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종실록 33권, 숙종 25년 윤7월 29일 乙丑 1번째기사
1699년 청 강희(康熙) 38년
병을 치료하기 위해 시체의 살점을 베어 먹은 김사현을 부대시 처참에 처하다
대신(大臣)과 비국(備局)의 제신(諸臣)을 인견하였다. 이에 앞서 평안도(平安道) 곽산(郭山) 사람인 김사현(金士見)이란 자가 병을 치료하기 위하여 장사(葬死)지낸 시체를 발굴하여 그 살점을 베어 내어 먹었는데, 그만 일이 발각되어 자복(自服)하니, 감사(監司)가 사유를 갖추어 아뢰었다. 이때에 와서 형조 판서(刑曹判書) 김구(金構)가 법률에 정해진 조문이 없다는 것으로 재처(裁處)하기를 품청(稟請)하니, 임금이 대신들에게 의논하라고 명하였다. 어떤 사람은 마땅히 강도율(强盜律)을 적용시켜야 된다고 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관(棺)을 열고 시체를 본 율(律)을 적용해야 된다고 하기도 하였다. 우의정(右議政) 이세백(李世白)이 의논하기를,
"관(棺)을 열고 본 것도 이것이 교죄(絞罪)에 해당되는데, 이는 너무 가볍습니다. 가장인(架葬人)의 의복을 벗겨도 오히려 부대시 처참(不待時處斬)147) 하는 법인데, 시체의 살점을 베어 내어 먹었으니, 어찌 더 무겁게 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의당 부대시의 율(律)을 시행해야 됩니다.
하니, 임금이 이 의논에 따라 시행하라고 명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36책 33권 34장 A면【국편영인본】 39책 538면
- 【분류】사법-행형(行刑)
- [註 147]부대시 처참(不待時處斬) : 시기를 기다리지 않고 참형(斬刑)에 처함. 사형을 집행할 때 가을철 추분(秋分)까지 기다리는 것이 상례이나, 십악 대죄(十惡大罪) 등 중죄(重罪)를 범한 죄인은 이에 구애받지 않고 사형을 집행하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