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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조실록 28권, 영조 6년 10월 19일 甲寅 2번째기사 1730년 청 옹정(雍正) 8년

선의 왕후를 의릉 동강 하혈 신좌의 언덕에 부장하다

선의 왕후(宣懿王后)의릉(懿陵)474) 동강(同崗) 하혈(下穴) 신좌(申坐)의 언덕에 부장(祔葬)하였다. 이보다 먼저 8월 12일에 참초(斬草)·파토(破土)하였고, 9월 13일에 금정(金井)475) 을 열었는데, 혈심(穴深)은 8척 4촌 【영조척(營造尺)을 쓴다.】 이었다. 10월 16일에 찬궁(欑宮)을 열어 이날 자시(子時)에 발인(發靷)하기 전 5각(五刻)에 이르러 임금이 견례(遣禮)를 의식대로 행하니, 내시(內侍)가 혼백함(魂帛函)을 받들어 요여(腰轝)에 안치하고 중문(中門) 밖에 이르러 또 수레에 봉안하였으며, 우주궤(虞主櫃)를 그 뒤에 놓았다. 좌의정 이집(李㙫)이 재궁(梓宮)을 메는 관원과 내시를 인솔하고 윤여(輪轝)에 재궁을 모시어 뜰을 내려와 흰 비단 덮개[褚]로 덮으니, 내외(內外)가 모두 곡하였다. 내시가 삽(翣)과 행장(行障)·좌장(坐障)으로 재궁을 가리고 명정(銘旌)이 앞에서 인도하였다. 중문에 이르러 상여[輴]에 올려 외문(外門)을 나와서 대여(大轝)에 올려 드디어 길을 떠나니, 의위(儀衛)의 도종(導從)을 의식대로 하였다. 방울을 잡은 자가 방울을 흔드니, 궁인(宮人)은 말을 타고 곡하며 따랐고, 내시들은 모두 곡하며 걸어서 따랐는데, 승지(承旨) 2인도 수행하였다. 혼백(魂帛)의 수레가 종묘(宗廟) 앞길에 이르자 섭통례(攝通禮)가 잠깐 멈출 것을 계청(啓請)하고, 수레를 돌려 북쪽을 향하게 하였다. 조금 후에 다시 길을 떠나기를 계청하였는데, 대여가 이르자 똑같이 그렇게 하였다. 대여가 흥인문(興仁門)에 이르러 잠깐 멈춰 강(杠)을 고쳤는데, 이미 문을 나서자 다시 강을 고쳤다. 영가(靈駕)가 노제소(路祭所)에 이르니, 내시는 혼백함을 받들어 장전(帳殿) 안에 들어가 안치하였고, 섭통례는 영가가 잠깐 멈출 것을 계청하여 향을 올리고 노제(路祭)를 의식대로 지냈다. 섭통례가 영좌(靈座) 앞에 나아가 좌(座)에서 내려 여(轝)에 오를 것을 계청하고, 또 여에서 내려 수레[車]에 오를 것을 계청하고, 또 대여 앞에 나아가 출발을 계청하였다. 능소(陵所)에 이르러 좌의정 이집이 재궁(梓宮)을 메는 관원을 인솔하여 재궁을 모셔 탑상(榻上)에 안치하고 머리를 남쪽으로 향하게 하였다. 내시가 영좌를 재궁의 남쪽에 남향으로 설시하여 혼백함을 받들어 영좌에 안치하고 우주궤는 그 뒤에 두었으며, 향안(香案)은 그 앞에 설시하였다. 명정(銘旌)은 영좌의 오른쪽에 두고 시책보(諡冊寶)·애책(哀冊) 및 평시의 책보(冊寶)와 인(印)은 영좌의 왼쪽에 두었으며, 또 영침(靈寢)은 재궁의 동쪽에 설시하였다. 궁인(宮人)은 시위(侍位)에 나가 처음과 같이 곡하였다. 이날 천전(遷奠)은 의식대로 행해졌다. 방상씨(方相氏)가 도착하여 현궁(玄宮)에 들어가 창으로 네 모퉁이를 두들겨보고 명기(明器)·복완(服玩)·증옥(贈玉)·증백(贈帛)을 현궁의 문 밖에 진열하였다. 섭통례가 재궁 앞에 나아가 꿇어앉아 상여에 올라 현궁으로 나아갈 것을 계청하였다. 우의정 조문명(趙文命)이 수건을 받들고 나아가 재궁을 닦았다. 좌의정 이집이 재궁을 메는 관원과 내시를 이끌고 재궁을 받들어 상여에 올리니, 내시는 삽(翣)과 행장(行障)·좌장(坐障)으로 재궁을 가리고 여사(轝士)는 상여를 받들어 왼쪽으로 돌아 북쪽으로 머리를 하고 곧 현궁으로 나아가려 하니, 궁인은 모두 곡하고 배종(陪從)한 백관(百官)들도 곡하며 걸어서 따랐다. 상여가 현궁의 방목(方木) 위에 이르자 녹로(轆轤)를 이용하여 재궁을 받들어 내리니, 내시들이 관의(棺衣)로 덮고 명정을 그 위에 올려놓았다. 좌의정 이집이 재궁을 메는 관원을 이끌고 윤여(輪轝)로 재궁을 받들어 연도(羡道)로부터 들어가 현궁의 대관(大棺) 안에 북쪽으로 머리하여 안치하였다. 우의정 조문명이 다시 관의(棺衣)와 명정을 정돈하고 영의정 홍치중(洪致中)이 먼저 애책을 퇴광(退壙)의 서쪽에 드리고 다음에 증옥·증백을 애책의 남쪽에 드리니, 배종한 백관들은 부복하여 곡한 후 사배(四拜)를 올리고 하직하였다. 산릉 도감 제조(山陵都監提調) 이진망(李眞望) 등은 보삽(黼翣)·불삽(黻翣)·화삽(畫翣)을 재궁의 양쪽 곁에 세우고 집사자(執事者)가 명기·복완을 받들어 드리니, 집의(執義) 이현보(李玄輔)가 쇄폐(鎖閉)를 감독하였다. 우의정 조문명이 흙 아홉 삽을 덮은 다음 지석(誌石)을 내리고 우주(虞主)를 세워 전례(奠禮)를 의식대로 행하였다. 신시(申時)에 초우제(初虞祭)를 산릉(山陵)에서 행했는데, 임금은 광명전(光明殿)의 뜰 위에서 망곡(望哭)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21책 28권 8장 A면【국편영인본】 42책 231면
  • 【분류】
    왕실-비빈(妃嬪) / 왕실-의식(儀式)

  • [註 474]
    의릉(懿陵) : 경종(景宗)의 능.
  • [註 475]
    금정(金井) : 무덤을 팔 때 굿의 길이와 넓이를 정하기 위해 우물 ‘정(井)’자 모양으로 틀을 만들어 땅위에 뉘여 파들어 가는데, 그 도구를 금정틀이라 하고, 그 정해진 공간을 금정이라 함.

○祔葬宣懿王后懿陵同崗下穴申坐之原。 先於八月十二日, 斬草、破土, 九月十三日, 開金井, 穴深八尺四寸。 【用營造尺。】 十月十六日, 啓欑宮, 至是日子時發靷前五刻, 上行遣禮如儀, 內侍奉魂帛凾, 安於腰轝, 至中門外, 又奉安於車, 虞主樻置其後。 左議政李㙫帥舁梓宮官及內侍, 以輪輿奉梓宮, 降階, 覆以素錦褚, 內外皆哭。 內侍以翣及行障、坐障障梓宮, 銘旌先行。 至中門, 陞輴出外門, 陞大轝, 遂進發, 儀衛導從如式。 執鐸者振鐸, 宮人乘馬哭從, 內侍皆哭步從, 承旨二人隨行。 魂帛車至宗廟前路, 攝通禮啓請少駐, 回車北向。 少頃, 又啓請進發, 大轝至, 亦如之。 大轝至興仁門, 少駐改杠。 旣出門又改杠。 靈駕至路祭所, 內侍奉魂帛凾, 入安於帳殿中, 攝通禮啓請靈駕少駐, 進香路祭如儀。 攝通禮進靈座前, 啓請降座, 陞轝, 又啓請降轝陞車, 又進大轝前, 啓請進發。 至陵所, 左議政李㙫帥舁梓宮官, 奉梓宮, 安於榻上南首。 內侍設靈座於梓宮之南南向, 奉魂帛凾, 安於靈座, 虞主樻置其後, 設香案於其前。 設銘旌於靈座之右, 設謚冊寶、哀冊及平時冊寶、印於靈座之左, 又設靈寢於梓宮之東。 宮人就侍位, 哭如初。 是日, 行遷奠如儀。 方相氏至, 入玄宮, 以戈擊四隅, 明器、服玩、贈玉、贈帛, 陳於玄宮門外。 攝通禮進梓宮前跪, 啓請陞輴, 卽玄宮。 右議政趙文命奉巾進, 拭梓宮。 左議政李㙫帥舁梓宮及內侍奉梓宮陞輴, 內侍以翣及行障、坐障, 障梓宮, 轝士奉輴左回北首, 將卽玄宮, 宮人皆哭, 陪從百官, 哭步從。 輴至玄宮方木上, 用轆轤, 奉下梓宮, 內侍覆以棺衣, 銘旌寘其上。 左議政李㙫帥舁梓宮官, 以輪輿奉梓宮, 入自羡道, 安於玄宮大棺內北首。 右議政趙文命再整棺衣銘旌, 領議政洪致中, 先奠哀冊於退壙之西, 次奠贈玉、贈帛於哀冊之南, 陪從百官, 俯伏哭四拜奉辭。 山陵都監提調李眞望等, 以黼翣、黻翣、畫翣, 樹於梓宮兩傍, 執事者奉明器、服玩以進, 執義李玄輔監鎖閉。 右議政趙文命覆土九鍤, 下誌石, 立虞主, 行奠禮如儀。 申時, 行初虞祭於山陵, 上望哭於光明殿陛上。


  • 【태백산사고본】 21책 28권 8장 A면【국편영인본】 42책 231면
  • 【분류】
    왕실-비빈(妃嬪) / 왕실-의식(儀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