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잉군을 궐내에 들어와 거처하게 하고 위호를 왕세제로 결정하다
예조에서 연잉군(延礽君)이 이미 저사(儲嗣)로 정해졌으니 그대로 사제(私第)에 거처함은 미안한 일이라 하여 빨리 대궐 안에 들어와 거처케 할 것을 청하고, 또 아뢰기를,
"연잉군은 윤서(倫序)로 말한다면 비록 아우이지만 자리로 말한다면 저사(儲嗣)가 되는데, 조종조의 고사(故事)를 보면 정종(定宗)께서 태종(太宗)을 책봉하여 세자(世子)라 하였으니, 어쩌면 제왕가(帝王家)에서는 계서(繼序)를 중히 여기고 윤서(倫序)는 도리어 경하게 여겨서 그렇게 한 것이겠습니까? 아니면 그때에 태조(太祖)께서 상왕위(上王位)에 계셨으니 임금의 자리가 눌림을 당한 처지라서 세자의 칭호에 무방해서 그렇게 한 것이겠습니까? 오늘날의 사세(事勢)는 그때와는 같지를 않고, 또 옛날부터 역대(歷代) 군주가 아우를 세워서 후사를 삼았을 때에는 모두 태제(太弟)로 봉하였으니, 지금 이 분의 명호(名號)도 세제(世弟)로 정하면 명의(名義)나 예절에 다 맞을 것 같습니다마는, 사체(事體)가 지중(至重)하니 대신에게 의논하여 처리하시기 바랍니다."
하니, 임금이 모두 그대로 따랐다. 영의정 김창집(金昌集)과 좌의정 이건명(李健命)이 말하기를,
"오늘날의 사세(事勢)는 정종(定宗) 때와는 다른 바가 있습니다. 이언적(李彦迪)이 인종(仁宗)께서 편치 못하실 때에 명종(明宗)은 대군(大君)으로 있었는데 세제(世弟)로 봉하여 국본(國本)으로 정하자는 의논을 한 일이 있습니다. 연잉군의 위호(位號)는 마땅히 왕세제(王世弟)로 정해야 할 것입니다."
하니, 임금이 김창집의 의논에 따라서 시행하라고 명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2책 4권 22장 B면【국편영인본】 41책 169면
- 【분류】왕실-종친(宗親)
○禮曹以延礽君旣定儲嗣, 仍處私第未安, 請亟命入處闕內, 又以爲: "延礽君, 以倫序言之, 雖是介弟, 以位言之, 乃是儲嗣, 而祖宗故事, 定宗冊太宗爲世子, 豈帝王家繼序爲重, 倫序反輕而然耶? 抑其時太祖在上王位, 至尊所壓, 無嫌於世子之稱而然歟? 今日事勢, 與此不同。 自古歷代人君, 立其弟爲後, 皆封太弟。 今玆名號, 定以世弟, 名義禮節, 皆似允合, 而事體至重, 請議于大臣稟處。" 上俱從之。 領議政金昌集、左議政李健命言: "今日事勢, 與定宗時有別。 李彦迪當仁宗違豫之時, 明宗方爲大君, 而有封爲世弟, 以定國本之議。 延礽君位號, 宜定爲王世弟。" 上命依昌集議施行。
- 【태백산사고본】 2책 4권 22장 B면【국편영인본】 41책 169면
- 【분류】왕실-종친(宗親)