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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조실록 97권, 영조 37년 3월 28일 丁卯 3번째기사 1761년 청 건륭(乾隆) 26년

정원에서 왕세자의 진현을 청하다

정원에서 초기(草記)를 가지고 왕세자의 진현(進見)을 앙품(仰稟)하니, 하교하기를,

"세자로서의 도리가 어찌 한갓 어김이 없도록 하는 것이겠는가? 나로 하여금 마음을 쓰지 않게 하는 것 역시 자식의 도리인 것이다. 어제 이미 하교하였으니, ‘진현’이란 두 글자로 매번 고요하게 조섭(調攝)하는 마음을 부추긴다. 어김이 없도록 하라고 말한 것 역시 어떻게 아비의 명을 따르는 도리이겠는가? 보도(輔導)하는 직책에 있으면서 초기(草記)를 적어 올렸으니, 직무를 제대로 집행했다고 할 만하다. 조용히 조리(調理)하도록 하는 일을 전백(轉白)하도록 하라."

하고, 또 하교하기를,

"이창임(李昌任)은 앞에서 너무 경솔하고 정창성(鄭昌聖)은 뒤에서 너무 상세하게 하니, ‘어김이 없도록[無違]’ 하라는 두 글자가 어찌 원량(元良)을 위하여 꾸미는 말이겠는가? 보도하는 직책을 맡고 있으니 비록 하령(下令)이 있다고 하더라도 당연히 대조(大朝)의 뜻을 체득하여 전백해야 하는데도, 어제 품하여 아뢴 것과 오늘의 초기(草記)는 나로 하여금 심기(心氣)를 허비하도록 하여 경솔하고 상세함이 저절로 드러났으니, 경계가 없을 수 없다. 정창성은 종중 추고(從重推考)하도록 하라. 그리고 조리(調理)할 것을 권면하여 비국 당상이 진대(進對)하는 날이나 강학(講學)하면서 책을 펼 때 아무리 신음(呻吟)하는 가운데서라도 저도 모르게 아픔이 저절로 몸에서 제거되는 것이 어찌 진현하는 것보다 낫지 않겠는가?"

하고, 임금이 소조(小朝)에서 구대(求對)할 때의 기주 초책(記注草冊)을 가지고 들어오도록 명하고, 보기를 마치자 하교하기를,

"세자가 이와 같이 〈병이〉 더함이 있다니, 그로 하여금 오지 말게 한 것은 내가 정말 옳았다. 그리고 의약청(議藥廳)에서는 단지 도기탕(導氣湯)만 그전대로 지어서 들이도록 하라. 오늘날은 문구(文具)의 세계(世界)라고 말할 만하다. 분제조(分提調) 김상익(金尙翼)을 파직하도록 하라."

하였는데, 이규채(李奎采)가 말하기를,

"초책(草冊) 가운데는 원래 ‘더함이 있다[有加]’는 두 글자가 없습니다."

하니, 임금이 다시 이규채에게 그 초책을 읽도록 명하였는데, 머리 부분이 엉긴 듯 무겁다는 내용에 이르러 임금이 말하기를,

"이것이 어찌 더함이 있다고 말한 것이 아니겠는가? 돌아다보고 두루 가리려 하니, 이는 나라를 망하게 하는 근본이다. 오늘 도승지는 잠자코 가만히 있는 것이 가하거늘, 무슨 마음으로 미봉(彌縫)하려 드는가?"

하고, 특별히 파직하도록 명하였다. 또 주서(注書) 황박(黃樸)이 전혀 기초(記草)하지 않았다고 하여 해부(該府)로 하여금 엄중히 조처하게 하고, 승지 이심원(李心源) 또한 파직하도록 명하였다. 그리고 오늘부터는 주원(廚院)086) 으로 옮겨서 직숙하게 하고, 약원 도제조(藥院都提調) 김상로(金尙魯)가 강교(江郊)에 있으면서 아득히 동정(動靜)이 없다고 하여 파직하고 서용하지 말도록 명하였다. 홍봉한(洪鳳漢)을 정승으로 제배하고 그대로 호위 대장(扈衛大將)과 약원 도제조를 겸임하게 하였다. 다시 기강(紀綱)을 진작시키고, 현명하고 능력 있는 이를 기용하며, 시끄러운 풍습을 진정시키고, 백성들을 구제하며, 공정한 마음을 한결같이 하고, 서로 공경하고 협력하기를 함께 하라는 여섯 가지 조목을 가지고 힘쓰도록 유시하였으며 특별히 이장오(李章吾)를 금위 대장(禁衛大將)에 제배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67책 97권 14장 A면【국편영인본】 44책 62면
  • 【분류】
    왕실-국왕(國王) / 왕실-종친(宗親) / 행정-중앙행정(中央行政) / 사법-탄핵(彈劾) / 인사-임면(任免) / 출판-서책(書冊)

  • [註 086]
    주원(廚院) : 사옹원(司饔院).

○政院以草記, 仰稟王世子進見, 敎曰: "世子之道, 奚徒無違? 使我不用心, 亦子道也。 昨已下敎, 則以進見二字, 每挑靜攝之心。 其曰無違, 亦豈遵父命之道乎? 職在輔導, 書呈草記, 可謂擧職。 靜爲調理事, 其令轉白。" 又敎曰: "李昌任太輕於前, 鄭昌聖太詳於後, 無違二字, 豈爲元良飾辭? 職在輔導, 雖有下令, 宜以體大朝之意轉白, 而昨稟奏今草記, 令我費心氣, 輕詳自露, 不可無飭。 鄭昌聖從重推考。 其令勸勉調理, 備堂有進對之日, 講學有開卷之時, 雖呻吟之中, 不覺恙自祛體, 豈不愈於進見乎哉?" 上, 命持入小朝求對時記注草冊, 覽訖, 敎曰: "世子若是有加, 其令勿來, 予果是矣。 議藥只導氣湯, 依前製入。 今日可謂文具世界。 分提調金尙翼罷職。" 李奎采曰: "草冊中元無有加二字也。" 上, 更命奎采讀其草冊, 至頭部凝重之語, 上曰: "此豈非有加云乎? 顧瞻周遮, 此亡國之根柢也。 今日都承旨默默可也, 何心彌縫?" 特命罷職。 又以注書黃樸之全不記草, 令該府嚴處, 承旨李心源, 亦命罷職。 自今日命移直廚院, 藥院都提調金尙魯在江郊, 漠無動靜, 命罷職不敍。 以洪鳳漢拜相, 仍兼扈衛大將藥院都提調。 復以振紀綱、擧賢能、鎭囂習、濟元元、一公心。 同寅協六條勉諭, 特除李章吾爲禁衛大將。


  • 【태백산사고본】 67책 97권 14장 A면【국편영인본】 44책 62면
  • 【분류】
    왕실-국왕(國王) / 왕실-종친(宗親) / 행정-중앙행정(中央行政) / 사법-탄핵(彈劾) / 인사-임면(任免) / 출판-서책(書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