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천군 이온을 김치만의 딸과 혼사시키려 하는데 김치만이 계속 거부하므로 체포하다
전 시직(侍直) 김치만(金致萬)을 나처(拿處)하게 하였다. 이보다 앞서 임금이 왕제(王弟)인 연령군(延齡君) 이헌(李昍)의 소후자(所後子)472) 인 낙천군(洛川君) 이온(李縕)을 위하여 종부시(宗簿寺)로 하여금 김치만의 딸과 혼사(婚事)에 대해 의논하게 하였었다. 그런데 김치만이 대답하기를, ‘먼저 고 상신 홍치중(洪致中)의 죽은 아들의 유복자(遺腹子)와 약혼(約婚)했었는데, 지금 홍치중이 이미 죽었으나, 의리에 있어 약속을 물리칠 수가 없습니다.’ 하였다. 임금이 거듭 엄중한 하교를 내려 즉시 택일(擇日)하여 아뢰게 하고서 하교하기를,
"김치만뿐만 아니라 누구이든 그 아비가 군신(君臣)의 분의를 안다면 어찌 감히 이렇게 할 수 있겠는가? 김치만은 잡아오게 하고 종부시로 하여금 혼사를 주관하여 택일하게 하라."
하였다. 우의정 송인명(宋寅明)이 임금에게 아뢰기를,
"낙천군의 혼인이 성상께서 친척과 친목하려는 뜻에서 나왔으나, 길사(吉事)는 핍박하여 다그쳐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하니, 임금이 이르기를,
"선조(先朝)의 후손이 단지 세 사람 있을 뿐인데, 내가 동기의 아들을 성혼(成婚)시키지 못한다면, 뒷날 지하에 돌아가 무슨 말로 앙대(仰對)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 사신(史臣)도 나의 박덕(薄德)함을 기록할 것이다. 김치만이 처음에는 도혼(倒婚)473) 이라고 핑계대다가 끝에 가서는 약속을 지켜야 한다고 일컫고 있다. 만일 왕법(王法)이 있다는 것을 안다면 결단코 감히 이렇게 할 수 없을 것이다. 남녀를 마땅히 그대로 둘 다 늙게 만들어야겠다."
하였다. 김치만이 수금(囚禁)되어서도 끝내 명을 받들지 않았다. 수일이 지난 뒤 이에 하교하기를,
"인신(人臣)이 되어 임금의 명을 무시하고 인부(人父)가 되어 그 자식을 가르치지 않는 것은 이것이 불충(不忠)이요 불효(不孝)인 것이다. 이렇게 서로 버티는 것은 사체만을 손상시킬 뿐이요. 김희로(金希魯)를 우선 삭직(削職)시키라."
하니, 좌의정 김재로(金在魯)가 차자(箚子)를 올려 인구(引咎)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32책 42권 34장 B면【국편영인본】 42책 527면
- 【분류】사법-행형(行刑) / 왕실-종친(宗親) / 풍속-예속(禮俗) / 역사-사학(史學)
○戊午/命前侍直金致萬拿處。 先是, 上爲王弟延齡君 昍所後子洛川君 縕, 令宗簿寺, 議婚于致萬女。 致萬對以先與故相洪致中亡子之遺腹兒約婚, 今致中已死, 義不可退約, 上荐下嚴敎, 使卽擇日以聞。 敎曰: "非特致萬, 使厥父若知君臣分義, 豈敢若是? 致萬拿致, 令宗簿寺, 主張擇期。" 右議政宋寅明言于上曰: "洛川之婚, 雖出聖上敦親之意, 而吉事不宜驅迫矣。" 上曰: "先朝之後, 只有三人, 予爲同氣之子, 不能成婚, 則他日歸拜, 何辭仰對, 史臣將書以薄德矣。 致萬始以倒婚爲托, 末乃稱以守約。 若有王法, 決不敢若是, 男女當使兩老矣。" 致萬就囚, 終不承命。 後數日, 乃敎曰: "爲人臣而不有君命, 爲人父而不敎其子, 是不忠不孝也。 若是相持, 徒傷事體。 金希魯姑先削職。" 左議政金在魯上箚引咎。
- 【태백산사고본】 32책 42권 34장 B면【국편영인본】 42책 527면
- 【분류】사법-행형(行刑) / 왕실-종친(宗親) / 풍속-예속(禮俗) / 역사-사학(史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