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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조실록 84권, 영조 31년 5월 20일 癸巳 2번째기사 1755년 청 건륭(乾隆) 20년

신치운을 신문하다

신치운(申致雲)을 신문하였다. 처음에 김도성(金道成)이 공초하기를,

"심정연(沈鼎衍)의 흉서는 실로 신치운과 함께 의논하여 한 것입니다."

하고, 또 역적 이준(李埈)의 문서 가운데도 신치운을 칭찬하는 말이 많이 있어 이때에 이르러 형신하니, 공초하기를,

"윤상백(尹尙白)을 끊어버리지 못한 것이 신의 죄입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나라에서 죄를 씻어줌이 너 역시 지극하였다고 할 것이다. 네가 승지로 있었을 때 내가 늙은 것을 민망히 여겨 여러 해 동안 침체되었다는 하교까지 있었으니, 마땅히 감읍(感泣)했어야 했는데도 너는 얼굴도 꿈쩍하지 않아 내가 그때에 이미 네 마음을 알았었다."

하니, 신치운이 말하기를,

"성상께서 이미 이처럼 의심하시니, 신은 자복을 청합니다. 신은 갑진년177) 부터 게장을 먹지 않았으니 이것이 바로 신의 역심(逆心)이며, 심정연의 흉서 역시 신이 한 것입니다."

하니, 임금이 분통하여 눈물을 흘리고, 시위(侍衛)하는 장사(將士)들도 모두 마음이 떨리고 통분해서 곧바로 손으로 그의 살을 짓이기고자 하였다. 다시 같은 당의 사람을 물으니, 공초하기를,

"신과 같은 마음으로 일한 자는 유봉휘(柳鳳輝)·박사집(朴師緝)·조재민(趙載敏)·이철보(李喆輔)입니다."

하니, 임금이 꾸짖기를,

"이철보는 네가 무고(誣告)한 것이다."

하고, 엄형하기를 명하니, 신치운이 이에 무고로 자복하였다. 대사간 정광충(鄭光忠)이 나아가 말하기를,

"조재민은 비록 우상과 가까운 친속이기는 하나 의논은 아주 다르며, 이철보는 신이 청컨대 백 사람의 말로 보장하겠습니다."

하고, 정광충이 또 소회를 말하기를,

"역적 신치운의 흉언의 근본은 바로 역적 김일경입니다. 갑진년 처분 후에 복역(覆逆)한 승지와 옥당으로 살아 있는 자는 우선 절도(絶島)로 위리 안치하고, 이미 죽은 자는 마땅히 관직을 추탈하소서."

하니, 임금이 윤허하였다. 인하여 하교하기를,

"정광충의 말이 훌륭하다. 내가 ‘충(忠)’으로 사명(賜名)한 것이 헛일이 아니었다."

하고, 정광충에게 한 자급을 더하도록 명하였다. 이때에 소론(少論)의 준론을 하는 자가 국문 초사에 연달아 나왔다. 이종성(李宗城)·박문수(朴文秀)·이철보(李喆輔) 등이 전후하여 더욱 많이 원인(援引)되었는데, 임금이 끝내 불문에 부치고 매양 고한 자를 엄형하여 무복(誣服)을 받아내고는 말하기를,

"여러 해 동안 벼슬한 신하를 만약 한 사람의 말 때문에 갑자기 역적으로 의심한다면 그 누가 기꺼이 믿고 나를 섬기겠는가?"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60책 84권 19장 B면【국편영인본】 43책 579면
  • 【분류】
    사법(司法) / 변란(變亂)

  • [註 177]
    갑진년 : 1724 영조 즉위년.

○問申致雲。 初道成招以爲: "鼎衍凶書, 實與致雲同議。" 又逆文書中, 多有稱譽致雲之語, 至是刑訊, 供曰: "不絶尙白, 是臣之罪耳。" 上曰: "國家之剪拂, 汝亦云至矣。 汝爲承旨時, 予憫其老, 至有沈滯多年之敎, 則宜其感泣, 而汝不爲動顔, 予於伊時已知汝心耳。" 致雲曰: "上旣疑之如是, 臣請自服。 臣自甲辰後, 不喫蟹醬, 此乃臣之逆心, 鼎衍凶書, 亦臣所爲也。" 上憤痛流涕, 侍衛將士莫不崩心痛骨, 直欲手臠其肉。 更問同黨, 供: "同臣心事者, 柳鳳輝朴師緝趙載敏李喆輔也。" 上叱之曰: "李喆輔, 是汝誣告也。" 命嚴刑, 致雲乃服誣。 大司諫鄭光忠進曰: "載敏雖與右相屬近, 論議則楚越, 喆輔則臣請百口保之耳。" 光忠又以所懷奏曰: "賊凶言, 其本卽賊。 甲辰處分後覆逆承旨、玉堂生者, 姑先絶島圍籬安置, 已故者, 宜追奪官職。" 上允之。 仍敎曰: "光忠之言貴矣。 予之賜名以忠不虛。" 命加光忠一資。 是時, 少論之峻者, 連出鞫招。 李宗城朴文秀李喆輔等前後被引尤多, 上終不問, 嚴刑告者, 取其誣服曰: "積年任使之臣, 若以一人之言, 遽疑以逆, 則誰肯信而事予乎?"


  • 【태백산사고본】 60책 84권 19장 B면【국편영인본】 43책 579면
  • 【분류】
    사법(司法) / 변란(變亂)