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전의 임무를 완수하지 못한 주청사 서문중 등을 삭탈 관작하도록 명하다
주청사(奏請使)로 갔다가 되돌아오는 서문중(徐文重)·이동욱(李東郁) 등이 선래(先來)를 통해 장계(狀啓)하였는데, 그 대략에 이르기를,
"당초 의논을 아뢰어 칙지를 내리도록 한 뒤에 서반(序班)의 무리가 《회전(會典)》 중 번왕 봉전(藩王封典) 한 조목을 베껴서 보이므로, 2천 금(金)을 주기로 약속하고 서반으로 하여금 기초(起草)하는 여러 낭중(郞中)에게 힘써 부탁하도록 했습니다. 2월 초7일에 상(賞)을 받으러 대궐에 나아가니, 예부 낭중(禮部郞中)이 역관(譯官)을 불러 조그마한 종이에다 써서 주며 국왕(國王)과 왕비(王妃)의 연세(年歲)를 신 등에게 물었으나, 신 등이 이것은 사신이 감히 아뢸 바가 아니라고 여기고, 낭중을 찾아가서 보고 그의 의도를 탐지하여 보니, 다시 수작(酬酌)을 하지 않고 바로 일어나 가버리므로, 신 등이 매우 놀라고 염려하였습니다.
그래서 하마연(下馬宴) 때에 좌시랑(佐侍朗) 왕택홍(王澤弘)에게 말을 전하기를, ‘우리들이 국왕(國王)의 명을 받들고 들어와서 관(館)에 머문 지 40일이 되었는데, 문서를 아직까지 합당하게 종결짓지 못했으니, 원하건대 가엾게 여겨 주시오.’ 하였더니, 곧 본부(本部)에서 마땅히 제왕(諸王)의 예(例)로 회제(回題)089) 할 것이기에 황제(皇帝)의 처분만 기다리고 있다고 답하였습니다. 신 등이 창황(蒼黃)히 되돌아와서 통관(通官)의 무리로 하여금 힘써 제독(提督)에게 청하게 하여 청(淸)나라 상서(尙書) 불륜(佛倫)에게 가서 도모하도록 하고, 6천 금(金)을 주기로 약속하니, 제독이 돌아와 말하기를, ‘불야(佛爺)090) 가 이 일은 분명하게 전례(典例)가 있으므로 감히 좌우(左右)할 수 없다고 하였다.’고 하므로, 신 등이 어떻게 할 계책이 없어 정문(呈文)을 구상해 내어 외국(外國)은 내복(內服)091) 과 같지 않으며 선조(先朝)에서 이미 시행했던 전례(典例)를 지금 와서 청함을 인준하지 않아 군신(君臣)이 결망(缺望)하는 뜻을 진달할 방법이 없음을 갖추어 진술하였습니다.
그리고 상마연(上馬宴) 때에 왕택홍(王澤弘)이 또 와서 참석하므로, 신 등이 직접 정문(呈文)을 바쳤더니, 왕택홍이 말하기를, ‘나 혼자서 받기 어려우니 상마연(上馬宴)이 지난 뒤에 제독(提督)에게 바쳐서 제당(諸堂)에 회시(回示)하도록 하라.’ 하였으나, 잔치가 끝난 뒤에 제독이 또 거절하면서 받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뇌물을 허락한 뒤에야 비로소 억지로 일어났으며, 이튿날 조회(朝會)에 가지고 가서 제당(諸堂)에 보이니, 답하기를, ‘이미 제왕(諸王)의 예(例)를 인용하여 들어가 아뢰었으니, 칙지(勅旨)를 받아 다시 의논해야만 시행할 수 있을 것이다.’ 하였습니다.
그리고 본부(本部)에서의 회제(回題)도 과연 《회전(會典)》 제왕조(諸王條)의 사례로 결론을 지어 초10일에 황제의 처소로 보내었는데, 14일에 의논한 대로 칙지를 내렸으므로, 신 등이 놀라고 두려워하여 허둥지둥 전후(前後)의 책봉을 받은 사연(辭緣)과 외국의 저이(儲貳)092) 는 일찍이 정하여 온 나라의 소망을 묶어 두지 않을 수 없다는 뜻을 갖추어 다시 정문(呈文)을 만들어 제독에게 강력하게 청하면서 인하여 말하기를, ‘사신이 이미 일을 완수하지 못했으니 아무리 여러 날이 지나간다 하더라도 결코 감히 되돌아 갈 수 없다.’고 하면서 서로 다툰 지 3일 만에야 비로소 가지고 조당(朝堂)에 가니, 상서(尙書) 불륜(佛倫)이 다른 대관(大官) 몇 사람과 함께 보고 답하기를, ‘본부(本部)에서 전례를 인용하여 회제(回題)하였고, 황제가 이미 의논대로 칙지를 내렸으므로, 결단코 다시 아뢸 방법이 없다. 본국(本國)에서 이러한 말을 아뢰고 다시 청할 것 같으면 우리들이 어찌 이루어지도록 도와서 도모하지 않겠는가?’ 하였습니다. 여러 의논이 이와 같으니, 뒷날 다시 청하면 저지하는 바가 없을 듯합니다. 그리고 그들이 인용한 명조 조훈(明朝祖訓)과 내번례감정(內藩例勘定)은 모두 천만 뜻밖이었습니다. 신 등이 사명을 받든 것이 무상(無狀)하여 일에 따라 주선을 잘하지 못했습니다. 봉전(封典)은 중대한 일인데, 끝내 완전하게 인준을 받지 못했으니, 땅에 엎드려 황공스럽게 여기며 만번 죽어도 속죄하기 어렵습니다."
하니, 임금이 비망기(備忘記)를 내리기를,
"주청사(奏請使)의 장계(狀啓)와 예부 자문(禮部咨文)의 등본(謄本)을 보건대, 주장하던 일을 주청하여 인준을 받지 못했으니, 실로 너무나 생각이 미치지 못한 바로 놀라움을 깨닫지 못하겠다. 피인(彼人)093) 이 인용한 《회전(會典)》에 왕(王)과 비(妃)의 나이 50세가 되고서도 적자(嫡子)가 없으면 비로소 서장자(庶長子)를 세워 왕세자(王世子)를 삼는다고 하는 등의 말은 너무나 이치에 맞지 않고 근거도 없으므로, 사신이 된 자가 당연히 머리가 부서지도록 죽을 힘을 다해 다투어야 할 것인데, 그렇게 하지 않고 몇 차례 다투며 고집하다가 그대로 돌아왔으니, 지금 만약 다시 사신을 보내어 허락하지 않는다면 또 장차 이와 같이 되돌아올 것인가? 군부(君父)를 욕되게 한 것이 심하다. 정사(正使) 서문중(徐文重), 부사(副使) 이동욱(李東郁), 서장관(書狀官) 김홍정(金弘楨)은 모두 삭탈 관작(削奪官爵)하여 문외 출송(門外黜送)하도록 하고, 주청사로 대신(大臣)을 의망(擬望)하여 들여보내고 다음달에 표문(表文)에 배례(拜禮)하는 자료로 삼도록 하라."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33책 31권 13장 B면【국편영인본】 39책 451면
- 【분류】왕실-비빈(妃嬪) / 왕실-종친(宗親) / 인사-임면(任免) / 사법-탄핵(彈劾) / 사법-행형(行刑) / 외교-야(野)
- [註 089]회제(回題) : 아뢴 내용에 대한 회답.
- [註 090]
불야(佛爺) : 불륜(佛倫)을 가리킴.- [註 091]
내복(內服) : 순(舜)임금 때의 제도로, 왕기(王畿) 밖 5백 리마다 차례로 전복(甸服)·후복(侯服)·수복(綏服)·요복(要服)·황복(荒服) 등 다섯 구역으로 나눈 가운데 요복(要服) 안에 해당되는 지역을 말함. 우리 나라가 이 구역에 해당되므로, 여기에서는 우리 나라를 가리키는 말임.- [註 092]
저이(儲貳) : 왕세자.- [註 093]
피인(彼人) : 청나라 사람을 가리킴.當初奏議旨下之後, 序班輩謄示會典中藩王封典一款, 故約賂二千金, 使序班力圖於起草諸郞中矣。 二月初七日, 以領賞赴闕, 則禮部郞中招譯官, 書給小紙, 問國王、王妃年歲於臣等, 臣等以爲此非使臣所敢告。 往見郞中, 以探其意, 則不復酬酢, 徑起而去, 臣等意甚驚慮。 下馬宴時, 送言於左侍郞王澤弘曰: "俺等奉國王命入來, 留館四十日, 文書尙未了當, 願蒙軫恤。", 則以本部當以諸王例回題, 惟俟皇帝處分爲答。 臣等蒼黃還歸, 使通官輩, 力乞於提督, 往圖淸尙書佛倫, 約賂六千金, 則提督還言: "佛爺以爲此事明有典例, 不敢左右。" 云。 臣等計沒奈何, 構出呈文, 備陳外國與內服不同, 先朝已行之典, 今不準請君臣缺望之意, 而無路自達矣。 上馬宴時, 王澤弘又爲來參, 故臣等親納呈文, 則澤弘以爲: "俺難獨受, 過宴後呈於提督, 回示諸堂。" 云, 罷宴後, 提督又拒而不受。 許賂之後, 始爲强起, 翌日朝會, 持示諸堂, 則答以旣引諸王例入奏, 得旨再議, 可得見施云。 本部回題, 果以《會典》諸王條例爲結語, 初十日送皇帝所, 十四日以依議旨下。 臣等驚惶錯愕, 備將前後受封辭緣及外國儲貳不得不早定, 以係望一國之意, 更構呈文, 强請於提督, 仍言: "使臣旣不得完事, 雖過累日, 決不敢回還。" 相爭三日, 始爲持去朝堂, 則尙書佛倫與他大官數人共覽, 答以: "本部援例回題, 皇帝旣以依議旨下, 斷無更奏之路。 本國若以此等措語, 奏聞再請, 則俺等豈不贊圖得成乎?" 云。 諸議如此, 日後更請, 似無所阻。 其所引明朝祖訓及內藩例勘定, 俱是千萬意外。 臣等奉使無狀, 不能隨事周旋。 封典重事, 終未完準, 伏地惶恐, 萬殞難贖。
上下備忘記曰:
卽見奏請使狀啓、禮部咨文謄本, 所幹之事不得准請, 實是萬萬意慮之所不到, 不覺驚惋也。 彼人所引《會典》, 王與妃五十無嫡子, 始立庶長子爲王世子等語, 極其無理無據。 爲使臣者, 所當碎首以死力爭, 而不此之爲, 數次爭執, 仍爲回程。 今若更遣使臣不許, 則又將如此而歸而已耶? 其辱君父甚矣。 正使徐文重、副使李東郁、書狀官金弘楨竝削奪官爵, 門外黜送, 奏請使以大臣, 卽爲擬入, 以爲趁開月拜表之地。
- 【태백산사고본】 33책 31권 13장 B면【국편영인본】 39책 451면
- 【분류】왕실-비빈(妃嬪) / 왕실-종친(宗親) / 인사-임면(任免) / 사법-탄핵(彈劾) / 사법-행형(行刑) / 외교-야(野)
- [註 0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