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제조 홍치중이 상선을 들 것을 청하니, 따르다
약방(藥房)의 도제조(都提調) 이하의 관원과 예조 판서 서명균(徐命均)이 구대(求對)하니, 임금이 진수당(進修堂)에 나아가 포립(布笠)·포포(布袍)·백피화(白皮靴) 차림으로 흰 의자 위에 앉았다. 도제조 홍치중(洪致中)이 상선(常膳)을 들 것을 청하니, 임금이 이르기를,
"동조(東朝)께서 내가 여러 날 소선(素膳)드는 것을 민망스럽게 여겨 하교(下敎)하셨으니, 그런 까닭으로 마지못해 권도(權道)를 따르겠다."
하였다. 홍치중 등이 함께 이르기를,
"이러한 추위에 연일 새벽에 일어나서 제사를 지내고 곡읍(哭泣)하시면 성후(聖候)가 어찌 손상되지 않겠습니까? 이 뒤로는 마땅히 섭행(攝行)을 명하셨다가 졸곡일(卒哭日)에 이르러 기력을 보아 친히 행하는 것이 신(臣) 등의 바람입니다."
하니, 임금이 체읍(涕泣)하며 이르기를,
"십수 년 동안 최마(衰麻)로 몸을 감았으니, 지나온 일을 말하자면 어떻게 나같은 사람이 또 있겠는가? 의릉(懿陵)을 바라보면 다시는 나의 정리를 펼 곳이 없구나. 다섯 달 동안 빈전(殯殿)을 생각하고 하루 다섯 때를 곡읍해도 오히려 부족하게 여기는데, 왕가(王家)는 여염(閭閻)과 달라 우제(虞祭)가 지나면 곡읍할 절차(節次)가 없게 되니, 어떻게 슬픔을 펼 수가 있겠는가? 그러나 경(卿) 등의 말이 이와 같으니, 만일 병이 생기면 의당 섭행을 명하겠다."
하였다. 홍치중이 말하기를,
"천재(天災)도 이러하고 나라 형편도 어려우니, 조정에 대소(大小) 신료가 모여야만 유지(維持)될 듯합니다. 이광좌(李光佐)와 민진원(閔鎭遠)을 머물러 있게 하면 나라 일이 잘 되어질 것입니다."
하니, 임금이 답하기를,
"이 영부사(李領府事)가 강상(江上)으로 돌아가려 함은 그 처지가 응당 그렇게 된 것이지 내가 버린 것은 아니다. 민 판부사(閔判府事)는 비록 불러도 반드시 오지 않을 것이니, 여러 해가 지난 뒤에는 혹시 깨닫는 바가 있을까? 가까운 곳에 와서 지내라고 하유(下諭)하려 한다. 이병상(李秉常)과 김흥경(金興慶)은 능소(陵所)에 올라왔다는데 벌써 돌아갔는가?"
하니, 홍치중이 말하기를,
"그렇습니다."
하였다. 임금이 이르기를,
"김흥경은 비록 논척(論斥)을 당한 일이 있기는 했지만, 어떻게 감히 이럴 수가 있겠는가? 이병상은 성질이 편협하여 한 가지 일로 오랫동안 버티려고 하니, 어떻게 매번 용서하여 놓아줄 수가 있겠는가? 상인(常人)의 일로 말하건대, 평일에 비록 서로 다투는 꼬투리가 있었더라도 부모의 상(喪)을 당하면 마땅히 찾아가 조문을 하는 것인데, 아주 가까운 서울에 끝내 들르지 않고 갔으니, 군신(君臣)의 의리가 없어진 것이다. 모두 파직하고 서용치 말라."
하였다. 홍치중이 말하기를,
"전 주서(注書) 이덕재(李德載)는 문무(文武)를 겸비(兼備)한 재주가 있으니, 6품직으로 올려서 조용(調用)함이 옳겠습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나는 어떠한지를 모르지만 경이 쓸 만하다고 여긴다면 출륙(出六)479) 하는 것이 좋겠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21책 28권 9장 A면【국편영인본】 42책 231면
- 【분류】왕실-비빈(妃嬪) / 왕실-의식(儀式) / 사법-탄핵(彈劾) / 의생활(衣生活) / 식생활(食生活) / 인사-임면(任免) / 인사-관리(管理)
- [註 479]출륙(出六) : 7품직에 있는 관원이 그 임기가 만료되고 성적이 좋은 경우 6품으로 승급(陞級)하여 다른 직에 전임(轉任)함.
○藥房都提調以下禮曹判書徐命均求對, 上御進修堂, 布笠、布袍、白皮靴, 坐於素椅上。 都提調洪致中請進常膳, 上曰: "東朝悶予多日行素下敎, 故不得已從權矣。" 致中等合辭曰: "如此寒節, 連日曉起, 將事哭泣, 聖候安得不傷乎? 此後則宜命攝行, 到卒哭日, 觀氣力親行, 臣等之望也。" 上涕泣曰: "十數年來, 衰麻纏身, 言所經歷, 豈有如予者乎? 瞻望懿陵, 更無伸予情理之處。 五朔依仰殯殿, 五時哭泣, 猶以爲不足, 國家與閭巷不同, 過虞後無哭臨之節, 何以展哀乎? 然卿等之言如此。 若有病, 則當命攝矣。" 致中曰: "天災如此, 國勢罔措, 朝廷之上, 大小聚會, 然後可以維持。 李光佐、閔鎭遠勉留, 則國事可爲矣。" 上曰: "李領府事欲還江上, 其情地固當如此, 予非捨之。 閔判府事雖招之, 必不來, 年久之後, 或有覺處否? 欲以來住近地諭之矣。 李秉常、金興慶上來陵所, 已還去耶?" 致中曰: "然矣。" 上曰: "金興慶, 雖有被論之事, 何敢如是? 李秉常偏狹, 欲以一事, 許久撕捱, 何可每每開釋耶? 以常人事言之, 平日雖有相較之端, 受衰之後, 當來問。 咫尺京城, 終不入肅而去, 君臣之義廢矣。 幷罷職不敍。" 致中曰: "前注書李德載, 有文武全才, 宜出六品調用。" 上曰: "予不識何狀, 而卿以爲可用, 出六可也。"
- 【태백산사고본】 21책 28권 9장 A면【국편영인본】 42책 231면
- 【분류】왕실-비빈(妃嬪) / 왕실-의식(儀式) / 사법-탄핵(彈劾) / 의생활(衣生活) / 식생활(食生活) / 인사-임면(任免) / 인사-관리(管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