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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종실록 5권, 경종 1년 10월 13일 庚午 4번째기사 1721년 청 강희(康熙) 60년

시임·원임 대신 등을 불러 세제로 하여금 정사를 대행하게 할 것을 명하다

시임 대신(時任大臣)·원임 대신(原任大臣)과 2품 이상, 삼사(三司)를 불러 빈청(賓廳)에 모이라고 명하고, 임금이 비망기(備忘記)를 내리기를,

"나의 병근(病根)이 날로 점점 더하여 나을 기약이 없으니, 일찍 저사(儲嗣)를 정한 것은 실로 대리(代理)를 행하게 하려고 한 것이었으며, 이를 자성(慈聖)께 품(稟)한 지 오래 되었으나, 책례(冊禮)를 이제 막 거쳤기 때문에 실행하지 못하였다. 이제 여러 신하들이 나의 본의를 알지 못하고 대간의 상소로 인하여 나온 것처럼 여겨서 쟁론(爭論)이 분분하기 때문에 우선 환수하여 나의 뜻을 보이고, 조성복(趙聖復)의 망령되고 경솔한 죄를 다스린 것이다. 공사(公事)는 적체되고 수응(酬應)이 절박하니, 일체 그저께의 비망기에 의해 거행하여 조섭(調攝)하는 방도를 온전하게 하라."

하였다. 승정원 및 대신 2품 이상과 삼사(三司)의 여러 신하가 아울러 청대(請對)하였으나, 임금이 허락하지 아니하고 소회(所懷)를 글로 써서, 올리도록 명하였다. 대신 이하가 다시 거듭 청한 것이 세 번이었으나, 임금이 끝내 들어주지 아니하였다. 영의정 김창집(金昌集) 등이 아뢰기를,

"전하께서 새로 보위(寶位)에 오르셨고 춘추(春秋)가 한창이시니, 밤낮 부지런히 정신을 가다듬어 다스리기를 도모하심이 바로 전하께서 오늘날 힘쓸 바인데, 어찌하여 하루아침에 갑자기 이 한가로이 수양하시겠다는 하교를 내리십니까? 전하께서는 비록 병환이 오래 되어 수응(酬應)이 어렵다고 하교하시지만, 전하의 영예(英睿)하심으로 연습(鍊習)하고 재처(裁處)하시는 즈음에 어찌 어려운 일이 있겠습니까? 만약 신기(神氣)가 조금 피로할 때를 당하면 줄곧 근로하실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혹 편리한 대로 편하게 쉬시어 수양하는 방법으로 삼으신다면, 조금도 방해될 바가 없습니다. 전하께서는 어찌하여 이렇게 하지 않으시고 이런 예사롭지 않은 거조를 하시어 비자(丕子)487) 의 책임을 스스로 가볍게 여기시며, 억조(億兆)의 청을 억지로 거스른 채 돌아보지 않으십니까? 정유년488) 의 일은 지금과 아주 다릅니다. 선왕(先王)의 성후(聖候)가 위중하고 오래 되어 비록 부득이한 거조가 있었으나, 이것이 어찌 오늘날 비교할 바이겠습니까? 죽음이 있을 뿐이며 결단코 봉행(奉行)할 수 없습니다. 내리신 비망기를 삼가 작환(繳還)합니다."

하였으나, 임금이 답하기를,

"내 병은 전후의 비답(批答)에 이미 자세히 말하였다. 만약 지금 치료하지 아니한다면 진실로 말하기 어려운 근심이 있을 것이며, 또 대리(代理)는 바로 조종조(祖宗朝)의 고사(故事)인데 어찌하여 이 지경에 이르는가? 경 등은 나를 괴롭히지 말고 다시 번거롭게 아뢰지 말라."

하였다. 삼사(三司)에서 아뢰기를,

"전하께서는 춘추가 한창이시고 신기(神氣)가 왕성하십니다. 비록 병환 때문이라고 하교하시지만, 이미 드러난 증세가 없으니 마땅히 더욱 분려(奮勵)를 더하시고 지극한 다스림에 이르기를 기약하시어 선왕(先王)의 부탁하신 뜻에 저버림이 없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단지 편적(便適)한 방법만을 위하여 이런 정무를 놓을 생각을 가지시니, 신 등은 전대(前代)의 사첩(史牒)에서 일찍이 이런 일이 있었음을 실로 알지 못합니다. 엎드려 바라건대 성심(聖心)은 빨리 돌이켜 비망기를 도로 거두소서."

하였다. 여러 승지들 또한 두 차례 비망기를 도로 거둘 것은 계청(啓請)하였으나, 임금이 모두 ‘정신(廷臣)의 비답에 이미 유시하였다.’고 답하였다. 삼사와 승정원에서 재차 계달하였으나 역시 윤허하지 아니하였다. 대신 이하가 재차 아뢰었는데, 대략 이르기를,

"성상의 비답(批答) 가운데 조종조(祖宗朝)의 고사(故事)라는 것은 세종조(世宗朝)의 일을 가리키는 듯한데, 그때는 영묘(英廟)489) 께서 임어(臨御)하신 지 여러 해였고, 또 오래 된 병환이 있었으니, 문종(文宗)께서 저사(儲嗣)로서 서무(庶務)를 참결(參決)하신 것은 진실로 이에 말미암은 것입니다. 이것이 어찌 오늘의 일과 조금이라도 근사한 바가 있습니까?"

하니, 임금이 답하기를,

"병근(病根)이 내장(內臟)을 손상시키고 심화(心火)가 점점 불어나 화열(火熱)이 오르내리는 즈음에 정신이 아득하고 어두워 깨닫고 살피지 못하여 권태(倦怠)가 이와 같으니, 어찌 안타깝지 아니한가? 지금 국본(國本)은 이미 정해졌고 나의 화열은 점점 치료하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으니, 억지로 행하면 반드시 후회가 있을 것이며, 조섭하고 치료하는 데 뜻을 전적으로 기울이면 공무(公務)에 방해됨이 있을 것이다. 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세제(世弟)로 하여금 근심을 나누게 하는 것 외에 다시 다른 도리가 없다. 이는 내 한 몸을 아끼는 것만이 아니라, 바로 국가를 위하는 것이다. 경 등은 나를 사랑하여 생각해 보라."


  • 【태백산사고본】 3책 5권 8장 A면【국편영인본】 41책 178면
  • 【분류】
    왕실-국왕(國王)

  • [註 487]
    비자(丕子) : 천자(天子)나 왕(王)의 적장자(嫡長子).
  • [註 488]
    정유년 : 1717 숙종 43년.
  • [註 489]
    영묘(英廟) : 세종.

○命招時任ㆍ原任大臣、二品以上、三司, 會于賓廳, (上)〔下〕 備忘記曰:

予之病根, 日漸層加, 痊可無期, 早定儲嗣, 實欲代理, 以此稟于慈聖久矣, 冊禮纔過, 故未果。 今諸臣, 不知予本意, 有若因臺疏而發者, 爭論紛紜, 故姑爲收還, 以示予意, 以正趙聖復妄率之罪也。 公事積滯, 酬應切迫, 一依再昨備忘擧行, 以全調攝之道焉。

政院及大臣、二品以上、三司諸臣, 竝請對, 上不許, 命書進所懷。 大臣以下, 復申請者三, 上終不聽。 領議政金昌集等啓曰: "殿下新升寶位, 春秋鼎盛, 夙夜孜孜, 勵精圖治, 是殿下今日之所勉, 而何可一朝, 遽有此養閑之敎乎? 殿下雖以疾恙之久, 酬應之難爲敎, 以殿下之英睿, 鍊習裁處之際, 寧有難事? 若値神氣稍倦之時, 不必一向勤勞, 或隨便宴息, 以爲頣養之道, 少無所妨。 殿下, 何不出此, 而直爲此非常之擧, 自輕丕子之責, 强拂億兆之情, 而莫之顧乎? 丁酉之事, 與今絶異。 先王聖候沈綿, 雖有萬不獲已之擧, 此豈今日所比擬者乎? 有死而已, 決不敢奉行。 所下備忘, 謹此繳還。" 上答曰: "予病已悉於前後之批。 若不趁今治瘵, 實有難言之憂。 且代理, 乃是祖宗朝故事, 何以至此? 卿等毋以困我, 更勿煩瀆。" 三司啓曰: "殿下春秋鼎盛, 神氣方旺。 雖以疾患爲敎, 旣無形現之症, 政宜益加奮勵, 期恢至治, 以無負先大王負托之旨, 而只爲便適之道, 有此釋務之念, 臣等實未知前代史牒, 曾有如此事者也。 伏乞亟回聖心, 收還備忘。" 諸承旨亦啓請收還兩度備忘, 上竝答以已諭於廷臣之批。 三司、政院, 再啓亦不允。 大臣以下, 再啓略曰: "聖批中, 祖宗故事, 似指世宗朝事, 而其時英廟臨御多年, 且有宿患, 文宗以儲嗣, 參決庶務, 實由於此。 此豈一分近似於今日事乎?" 上答曰: "病根內傷, 心火滋漫, 火熱升降之際, 精神索漠, 昏不覺察。 倦怠若此, 豈不嗟惜? 今則國本已定, 予之火熱, 漸至難醫之境, 强而行之, 必有後悔, 專意調治, 則有妨公務。 到此地頭, 使世弟分憂之外, 更無他道。 此非特惜予一身也, 乃所以爲國家也。 卿等愛予而動念也。"


  • 【태백산사고본】 3책 5권 8장 A면【국편영인본】 41책 178면
  • 【분류】
    왕실-국왕(國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