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조실록 97권, 영조 37년 2월 15일 乙酉 1번째기사
1761년 청 건륭(乾隆) 26년
우의정 민백상의 졸기
우의정 민백상(閔百祥)이 졸(卒)하였다. 민백상의 자(字)는 이지(履之)이니, 문충공(文忠公) 민진원(閔鎭遠)의 손자이다. 젊어서부터 영특하고 준수하며 풍채와 거동이 시원스럽게 뛰어났으므로, 문충공이 일찍이 빈객(賓客)에게 이르기를, ‘이 아이는 나의 훌륭한 손자이다.’라고 하였다. 영종(永宗)경신년047) 에 을과(乙科)로 합격하여 홍봉한(洪鳳漢)·김상복(金相福)과는 서로 친하게 지냈으며 서로 잇달아 정승의 지위에 들어갔으므로, 세상에서 세 정승의 친구[三台之友]라고 말하였다. 민백상이 우의정으로 발탁된 뒤 얼마 되지 않아 졸하였는데, 나이 51세였다. 그 뒤에 홍봉한이 수상(首相)에 임명되자 마침내 김상복을 추천하여 우의정을 삼도록 하였다. 민백상이 영남(嶺南)·호남(湖南)·관서(關西) 세 도(道)를 안절(按節)하였지만 청렴하다는 명성은 없었으며, 부유(富裕)하기가 경사(京師)에서 으뜸이었으므로 사대부(士大夫)들이 이를 부끄럽게 여겼다. 그의 동생 민백흥(閔百興)의 아들 민홍섭(閔弘燮)을 데려다 후사(後嗣)로 삼았는데, 민홍섭이 적신(賊臣)인 홍계능(洪啓能)과 서로 결탁을 했다가 민홍섭이 죽자 역절(逆節)이 발각되어 민씨(閔氏) 집안이 마침내 망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67책 97권 7장 A면【국편영인본】 44책 58면
- 【분류】인물(人物)
- [註 047]경신년 : 1740 영조 16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