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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조실록 68권, 영조 24년 윤7월 3일 乙卯 1번째기사 1748년 청 건륭(乾隆) 13년

옹주의 장지로 파주의 사인 윤득성의 산을 사들이게 하다

호조에 명하여 파주(坡州)의 사인(士人) 윤득성(尹得聖)의 가산(家山)을 사들이게 하였다. 윤씨(尹氏)의 장사(莊舍)가 파주의 마산(馬山)에 있는데, 오세(五世) 동안 서로 전수하여 왔다. 이때 옹주(翁主)가 졸서(卒逝)하자 임금이 종신(宗臣) 가운데 감여술(堪輿術)092) 을 아는 남원군(南原君) 이설(李) 등을 시켜 장지(葬地)를 살펴보게 했는데, 윤씨집 장전(莊田)의 뒤가 길지(吉地)라고 하였다. 임금이 호조에 명하여 은(銀)을 내어 민가(民家)에 지급하고 1백여 호(戶)를 모두 헐었다.

사신(史臣)은 말한다. 옹주는 훌륭한 부덕(婦德)을 지니고 있었는데 졸(卒)하였으므로 임금이 사랑하는 뜻에서 통석(痛惜)해 하여 마지 않았으니, 이는 천리(天理)에 있어 당연한 것이다. 그러나 슬퍼하는 것을 중도에 지나치게 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중도에 지나치게 하면 그것은 예(禮)가 아닌 것인데, 더구나 임금의 위치에서야 말할 것이 뭐 있겠는가? 옹주가 졸서한 뒤 20일이 지나서야 비로소 빈대(賓對)를 허락했는데, 전후 중도에 지나친 하교는 기주(記注)가 이루 다 기록할 수 없을 정도였다. 대개 뭇 신하들이 위에 기탄함을 보인 자가 없어서 임금이 이런 잘못을 있게 하였으니, 애석한 일이다. 그리고 사람이 죽으면 개간할 수 없는 땅에다 장사지내는 것인데, 가령 옹주가 훌륭하다면 의당 그의 뜻을 따라 그 아름다움을 완성시켜 주어야 하는 것이지만, 남의 집안에서 대대로 전수하여 온 땅을 빼앗고 또 민가 수백 호를 헐어 내게 하였으니, 대저 임금이 백성을 위하는 덕의(德意)가 지극했는데도 오히려 가리워져서 생각하지 못한 탓인가?


  • 【태백산사고본】 51책 68권 4장 A면【국편영인본】 43책 301면
  • 【분류】
    왕실(王室) / 사상(思想) / 역사(歷史)

  • [註 092]
    감여술(堪輿術) : 풍수(風水)에 관한 학술.

○乙卯/命戶曹, 買坡州士人尹得聖家山。 尹氏庄舍在於坡州 馬山, 五世相傳。 時, 翁主卒逝, 上使宗臣識堪輿術者南原君 等相地, 以家庄後爲吉。 上命版曹, 出銀給民家, 百戶皆毁撤。

【史臣曰: 翁主有淑德而卒, 上以止慈之義, 爲之痛惜, 此則天理之(常)〔當〕 然。 哀不可過, 過則非禮, 況人君乎? 自翁主卒逝之後, 過二旬始許賓對, 前後過中之敎, 記注不能盡記。 蓋群臣無見憚於上者, 致上有此失, 惜哉! 且死則葬不食之地, 使翁主賢乎, 宜循其志, 以成其美, 奪人家世守之地, 又毁數百民家, 夫以上爲民之德意, 猶有所掩而未之思歟?"】


  • 【태백산사고본】 51책 68권 4장 A면【국편영인본】 43책 301면
  • 【분류】
    왕실(王室) / 사상(思想) / 역사(歷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