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식을 잃자 인삼차를 올리다
비와 눈이 내렸다. 임금의 환후(患候)가 피곤하고 위태함이 더욱 심하고 맥(脈)이 낮아져서 힘이 없었다. 4경(更)에 약방(藥房)에서 입진(入診)하여 삼다(參茶)를 올리고 물러나와서는 주원(厨院)242) 으로 옮겨서 입직(入直)하기를 청하였으며, 사각(巳刻)에 다시 입진(入診)하였다. 임금이 병환이 있은 뒤로 여러 신하들이 성후(聖候)를 문안하면 임금이 번번이 응수(應酬)하여 대답을 하였는데, 이에 이르러서는 임금의 음성이 점점 미약하여졌다. 도제조(都提調) 이광좌(李光佐)와 제조(提調) 이조(李肇)가 미음(粥飮)을 진어하기를 권하였으나 모두 응답하지 않았으며, 세제(世弟)가 일어나서 청하매 임금이 비로소 고개를 들므로 미음을 올렸다. 제조 등이 물러나와 여러 의원(醫員)들과 약을 의논하였는데, 이공윤(李公胤)이 공언(公言)하기를,
"삼다(蔘茶)를 써서는 안된다. 계지마황탕(桂枝麻黃湯) 2첩만 진어할 것 같으면 설사는 금방 그치게 할 수 있다."
하므로, 마침내 다려 올려 복용하였다. 유각(酉刻)에 의관(醫官)이 입진(入診)하고 물러나와 말하기를,
"환후(患候)의 증세가 아침에 비교해 더욱 위급합니다."
하자, 모든 신하들이 희인문(熙仁門)으로 달려 들어갔고, 대내(大內)로부터 제조(提調)의 입진(入診)을 재촉하여 이광좌 등이 입시(入侍)하였는데, 임금이 내시(內侍)를 의지하고 앉아서 눈을 몹시 부릅뜨고 보았다. 이광좌가 문후(問候)를 하였으나 임금이 대답하지 않자, 세제(世弟)가 울면서 말하기를,
"인삼(人蔘)과 부자(附子)를 급히 쓰도록 하라."
하였고, 이광좌가 삼다(參茶)를 올려 임금이 두 번 복용하였다. 이공윤(李公胤)이 이광좌에게 이르기를,
"삼다를 많이 쓰지 말라. 내가 처방한 약을 진어하고 다시 삼다를 올리게 되면 기(氣)를 능히 움직여 돌리지 못할 것이다."
하니, 세제(世弟)가 말하기를,
"사람이란 본시 자기의 의견(意見)을 세울 곳이 있긴 하나, 지금이 어떤 때인데 꼭 자기의 의견을 세우려고 인삼 약제를 쓰지 못하도록 하는가?"
하였다. 조금 지나자 임금의 안시(眼視)가 다소 안정되고 콧등이 다시 따뜻하여졌다. 세제가 또 말하기를,
"내가 의약(醫藥)의 이치를 알지 못하나, 그래도 인삼과 부자가 양기(陽氣)를 능히 회복[回陽]시키는 것만은 안다."
하였다. 어제 쓰던 삼을 바로 멈추었던 것은, 생각건대 반드시 이공윤의 말 때문에 미루었던 것 같다. 2경(二更)에 임금의 기식(氣息)이 다시 미약하므로 이광좌가 삼다를 올렸으나 임금이 스스로 마시지 못하여 의관(醫官)이 숟가락으로 떠서 넣었다. 이광좌가 종묘(宗廟)와 사직(社稷)에 기도(祈禱)하기를 청하고 이내 눈물을 흘리면서 말하기를,
"신이 어리석고 혼미하여 증후(症候)에 어두워서 약물을 쓰는 데도 합당함을 잃은 것이 많았으니, 그 죄는 만번 죽어 마땅합니다."
하였고, 세제는 말하기를,
"성상(聖上)이 나에게 정(情)으로는 형제(兄弟)이나 의(義)로는 부자(父子)의 관계를 겸하였는데, 병환중에 모시기를 잘하지 못하여 갑자기 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다시 무슨 말을 하겠는가? 기도는 비록 때가 지났으나 빨리 거행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고, 제관(祭官)이 미처 향(香)을 받지도 못하였는데 임금이 그만 속광(屬纊)243) 을 하였다. 세제(世弟)가 대비(大妃)에게 품지(稟旨)하여, 금평위(錦平尉) 박필성(朴弼成), 전성군(全城君) 이혼(李混), 여산군(礪山君) 이방(李枋), 도사(都事) 김후연(金後衍), 주부(主簿) 심유현(沈維賢)을 명소(命召)하여 유문(留門)244) 입시(入侍)하도록 하고, 또 예조 판서(禮曹判書) 이진검(李眞儉)으로 하여금 《오례의(五禮儀)》를 가지고 입시하도록 하였다. 그리고 승지(承旨) 박내정(朴乃貞)이 궁성(宮城)을 호위(扈衞)하도록 청하자 중전(中殿)이 이광좌에게 하교(下敎)하여 함원 부원군(咸原府院君) 어유귀(魚有龜)를 기복(起復)245) 하여 입시(入侍)하도록 하니, 이광좌가 대답하기를,
"국구(國舅)의 기복은 대신이 독단(獨斷)하여 할 수 없는 것이니, 동궁(東宮)의 영지(令旨)246) 를 취득함이 합당합니다."
하였다. 이에 중전(中殿)이 세제(世弟)에게 청하고, 세제는 내교(內敎)로써 승정원(承政院)에 영(令)을 내려 기복하도록 하였다. 그리고 세제가 예관(禮官)을 돌아보고 피발(被髮)247) 하는 것의 마땅함과 마땅하지 않음을 물어보면서 유신(儒臣)으로 하여금 옛일을 상고하여 의논을 정하도록 하였으며, 이광좌는 사관(史官)을 시켜 ‘상대점(上大漸)248) ’의 세 글자를 써서 외정(外庭)에 두루 보이도록 하고 곧 고복(皐復)249) 을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7책 15권 7장 B면【국편영인본】 41책 325면
- 【분류】과학(科學) / 왕실(王室) / 군사(軍事)
- [註 242]주원(厨院) : 사옹원(司饔院).
- [註 243]
속광(屬纊) : 임종(臨終) 때 솜을 코 밑에 대어 숨이 지지 않았나 알아보는 일. 전(轉)하여 임종(臨終), 임종 때.- [註 244]
유문(留門) : 궁문(宮門)을 열고 닫는 것은 정해진 시간이 있으나, 특별한 사정이 있을 때 그 열고 닫는 일을 유보하는 것을 말함.- [註 245]
기복(起復) : 상중(喪中)에 벼슬하지 않는 것이 관례이나, 국가의 필요에 의하여 상제의 몸으로 벼슬자리에 나오게 하는 일.- [註 246]
영지(令旨) : 왕세자의 명령서.- [註 247]
○甲午/雨雪。 上候困殆益甚, 脈低無力。 四更, 藥房入診, 進參茶, 退而請移直廚院, 巳刻復入診。 上自有疾以來, 諸臣問聖候, 上輒有酬答, 至是, 玉聲漸微。 都提調李光佐、提調李肇, 勸進粥飮, 皆不答, 世弟起而請之, 上始擧首進米飮。 提調等退與諸醫議藥, 李公胤揚言: "參茶不可用。 若進桂枝麻黃湯二貼, 泄瀉可立止。" 遂煎入進服。 酉刻醫官入診, 退言: "症候比朝益危急。" 諸臣疾趨入熙仁門, 自內促提調入診, 李光佐等入侍, 上倚內侍, 眼深視瞋。 光佐問候, 上不答, 世弟泣曰: "急用參附。" 光佐進參茶, 上再進服。 李公胤謂光佐曰: "毋多用參茶。 進吾藥而復進參茶, 則氣不能運旋也。" 世弟曰: "人固有立己見處, 此何等時, 必欲立己見, 使不得用參劑耶?" 少頃, 上眼視稍定, 鼻梁復溫。 世弟曰: "予不解醫理, 尙知參附能回陽矣。 昨日用參旋停, 想必以公胤言持難也。" 二更, 上氣息復微, 光佐進參茶, 上己不能飮, 醫官以匙灌之。 光佐請祈禱廟社, 仍涕泣言: "臣愚迷昧症候, 藥物多失宜, 罪當萬死。" 世弟曰: "聖上於余, 情是兄弟, 義兼父子, 侍疾無狀, 遽至於此, 更何言哉? 祈禱雖過時, 宜速擧行。" 祭官未及受香, 而上屬纊。 世弟稟大妃命, 召錦平尉 朴弼成、全城君 混、礪山君 枋、都事金後衍、主簿沈維賢, 留門入侍, 又令禮曹判書李眞儉, 持《五禮儀》入侍。 承旨朴乃貞, 請宮城扈衛。 中殿下敎光佐, 令咸原府院君 魚有龜, 起復入侍, 光佐對曰: "國舅起復, 非大臣可擅當, 取東宮令旨。" 中殿請于世弟, 世弟以內敎, 下令政院起復。 世弟顧禮官, 問被髮當否, 令儒臣, 考古事議定。 光佐令史官, 書上大漸字, 周視外庭, 乃皐復。
- 【태백산사고본】 7책 15권 7장 B면【국편영인본】 41책 325면
- 【분류】과학(科學) / 왕실(王室) / 군사(軍事)
- [註 2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