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신과 비국의 신하들을 인견하여, 기청제 거행하는 일 등을 논의하다
대신(大臣)과 비국(備局)의 여러 신하들을 인견(引見)하였다. 형조 판서(刑曹判書) 민진후(閔鎭厚)가 아뢰기를,
"재계일(齋戒日)에는 으레 형벌을 금하게 되어 있어, 옥수(獄囚)의 판결이 많이 지체되는 것이 반드시 여기에서 말미암지 않음이 없습니다. 그리고 제사를 지내는 날에는 본조(本曹)의 죄인은 비록 형벌을 쓰더라도 계하(啓下)한 죄인은 형벌을 쓸 수 없으니, 대개 형벌을 쓰는 문서(文書)를 청재(淸齋)269) 하는 동안에는 들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제부터 이후로 제사를 지내는 날에 계하(啓下)한 죄인에게도 또한 형벌을 쓰고, 문서는 다음날 입계(入啓)한다면 아마도 크게 마땅하지 않게 되지는 않을 듯합니다."
하니, 임금이 옳게 여겼다. 좌의정(左議政) 이세백(李世白)이 기읍(畿邑) 각릉(各陵)의 봉심(奉審)270) 과 수리(修理) 때 지공(支供)하는 폐단을 충분히 아뢰고, 이제부터 이후로는 모두 선혜청(宣惠廳)에서 그 양식과 반찬값을 헤아려 주어, 각기 그 아문(衙門)의 하인(下人)으로 하여금 나가서 지공(支供)하게 하며, 역(驛)의 사람과 말[馬]에게도 양미(粮米)를 헤아려 주어서 각자 양식으로 삼게 하기를 청하니, 임금이 허가하였다. 집의(執義) 최중태(崔重泰)·사간(司諫) 윤홍리(尹弘离)·교리(校理) 이관명(李觀命)이, 이항(李杭)271) 의 집을 적몰(籍沒)하는 일을 가지고 윤허하여 따르신다는 뜻을 속히 내려 달라고 같은 말로 힘써 간(諫)하니, 임금이 여러 신하에게 두루 물었다. 대신(大臣)과 여러 재상(宰相)들이 모두 삼사(三司)의 청에 따르는 것이 마땅하다고 말하니, 임금이 이르기를,
"항(杭)의 죄악은 다시 말할 것도 없으나, 이전부터 죄인의 집을 적몰(籍沒)하는 등의 일은 더러 특교(特敎)에 의하여 거행하지 않기도 하였다. 이제 이번의 대계(臺啓)를 지금까지 윤허하여 따르지 않은 것은 다른 뜻이 있는 것이 아니다. 인조조(仁祖朝)와 장렬 왕후(莊烈王后)272) 께서 하사하여 준 물건이 없지 않은데, 모두 적몰하여 들인다면 일이 매우 적당하지 못하고, 또 왕자(王子)의 전택(田宅)을 뒤섞어 적몰하여 들이는 것도 매우 옳지 못하니, 이 두 가지 사실 때문에 이제까지 미루어 온 것이다."
하자, 모두 아뢰기를,
"왕자(王子)의 집에 하사하여 준 물건은 구별하여서 내어주고, 다만 그 자신의 물건만 몰수한다면, 공법(公法)과 사은(私恩)을 아울러 시행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당초에 미루었던 것은 대개 혼동(混同)되는 폐단이 있을까 염려한 것이니, 대계(臺啓)에 의거하여 적몰(籍沒)하되, 호조(戶曹)에 분부하여 구별해서 처리하게 하라."
하였다. 예조 판서(禮曹判書) 김진귀(金鎭龜)가 아뢰기를,
"장맛비가 지리하게 오는데 도무지 개일 기미가 없습니다. 앞으로 백성의 일이 더욱 몹시 염려스러우니, 마땅히 기청제(祈晴祭)를 거행하도록 하소서."
하니, 임금이 이를 윤허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43책 37권 6장 A면【국편영인본】 39책 690면
- 【분류】왕실-궁관(宮官) / 왕실-종친(宗親) / 사법-재판(裁判) / 사법-행형(行刑) / 재정-역(役) / 재정-상공(上供) / 사상-토속신앙(土俗信仰) / 과학-천기(天氣)
- [註 269]청재(淸齋) : 몸을 깨끗이 하여 재계함.
- [註 270]
봉심(奉審) : 왕명을 받들어 능소(陵所)나 묘우(廟宇)를 보살핌.- [註 271]
이항(李杭) : 동평군(東平君).- [註 272]
장렬 왕후(莊烈王后) : 인조(仁祖)의 계비(繼妃).○乙巳/引見大臣、備局諸臣。 刑曹判書閔鎭厚曰: "齋戒日, 例爲禁刑, 獄囚之多滯, 未必不由於此, 而至於行祭日, 則本曹罪人雖用刑, 而啓下罪人, 不得用刑, 蓋用刑文書, 不得入於淸齋之中故也。 今後行祭日, 啓下罪人, 亦爲用刑, 而文書則翌日入啓, 恐不至大段未安。" 上可之。 左議政李世白, 極陳畿邑各陵奉審及修理時支供之弊, 請自今後, 竝自宣惠廳, 量給其糧饌價, 各使其衙門下人, 出往支供, 驛人馬亦爲計給糧米, 使之各自爲食, 上許之。 執義崔重泰、司諫尹弘离、校理李觀命, 以杭家籍沒事, 亟賜允從之意, 一辭力爭, 上歷問諸臣。 大臣、諸宰皆言宜從三司之請, 上曰: "杭之罪惡, 更無可言, 而自前罪人家籍沒等事, 或因特敎, 不爲擧行。 今此臺啓之尙不允從者, 非有他意也。 仁祖朝及莊烈王后, 不無賜與之物, 竝爲沒入, 事極未安, 且王子田宅, 混歸籍入, 亦甚不可。 以此二款, 尙此持難矣。" 僉曰: "王子家賜與之物, 區別出給, 而只沒其自己之物, 則公法、私恩, 可以竝行。" 上曰: "當初持難, 蓋慮有混同之弊也, 依臺啓籍沒, 而分付戶曹, 區別處之。" 禮曹判書金鎭龜言: "潦雨支離, 頓無開霽之意。 前頭民事, 尤極可慮, 宜行祈晴祭。" 上允之。
- 【태백산사고본】 43책 37권 6장 A면【국편영인본】 39책 690면
- 【분류】왕실-궁관(宮官) / 왕실-종친(宗親) / 사법-재판(裁判) / 사법-행형(行刑) / 재정-역(役) / 재정-상공(上供) / 사상-토속신앙(土俗信仰) / 과학-천기(天氣)
- [註 2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