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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종실록 12권, 경종 3년 5월 16일 甲午 2번째기사 1723년 청 옹정(雍正) 1년

판돈녕 홍만조가 사묘에 제사할 것을 청하다

판돈녕(判敦寧) 홍만조(洪萬朝)가 상소(上疏)하였다. 그 대략에 이르기를,

"전하(殿下)께서 즉위하신 지 4년 동안 전에 없던 재앙이 해마다 나타나 경계를 보이니, 대개 아래에 있는 인사(人事)가 미진한 데가 있으면 위에 있는 하늘이 바로 재앙을 내리는 것입니다. 전하께서 능(陵)을 살피고 묘(廟)를 배알하시는 일 외에 문묘(文廟)나 진전(眞殿)206) 등에 헌작(獻酌)하는 예는 차례차례 몸소 행하셨으나, 오직 사묘(私廟)에만은 한 번도 임하지 않으셨습니다. 마땅히 행하여야 될 예(禮)를 빠뜨리고 행하지 않으니, 중외(中外)에 군정(群情)이 의아하게 여기지 않음이 없습니다. 인심(人心)을 저버리고 천의(天意)에 부합될 수 없는 법이니, 오늘의 재앙은 진실로 이상할 것이 없습니다. 옛날 우리 선조 대왕(宣祖大王)께서 대원군(大院君)의 묘(廟)에 몸소 제사지내시니, 그 당시 식자(識者)들이 말하기를, ‘오로지 정통(正統)만을 생각한다고 하여 어찌 사친(私親)에 대한 정(情)까지 끊을 수야 있겠는가?’ 하였는데, 이 말이 참으로 절실한 말입니다. 더욱이 상(喪)을 당하여 전곡(展哭)한 것은 곧 선대왕(先大王)께서 일찍이 허락하신 것입니다. 그런즉 오늘에 이르러서는 사체(事體)가 자별(自別)합니다. 사람들이 모두 이르기를, ‘전하께서 임어(臨御)하시던 초기에 즉시 사묘(私廟)에 배알할 것이라.’ 하였는데, 1년, 2년 시간이 지나 어느덧 오늘에 이르렀으니, 비단 구중(九重)에 계신 전하께서 사모하는 정을 펴지 못하였을 뿐 아니라, 저승에 계신 영혼께서도 틀림없이 전하의 행차를 버라는 정이 있을 것입니다. 오늘날 재앙을 그치게 하는 방책으로 신인(神人)을 위열(慰悅)하여 화기(和氣)를 이끌어 들이는 것보다 더 급한 것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신(臣)이 다른 말을 그만두고 이에 대해 간곡히 말씀드린 것이니, 청컨대 사묘(私廟)에 거둥하시어 온 나라 신서(臣庶)의 의혹을 풀어 주소서."

하니, 임금이 답하기를,

"상소의 내용이 합당하니, 그대로 시행하도록 하겠다."

하였다.

아! 홍만조(洪萬朝)는 직위가 1품에 이르고 나이가 80살이 지났는데, 다시 무엇을 더 바라 차마 이와 같이 아첨하는 태도를 짓는가? 이에 사묘(私廟)에 거둥하지 않은 것을 재앙을 불러들인 단서로 삼았으니, 그 혼모(昏耄)하고 무식함이 이 지경에 이르렀다. 이것만으로도 족히 그의 평생을 단정할 수 있다.


  • 【태백산사고본】 6책 12권 13장 A면【국편영인본】 41책 293면
  • 【분류】
    정론-정론(政論) / 과학-천기(天氣) / 풍속(風俗)

  • [註 206]
    진전(眞殿) : 선원전(璿源殿).

○判敦寧洪萬朝上疏。 略曰:

殿下卽阼四年之間, 極無之災, 逐年示警。 大抵在下之人事未盡, 則在上之天, 卽降之災。 殿下省陵謁廟之餘, 如文廟眞殿獻酌之禮, 次第躬行, 而獨於私廟, 尙靳一臨。 當行之禮, 闕而不行, 使中外群情, 莫不訝惑。 未有拂於人心, 而合於天意者, 則今日之災, 固無異也。 昔我宣祖大王, 親祭於大院君之廟。 其時識者之言以爲: "一意於正統, 豈可絶情於私親?" 此誠切至之語也。 況臨喪展哭, 卽先大王之所嘗許者, 則及至今日, 事體自別。 人皆謂殿下臨御之初, 卽謁私廟, 而一年二年, 荏苒至此, 不但九重之內, 孺慕莫伸, 重泉之下, 亦必有望幸之情矣。 今日弭災之策, 莫急於慰悅神人, 導迎和氣, 故臣除却他說, 惓惓於此。 請幸私廟, 以解一國臣庶之惑。

上答曰: "疏辭得宜, 可以依施焉。" 噫! 萬朝位至一品, 年過八十, 更有何望, 而忍爲此媚諂之態, 乃以不幸私廟, 爲召災之端? 其昏耄無識, 一至於此, 斯足以斷其平生也。


  • 【태백산사고본】 6책 12권 13장 A면【국편영인본】 41책 293면
  • 【분류】
    정론-정론(政論) / 과학-천기(天氣) / 풍속(風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