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시조 고·부·양 3을나의 사당에 사액을 청한 제주 유생 고한준의 상소
제주(濟州) 유생(儒生) 고한준(高漢俊) 등이 상소하기를,
"탐라(耽羅)는 곧 옛적의 탁라국(乇羅國)입니다. 먼 옛날에 세 신인(神人)인 양을나(良乙那)·고을나(高乙那)·부을나(夫乙那)가 9백 년 동안을 정립(鼎立)하다가 인심이 하나로 돌아가 고씨(高氏)가 임금이 되었고, 신라(新羅) 때에는 고을나의 후손 고후(高厚)·고청(高淸)·고계(高季)란 사람 3형제가 배를 만들어 바다를 건너가 비로소 내부(內附)가 되기를 청하므로 신라 임금이 이름을 내리어 맏이는 성주(星主), 가운데는 왕자(王子), 막내는 도내(都內)라고 하였으며, 양을나의 후손에게는 신라 말엽(末葉)에 성을 양(梁)이라고 내렸고, 고씨의 외손 문씨(文氏)가 또한 계승하여 왕자가 된 사람도 있었습니다. 우리 태종조(太宗朝)에 성주(星主) 고봉례(高鳳禮)와 왕자(王子) 문충세(文忠世) 등이 명칭이 참람함을 들어 고쳐 주기를 청하여 윤허받음으로써 성주와 왕자의 이름이 비로소 혁파되었습니다. 신들이 그윽이 한 칸의 띳집에서 주 소왕(周昭王)을 향사(享祀)하는 의리689) 를 붙여 사당을 창설하여 고(高)·부(夫)·양(梁) 3을나(乙那)에게 향사(享祀)하되, 성주 고후, 왕자 고청, 도내 고계와 고봉례·문충세를 배향(配享)했습니다. 바라건대, 한(漢)나라와 송(宋)나라의 고사(故事) 및 우리 동방(東方) 역대의 조묘(祖廟)와 삼성사(三聖祠)의 예에 의거하여 사액(賜額)해 주소서."
하니, 임금이 분부하기를,
"탐라는 신라·고구려·백제와는 다르다. 하물며 전조(前朝)에서 우리 국조(國朝)에 들어온 지 몇 백년이 되도록 시행하지 않은 일을 이제 와서야 소청(疏請)을 함은 합당한 것인지 알지 못하겠다. 또 전대(前代)를 추념(追念)하고 옛적의 현자(賢者)를 사모하여 사우(祠宇)를 세우는 일은 혹 위에서 처분을 내리게 되거나 혹은 아래에서 청하여 하게 된 것은 있었다. 이는 그렇지 아니하여 마치 고국(古國)을 잊어버리지 않으려고 그러는 것같이 되어 있으니, 과연 사체에 맞는 것이겠는가? 상소 내용에 한 칸의 띳집에서 주소왕을 향사한다는 말은 특히 친착(襯着)하지 못할 뿐만이 아니라, 번읍(蕃邑)으로 작정하여 신하 노릇을 하고 백성 노릇을 하게 된 지가 또한 몇 백년이 되는데 감히 이러한 말을 장주(章奏)에 올렸으니, 이 상소를 도로 내주라."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9책 24권 20장 A면【국편영인본】 42책 163면
- 【분류】정론-정론(政論) / 역사(歷史) / 풍속-풍속(風俗) / 풍속-예속(禮俗) / 왕실-사급(賜給)
- [註 689]주 소왕(周昭王)을 향사(享祀)하는 의리 : 주(周)나라 소왕(昭王)은 강왕(康王)의 아들인데, 남방(南方)을 순행하여 한수(漢水)에 이르니 형(荊)나라 사람이 아교로 만든 배로써 소왕을 건너게 하여 아교가 풀어지자 배가 파선이 되어 소왕이 물에 빠져 죽은 일이 있음. 당 헌종(唐憲宗) 14년(819)에 한유(韓愈)가 지은 양주의성현역기(襄州宜城縣驛記)에 "동북(東北)에 우물이 있는데, 세상에서는 소왕정(昭王井)이라 하고, 이 우물 동북쪽으로 수십보 밖에 소왕묘(昭汪廟)가 있는데, 지금은 다만 초가(草家) 한 칸만이 있을 뿐이나, 해마다 10월이 되면 백성들이 모여 제사지낸다."고 하였음.
○濟州儒生高漢俊等上疏言:
耽羅卽古乇羅國也。 遽古三神人良乙那、高乙那、夫乙那鼎立九百年, 人心歸于一, 高氏爲主, 新羅時, 高乙那之後高厚、高淸、高季兄弟三人, 造舟渡海, 始請內附, 羅王錫號, 伯曰星主, 仲曰王子, 季曰都內, 良乙那之後, 羅季賜姓爲梁, 高氏外孫文氏, 亦有繼爲王子者。 我太宗朝, 星主 高鳳禮、王子 文忠世等, 以稱號之僭, 請改蒙允, 星主、王子之號, 始革。 臣等竊附一間祭昭之義, 創祠享高、夫、梁三乙那, 以星主高厚、王子高淸、都內 高季及高鳳禮、文忠世配。 乞依漢、宋故事, 與我東歷代祖廟、三聖祠例, 賜額。
上敎曰: "耽羅與羅、麗、濟有異。 況自前朝入我, 迄于幾百年, 未行之事, 到今疏請, 未知得宜。 且追惟前代, 慕昔賢者, 建宇立祠, 或自上處分, 或自下請焉則有之。 此則不然, 有若不忘古國者然, 其果合於事體? 而疏中一間祭昭王之說, 非特不襯着, 作爲藩邑爲臣爲民, 亦幾百年, 則敢以此等之說, 登諸章奏, 此疏還給。"
- 【태백산사고본】 19책 24권 20장 A면【국편영인본】 42책 163면
- 【분류】정론-정론(政論) / 역사(歷史) / 풍속-풍속(風俗) / 풍속-예속(禮俗) / 왕실-사급(賜給)