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인 권대운·권처경·정유악·신학 등의 석방을 논하다
대신과 의금부(義禁府)·형조(刑曹)의 당상관(堂上官)을 인견(引見)하고, 죄인을 소결(疏決)하였다. 영의정 남구만(南九萬)·좌의정 유상운(柳尙運)·우의정 신익상(申翼相)이 모두 말하기를,
"안치(安置)한 죄인 권대운(權大運)은 나이가 80이 넘었고, 또 그 심사(心事)가 참혹한 지경에 이르지는 않으니, 마땅히 석방시켜야 합니다."
하니, 임금이 그대로 따랐다. 승지 김성적(金盛迪)과 삼사(三司)의 여러 신하들이 모두 힘껏 간(諫)하였지만, 소용이 없었다. 대사헌 박태상(朴泰尙)은 말하기를,
"법(法)을 준수(遵守)하는 의론은 진실로 마땅히 이와 같아야 하겠지만, 성상께서 특별히 참작(參酌)하시었으니, 또한 그것이 해로움이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였다. 김성적이 반박하기를,
"헌관(憲官)이 어찌 감히 특별한 은혜를 말할 수 있겠습니까?"
하니, 박태상이 인피(引避)하였다. 임금이 ‘퇴대(退待)하지 말라.’고 명하니, 박태상이 도로 좌석으로 나아갔다. 먼 곳에 유배시킨 죄인 권처경(權處經)과 안치(安置)한 죄인 정유악(鄭維岳)을 모두 석방시켜 보냈다. 권처경의 경우는 박태상이 그 의론을 주장하고 남구만이 찬동하였으며, 정유악의 경우는 남구만과 유상운이 모두 노모(老母)가 있다고 하여 관대히 처결해 주기를 청하였는데, 윤지선(尹趾善)과 김성적 등은 역시 반대하였으나, 박태상은 유독 찬성하였다. 남구만과 신익상은 말하기를,
"신학(申㶅)·권유(權愈)·이수징(李壽徵)의 옥사(獄事)를 번복시킨 죄는 비록 무겁지만, 그들은 추종하여 참여한 자들이니 참작하는 것이 옳습니다."
하자, 임금이 석방시키려 하였는데, 여러 신하들이 대체로 완전히 석방시킬 수는 없는 일이라고 하니, 임금이 형벌(刑罰)을 감하여 양이(量移)150) 할 것을 명하였다. 남구만과 유상운이 또 석방된 사람이 적어서 일이 매몰(埋沒)될 소지가 있다 하여 민취도(閔就道)를 석방시킬 것을 청하니, 임금이 감등(減等)할 것을 명하였다. 환관(宦官) 문철(文撤)은 이세화(李世華)의 말에 따라서 역시 감등시킬 것을 명하였다. 임금이 한중혁(韓重赫)·최격(崔格)·이시회(李時檜) 등을 작처(酌處)하려고 하여 대신들에게 물으니, 이세화는 역시 찬성하였으나, 남구만·신익상·윤지선 등은 극력 불가하다고 말하였고, 김정태(金鼎台)·윤정화(尹鼎和)·조식(趙湜)에 대해서는 남구만과 유상운이 모두 석방을 청하였으나, 신익상·이세화·김성적 등이 또 어렵게 여기니, 임금이 모두 종전대로 둘 것을 명하였다. 형조(刑曹)의 죄인으로서 석방된 사람이 백여 명이나 되었는데, 흉악한 상소를 올린 사람 안전(安𤩴)·이준(李濬)과 노비(奴婢)로서 주인을 배반한 무리가 모두 사면되는 은택을 입었으나, 더러는 죄상이 가벼운데도 용서받지 못한 경우도 있었다. 그 이튿날 유상운이 상소하기를,
"물러가서 안전(安𤩴)의 상소를 살펴보니, 정인(正人)을 욕한 말은 이현령(李玄齡)의 비교가 아니고, 남의 재난(災難)을 기뻐하는 마음은 유위한(柳緯漢)에 비하여 더함이 있으니, 경솔히 석방을 의논할 수는 없습니다."
하니, 임금이 석방 명령을 환수(還收)하라고 명하였다. 유상운이 말하기를,
"외방(外方)의 이졸(吏卒)로서 적당(賊黨)과 서로 내통하여 기밀(機密)을 누설한 자를 도배(徒配)시키는 정도로 처벌하는 것은 너무 관대한 잘못이 있습니다. 이 다음부터는 마땅히 군사 기밀을 누설한 경우에 해당하는 율(律)로 다스려야 합니다."
하니, 임금이 허가하였다. 사헌부(司憲府)에서 권대운(權大運)을 전리(田里)로 방귀(放歸)하라는 명을 환수(還收)할 것을 계청(啓請)하였으나, 임금이 또한 윤허하지 않았다.
사신(史臣)은 말한다."소결(疏決)은 장차 원통하고 억울한 사람을 풀어주어 화기(和氣)를 인도해 맞이하려는 것이니, 대죄(大罪)를 사면하여 천심(天心)을 감동시킬 수 있다는 말은 듣지 못하였다. 권대운은 바로 반일(半日) 동안 정청(庭請)한 수상(首相)인데, ‘이 사람은 연로(年老)하므로, 석방시켜야 한다.’ 하고, 정유악(鄭維岳)은 간사한 짓을 반복해서 한 요망한 사람인데, ‘이 사람은 노모(老母)가 있으므로, 석방시켜야 된다.’고 하며, 권처경(權處經)은 임금을 침범하는 부도(不道)한 말을 발설하였는데, 그에 대해서는, ‘언어(言語)를 가지고 사람을 처벌할 수는 없다.’고 하고, 민취도(閔就道)는 부녀자와 어린아이를 귀양보낼 것을 거론하였는데, 그에 대해서는 ‘오늘 석방되는 사람이 적으니, 참작해 주는 것이 좋겠다.’고 하였다. 진실로 이와 같이 한다면 어떤 사람을 처벌할 수 있으며, 어떤 죄는 원통하지 않겠는가? 이렇게 하여 재앙을 방지하고 하늘을 감동시키고자 한다면, 또한 잘못된 것이 아니겠는가?".
- 【태백산사고본】 30책 28권 23장 A면【국편영인본】 39책 376면
- 【분류】정론-간쟁(諫諍) / 사법-행형(行刑) / 역사-사학(史學)
- [註 150]양이(量移) : 멀리 유배(流配)된 사람의 죄를 감등(減等)하여 가까운 곳으로 옮기는 일.
○朔壬戌/引見大臣及禁府、刑曹堂上, 疏決罪人。 領議政南九萬、左議政柳尙運、右議政申翼相皆言: "安置罪人權大運, 年踰八十, 且其心事不至慘刻, 宜放之。" 上從之。 承旨金盛迪及三司諸臣, 皆力爭而不能得。 大司憲朴泰尙曰: "執法之論, 固宜如此, 而自上特爲參酌, 亦未知其有害也。" 盛迪駁之曰: "憲官何敢以特恩爲言乎?" 泰尙引避。 上命勿退待, 泰尙還就座。 遠竄罪人權處經、安置罪人鄭維岳, 竝放送。 處經則泰尙主其議, 九萬贊之, 維岳則九萬、尙運皆以爲, 有老母而請寬貰, 尹趾善及盛迪等亦爭之, 泰尙獨贊成之。 九萬、翼相曰: "申㶅、權愈、李壽徵, 翻獄之罪雖重, 而乃隨參者也, 參酌可矣。" 上欲放之, 諸臣多言不可全釋, 上命減等量移。 九萬、尙運, 又以見釋者少, 事涉埋沒, 請放閔就道, 上命減等。 宦官文撤則因李世華言, 亦命減等。 上欲酌處韓重爀、崔格、李時檜等, 詢于大臣, 世華亦贊之, 九萬、翼相、趾善等, 力言其不可, 金鼎台、尹鼎和、趙湜, 則九萬、尙運皆請放, 而翼相、世華、盛迪等又難之, 上竝命仍之。 刑曹罪人, 蒙放者百餘人, 凶疏人安𤩴、李濬、奴婢粄主之輩, 皆蒙霈澤, 或有罪輕而未見原者矣。 翌日尙運疏言: "退見𤩴疏, 則醜正之語, 非李玄齡之比, 樂禍之心, 比柳緯漢而有加, 不可輕議放釋。" 上命還收放釋之命。 尙運曰: "外方吏卒之交通賊黨, 漏泄機密者, 律以徒配者, 失之太寬。 今後則宜施以漏泄軍機之律。" 上許之。 憲府啓請還收大運放歸田里之命, 上亦不允。
【史臣曰: "疏決者, 將以解釋冤鬱, 導迎和氣也, 未聞赦大罪而可以感天心也。 大運卽半日庭請之首相, 而曰此人年老可放; 維岳奸回反復之妖人, 而曰此人有老母可放; 權處經發犯上不道之語, 則曰不可以言語罪人; 閔就道論竄婦女稚兒, 則曰今日見釋者少, 參酌爲可。 苟如是則何人可罪, 何罪不冤? 欲求其弭災格天, 不亦左乎?】
- 【태백산사고본】 30책 28권 23장 A면【국편영인본】 39책 376면
- 【분류】정론-간쟁(諫諍) / 사법-행형(行刑) / 역사-사학(史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