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의정 김수항이 근일 내린 전교의 취지가 지나치다고 말하다
영의정 김수항(金壽恒)이 입대(入對)를 청하여, 근일 내린 전교의 취지가 너무 지나침을 극력 아뢰니, 임금이 말하기를,
"마침 성난 때를 당하여 자신도 모르게 말이 지나쳤다. 대신의 말이 옳으니, 지나친 말들은 모두 마땅히 고치도록 하라."
하였다. 김수항이 아뢰기를,
"외척을 억제하라는 것은 본디 사론(士論)이오나, 경신(敬愼)으로서 자신을 지키는 자가 있을 것 같으면 당연히 의뢰도 하고 중하게 대하여야 합니다. 이를테면 심연원(沈連源)·심의겸(沈義謙)·박응남(朴應南) 등이 바로 그러한 사람입니다. 외척이라 하더라도 마땅히 그 사람의 현부(賢否)와 일의 시비(是非)를 보아야 할 것입니다. 경신 출척(庚申黜斥) 이후로 일종의 논의가 훈척(勳戚)과는 같이 일할 수 없다고 하였는데, 이 말이 청론(淸論)인 듯하기 때문에 젊은이들의 논의가 대개 이와 같았습니다. 이번 이징명(李徵明)의 상소(上疏)는 참으로 경솔하지만, 만약 그 말이 외척과 연관된다 하여 죄를 준다면 소문이 좋지 못할 것입니다."
하고, 또 효종께서 노하셨을 적에는 일을 접어두고 다시 생각하지 않다가 밤에 생각을 해서 퍽 평온한 전교를 얻었다는 것과 ‘마땅히 할 일이면 즉시 하여야지 어찌 뒷날을 기다릴 것인가?’ 하며 즉시 김홍욱(金弘郁)의 관작을 복직케 한 두 가지 일을 들어 마땅히 본받아야 할 것이라고 하자, 임금이 유의하겠다 답하였다. 김수항이 또 아뢰기를,
"신이 들은즉 전하께서 옥당(玉堂)200) 에서 입대를 청하였을 적에 ‘심지어 임금은 약하고 신하가 강하다.’는 말을 거론하셨다고 하니, 더욱 놀랍고 두렵습니다. 지난날 어느 한쪽 사람들이 이런 제목을 가지고 송시열(宋時烈) 이하 여러 사람의 죄를 구성하였던 것을 성상의 통찰과 보호에 힘입어 보전할 수 있었는데, 그렇지 않았다면 살아남은 자가 없었을 것입니다. 만약 성상께서 혹시라도 이 말을 그렇게 여기신다면 이는 뭇신하의 죄는 죽어도 그 책임을 면하기에 부족할 것입니다. 신이 이 하교를 들은 뒤로 밤에 잠을 이루지 못하였는데, 만약 불만을 품은 사람들이 이로 인하여 조정 신하들의 죄를 구성한다면 뭇신하들이 어찌 감히 하늘과 땅 사이에 자립할 수 있겠습니까?"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신하에게 참으로 그 죄가 있다면 죄를 줄 일이지, 어찌 숨기고 참으면서 서로 의심할 리가 있겠는가? 칠정(七情) 중에서 쉽게 발동하고 제재하기 어려운 것이 오직 노여움이다. 내가 성미가 급하여서 자신도 모르게 이런 말을 하였으나, 추후해서 생각하고 그 말의 지나침을 매우 후회하였으니, 《일기(日記)》201) 에는 쓰지 말도록 하라."
하였다. 김수항이 이에 가마를 불사른 일을 가지고 아뢰기를,
"그 가마가 이미 대왕 대비전의 어좌(御坐)를 위하여 만들어졌다면, 그 조작된 말이 망칙하다 하여 불사르라고 명하기까지 하신 일은 매우 미안합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외간에서는 숙의(淑儀)를 태우기 위하여 제조하였다는 말이 자자하다고 하는데, 어찌 숙의를 태우기 위하여 주홍색의 가마를 제조할 리가 있겠는가? 그런데도 사람들의 말이 이와 같으니, 어찌 마음 아프지 않겠는가? 오늘날 만약 그 가마를 그대로 두었더라면 와전된 말이 앞으로도 그치지 않을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특별히 불사르라고 명한 것이다."
하였다. 김수항이 이어 궁금(宮禁)을 엄히 할 방도를 개진하였는데, 임금이 받아들였다. 김수항이 창성 부사(昌城府使) 정덕겸(鄭德謙)이 일찍이 탐욕(貪慾)으로 해서 사형을 감하여 유배를 정하였는데 개차(改差)할 것을 청하니, 임금이 개차를 명하고, 이어 이 뒤로는 장오죄(贓汚罪)를 범한 자는 혹 사면으로 해서 용서를 받더라도 벼슬길을 터 주지 않는 것으로 법식을 정하여 시행하라고 명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9책 17권 31장 A면【국편영인본】 39책 72면
- 【분류】왕실-비빈(妃嬪) / 왕실-경연(經筵) / 인사-임면(任免) / 인사-관리(管理) / 사법-탄핵(彈劾) / 교통-육운(陸運) / 역사-전사(前史)
○壬辰/領議政金壽恒請對, 極言近日辭旨之過當。 上曰: "適直怒時, 不覺辭氣之過, 大臣言是, 過當措語竝改。" 壽恒言: "裁抑外戚, 固士論, 而如有敬愼自持者, 當倚重, 如沈連源 沈義謙 朴應男是已, 雖是外戚, 當觀其人之賢否, 事之是非矣。 庚申後一種論議, 以爲不可與勳戚同事, 此言有似淸論, 故年少之論, 多如此, 今徵明疏誠妄率, 而若以言涉戚里罪之, 則聽聞不美矣。 且擧孝廟怒時, 打疊其事, 不復措意, 夜間思之, 頗得其平之敎及當爲卽爲, 何待後日? 卽命復金弘郁官爵二事, 以爲當法。" 上答以留意。 壽恒曰: "臣聞殿下於玉堂請對時, 至擧主弱臣强之說云。 尤可驚怖, 向時一番人, 以此題目, 構成宋時烈以下之罪, 賴聖上照燭扶持, 得以保全, 不然則無類矣。 若自上或以此言爲然, 則是群下之罪, 死不足塞責, 臣自聞此敎之後, 夜不能寐, 若有不逞之人, 因此構成朝臣之罪, 則群下豈敢自立於覆載間哉?" 上曰: "臣下苟有其罪則罪之, 豈有隱忍不發, 相與疑阻之理乎? 七情之中, 易發難制, 惟怒爲甚, 予性急不自覺其如此, 追後思之, 甚悔其言之過當, 其勿書於日記。" 壽恒仍言焚轎之事曰: "其轎旣爲大王大妃殿御坐而造作, 則因其造言之無狀, 而至於命焚, 事甚未安。" 上曰: "外間以爲, 爲淑儀所乘而造之, 傳說藉藉云, 豈有爲淑儀所乘而造成朱紅轎子之理, 而人言如此, 豈不痛哉? 今若仍存其轎, 則訛言將不止, 故特令焚之矣。" 壽恒仍陳嚴宮禁之道。 上納之。 壽恒以昌城府使鄭德謙, 曾以貪婪, 減死定配, 請改差。 上命改差, 仍命此後罪犯贓汚者, 雖或因赦蒙宥, 勿通仕路事, 定式施行。
- 【태백산사고본】 19책 17권 31장 A면【국편영인본】 39책 72면
- 【분류】왕실-비빈(妃嬪) / 왕실-경연(經筵) / 인사-임면(任免) / 인사-관리(管理) / 사법-탄핵(彈劾) / 교통-육운(陸運) / 역사-전사(前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