는 본목(本牧)으로 하여금 가려서 지급하게 하고, 의금(衣衾)은 본현감(本縣監)으로 하여금 종신(宗臣)의 예(例)에 따라 살피고 단속하여 마음을 써서 거행하도록 하되, 우선 가시 울타리를 철거하게 하고 마음을 써서 운구(運柩)하도록 하라.〈은언군(恩彦君)〉 이인(李橉)이 만약 함께 물고(物故)하였다면 나의 마음이 어떠하였겠는가? 특별히 석방하는 일을 당일 안에 배도(倍道)하여 분부하도록 하라. 그리고 진의 처(妻)에게는 해청(該廳)으로 하여금 휼전(恤典)을 베풀도록 하라."
하였다.
삼가 살펴보건대 《시경(詩經)》에 이르기를, ‘종자(宗子)는 성(城)이다.’라고 하였으니, 곧 왕실(王室)의 울타리가 됨을 이르는 것이다. 진은 지금 임금의 손자로 아주 멀리 떨어진 섬에서 그의 죄가 아닌데 죽었으니, 임금이 비록 그의 죽음을 슬퍼하는 전례를 시행하기는 하였지만 미칠 수가 없었다.
- 【태백산사고본】 78책 116권 20장 B면【국편영인본】 44책 377면
- 【분류】왕실-종친(宗親) / 인물(人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