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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조실록 67권, 영조 24년 6월 25일 戊寅 1번째기사 1748년 청 건륭(乾隆) 13년

화평 옹주 집에 있으면서 창덕궁으로 이차하라고 명하다

임금이 화평 옹주의 집에 있으면서 창덕궁(昌德宮)으로 이차(移次)하라고 명하였다. 임금이 옹주의 집에 있을 적에 비가 심하게 내렸으므로 백관과 군병들이 하루 종일 비를 맞았다. 오후에 창덕궁으로 이차하게 하자 뭇 신하들이 간쟁하였으나, 되지 않았다. 이는 장차 다시 염빈(殮殯)에 임어하기 위해서였다.

사신은 말한다. "왕자(王者)가 상(喪)에 임어하는 데에는 본래 전례(典禮)가 있는 것으로, 열조 이래 왕자나 옹주의 상에 간혹 나아가 임어하기도 했었으나 곧 이어 즉시 환궁하였다. 따라서 빈렴(殯殮)에 친림(親臨)한 일은 예로부터 들은 적이 없던 일이다. 대신과 여러 재신(宰臣)들이 간쟁하지 않은 것이 아니지만 끝내 감동시켜 돌이킬 수 없었던 것은 20년 동안 뜻을 봉행하는 것이 습관으로 굳어져 구차스럽게 따르기만 하는 신하가 되는 것을 달갑게 여겼기 때문인 것이다. 그리하여 전에 없던 지나친 거조가 있기에 이르러서는 비록 바로잡으려 했었으나, 그 또한 늦은 것이었다."


  • 【태백산사고본】 50책 67권 45장 B면【국편영인본】 43책 298면
  • 【분류】
    왕실(王室) / 역사(歷史)

○戊寅/上在和平主第, 命移次昌德宮。 上在主第時, 甚雨, 百官、軍兵終日沾濕。 午後移次昌德宮, 群臣爭之不得, 將欲復臨殮殯也。

【史臣曰: 王者臨喪, 自有典禮, 列朝以來, 王子、公ㆍ翁主之喪, 雖或出臨, 旋卽還宮。 親臨殯殮, 古所未聞。 大臣、諸宰非不爭之, 而終不能感回者, 二十載間承奉成習, 甘心爲苟從之臣。 及至有無前之過擧, 雖欲救之, 其亦晩矣。】


  • 【태백산사고본】 50책 67권 45장 B면【국편영인본】 43책 298면
  • 【분류】
    왕실(王室) / 역사(歷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