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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종실록 17권, 숙종 12년 2월 29일 癸丑 1번째기사 1686년 청 강희(康熙) 25년

교리 서종태가 시폐 9조를 작성하여 상소하다

교리 서종태(徐宗泰)가 상소(上疏)하여 진학(進學)과 입지(立志)로써 누누이 진계(陳戒)하고, 이어 시폐(時弊) 9조를 열거하기를,

"1. 내치(內治)를 엄숙히 하여 궁금(宮禁)을 단속하는 일입니다. 가만히 듣건대, 근일 항간의 말이 궁중에 흘러들지 않은 것이 없다 하니, 바깥에서 한 말이 이미 들어갔다면 안에서 한 말이 어떻게 전파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일찍이 보건대, 설어(暬御)·근습(近習)의 무리들이 모시면서 받들어 인도할 즈음에 엄숙하고도 공경하는 태도가 퍽 휴손되어 있고, 전하의 너그러운 표정 또한 너무 관용하시는 듯합니다. 은총의 길을 열어 업신여김을 당하는 조짐은 깊이 막지 않을 수 없습니다.

1. 치체(治體)를 세워서 통기(統紀)054) 를 밝히는 일입니다. 오늘날 궁중과 관부의 안팎이 판연하게 두 길로 갈라져서 미세한 것까지도 상청(上聽) 관유(關由)를 띄우지 않는 것이 없습니다. 보필하는 정승이 단지 문서와 전례(典例)에만 힘쓰는 사이에 치밀한 곳은 너무 치밀하고 소홀한 곳은 너무 소홀하게 됩니다. 원하건대, 먼저 그 체통을 세워서 임무를 맡기고 그 성과를 다지소서.

1. 은택(恩澤)을 아껴서 재용(財用)을 절약하는 일입니다. 가만히 보건대, 귀근(貴近)한 집에 하사를 하시는 것이 너무 지나쳐서 척리(戚里)와 부마(駙馬)의 예장(禮葬)이 지나치게 중첩되는데도 금석(金石)의 법전대로 않는 것이 허다하고, 전물(奠物)의 하사도 너무 어지러우며, 의문(醫問)의 명이 주가(主家)의 어린 손자에게까지 미치는가 하면, 약물의 급여가 종전의 갑절이나 됩니다. 원하건대, 일체 정지하고 시행하지 말게 하소서.

1. 집수(執守)055) 를 굳게 하여 건강(乾剛)056) 을 세우는 일입니다. 가만히 보건대 무릇 정무와 계획에 있어서 입대한 여러 신하가 한 가지 일을 가지고 그것이 적당하다고 말하여 시행하기를 청하면 전하께서 이미 윤허하셨다가, 그 뒤에 그것이 적당하지 못하다고 말하여 고치기를 청하면 전하께서 또 윤허하십니다. 어찌하여 그 이해[利病]와 편부[便否]를 당초에 잘 헤아리지 못하고 일정한 주간을 굳게 잡지 않으셔서, 그 정령(政令)으로 하여금 백성에게 믿어지지 않게 하십니까?

1. 호오(好惡)를 공정히 하여 조정 분위기를 화목하게 하는 일입니다. 보건대 오늘날 조정의 논의가 결렬된 것은 처음에 노성(老成)한 선진(先進)과 연소(年少)한 사류(士流)들의 주장하는 의논이 각기 다름으로 인해 감정과 의사가 서로 막히게 되자 갈수록 격화되어 이 지경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성명(聖明)의 호오가 치우치고 의노(疑怒)가 앞서므로, 조회를 하는 자리에서 혹은 남의 흠을 지적하여 문득 주상께 계문하게 되어 주상의 윤허하시려는 길을 막고 공론의 불쾌한 사단을 일으킵니다. 신은 참으로 이를 개탄하는 바입니다.

1. 언로(言路)를 넓혀서 직기(直氣)를 기르는 일입니다. 오늘날의 대각(臺閣)이 군상(君上)의 잘못은 말하기 쉬워하면서도 재상의 과실을 논하기는 어려워하니, 군상의 잘못을 말한 죄는 가벼워서, 군덕(君德)의 결함을 논할 것 같으면 전하께서는 일찍이 간하는 말에 따르지도 않았습니다만 또한 중벌을 가하지도 않으시나, 그 말이 한번 재상에게 미칠 것 같으면 그 죄가 매우 무거워서 오래도록 서용(敍用)되지도 않고 정로(政路) 또한 막혀버립니다. 예컨대 근일 박태유(朴泰維)·박태보(朴泰補)·김석(金晳)·최석항(崔錫恒) 등이 바로 그것입니다. 사기가 떨어져서 매번 뒤돌아보고 두려워하니, 늘 포상을 권장하여도 오히려 말하기 어려운 것인데, 더구나 꺾고 저지함이 이와 같으니 누가 다시 허리를 펴고 목을 들어서 전하를 위하여 할 말을 다 하겠습니까?

1. 관방(官方)057) 을 신중히 하여 명기(名器)를 소중히 하는 일입니다. 근래 사람을 선발해 쓰는 것이 순서가 없고 관방이 맑지 않아서 수십 년 전과 비교할 때 그 규범이 크게 어그러지고 있습니다. 관계(官階)가 통정(通政)058) 이면 은대(銀臺)059)곤얼(閫臬)060) 을 당장 역임하지 않는 자가 없으니, 이는 선발을 신중히 하는 뜻이 황폐된 것이며, 시험을 거쳐야 하던 길이 끊어진 것입니다. 근래의 일을 들어 말하더라도 지신사(知申事)는 그 직임이 긴요하여 선발을 신중히 해야 하는데도 관자(官資)는 가당하나 성망(聲望)이 걸맞지 않은 자를 서둘러 의망(擬望)에 넣었고, 【이유(李柚)를 가리킨다.】 대사간(大司諫)은 더욱 높은 선발로 불리는데도 앞질러 후쇠(朽衰)한 자를 뽑았으며, 【황윤(黃玧)을 가리킨다.】 각 갈래로 조용(調用)하는 것이 해마다 더해지고 달마다 불어나서, 내외 각 군문(軍門)의 오래 근무한 자와 의복(醫卜)·방기(方技)·잡술(雜術)의 무리들까지도 6품에 오르지 않는 자가 없어서, 다 같이 벼슬길이 트였으나 이들은 이미 군현(郡縣)에 수령으로 나갈 수도 없고, 또 옮길 만한 다른 길도 없어서 여기에서 임기가 차면 저기로 서로 바꾸니, 각 관사마다 쌓이고 넘쳐온 것이 벌써 여러 해입니다. 해조(該曹)로 하여금 일체 아울러 사정(査正)하도록 하소서.

1. 탐오(貪汚)함을 바로잡아서 민곤(民困)을 푸는 일입니다. 근래 안으로는 경재(卿宰)의 반열에서 관절(關節)061) 이 공공연히 행해져서 뇌물 보따리가 낭자하게 오가고, 밖으로는 관찰사와 수령이 오로지 사욕만을 일삼아서 짐바리가 이어지는가 하면, 곤수(閫帥)062) 및 각 아문의 둔장(屯將) 무리까지도 더욱 방종하여 군민(軍民)에게서 박탈하여 크게는 집을 일으키고 작게는 재산을 늘리며, 또 그 한가한 틈을 타고 권귀(權貴)한 자의 집에 몰려가서 영진(榮進)할 계책을 하니, 이는 다 민생의 고혈(膏血)입니다. 백성이 어떻게 곤핍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지금 국가가 팽아(烹阿)의 솥063) 을 설치하지 않아서 간혹 적발이 되어도 가벼운 귀양에 그치고, 중론(衆論)이 다 같이 아는 자일지라도 청직(淸職)에 버젓이 발탁되면, 이에 저촉되었다 하여도 누(累)로 여기지 않으니 무슨 방법으로 징계하고 두려워하게 하겠습니까? 바라건대 장률(贓律)을 거듭 엄중히 하고, 또 청백리(淸白吏)를 뽑도록 명하시어 이를 격려하고 권장하는 방도를 다하게 하소서.

1. 염희(恬嬉)064) 를 경계하여 서적(庶績)을 일으키는 일입니다. 우리 나라 선비의 기풍이 본래 부화(浮華)한 면이 많은데 근일에 이르러 그 폐단이 더욱 심해져서 대관(大官)이나 소관(小官)이나 모두 그 세월만 허비하며, 잠시의 회합으로 문서나 조금 정리하고는 물러가 처자들을 상대로 느긋하게 스스로의 편의를 취한 채 나라일은 다시 생각에 두지 않으며, 또 놀이와 잔치를 다투어 숭상하고 사치가 풍조를 이루어 토목의 공사를 수없이 일으켜서 높은 제택에다 깊은 못들을 파곤 합니다. 이것이 비록 뭇신하들의 죄이기는 하나, 신은 성명(聖明)의 여정(勵精)에 부족함이 있어서 위에서 경계하지 못함이 있지 않은가 합니다. 가만히 들으니 근일 정사에 근면하심이 점점 처음과 같지 않아서 공사(公事)를 돌려서 내리실 때마다 지연된다고 합니다. 바라건대 전하께서는 조금도 게을리함이 없도록 뭇신하들을 신칙하여 그럭저럭 세월만 보내는 풍습을 통렬히 개혁토록 하소서."

하니, 답하기를,

"간곡한 경계와 가르침이 절실하고 지극한 논의가 아닌 것이 없다. 너의 나라를 걱정하고 임금을 아끼는 그 성의가 매우 가상한지라 어찌 깊이 생각하지 않겠느냐? 소(疏) 가운데에서 지적한 각 갈래의 외람되고 잡스런 것들을 혁파하라는 한 조항은 해조(該曹)로 하여금 품처(稟處)케 하겠다."

하였다. 이조에서 그 일이 관방(官方)을 변통하는 데 관계된다 하여 묘당(廟堂)과 의논하기를 청하니, 묘당에서 복주(覆奏)하여 청하기를,

"이제부터 서울 각 관사(官司)의 당하관으로서 임기가 찬 자는 임기가 찬 수령(守令)의 규례에 의거하여 개차(改差)하고, 녹사(錄事)·산원(算員)·율관(律官)의 무리는 그 재예(才藝)를 일컬을 만한 자를 가려서 조용(調用)하여 부추겨 권장할 수 있는 바탕으로 할 것이며, 삼의사(三醫司)065) 의 잡직은 본 아문(衙門)의 6품 이상의 관직을 지낸 자에게 동서반의 실직(實職)을 제수하되, 이때에 모두 처음 입사(入仕)한 예에 따라 일일이 수교(受敎)066) 에 의거하여 시행케 하고, 또 그 가운데 품수(品數)에 따라 벼슬자리를 옮기는 자는 옛 규정에 의거하여 시행할 것이며, 각 군문(軍門)의 오래 근무하여 자리를 옮겨야 할 자는 도목정(都目政)을 임시하여 시재(試才)나 시강(試講)을 시행하여 그 가운데 인품이 용잡(庸雜)하고 문벌이 비천(卑賤)한 자는 해조로 하여금 자세히 살펴서 취하거나 버리도록 하게 하소서."

하니, 임금이 옳게 여겼다.


  • 【태백산사고본】 19책 17권 7장 B면【국편영인본】 39책 60면
  • 【분류】
    왕실-궁관(宮官) / 왕실-사급(賜給) / 정론-정론(政論) / 정론-간쟁(諫諍) / 인사-임면(任免) / 인사-관리(管理) / 인사-선발(選拔) / 사법-탄핵(彈劾) / 재정-국용(國用) / 정론-간쟁(諫諍)

  • [註 054]
    통기(統紀) : 통령(統領)과 강기(綱紀).
  • [註 055]
    집수(執守) : 소신.
  • [註 056]
    건강(乾剛) : 강건한 덕.
  • [註 057]
    관방(官方) : 관리가 지켜야 할 법규.
  • [註 058]
    통정(通政) : 정3품.
  • [註 059]
    은대(銀臺) : 승정원.
  • [註 060]
    곤얼(閫臬) : 병사나 수사.
  • [註 061]
    관절(關節) : 뇌물을 주고 청탁하는 일.
  • [註 062]
    곤수(閫帥) : 병사와 수사.
  • [註 063]
    팽아(烹阿)의 솥 : 탐관(貪官)을 처벌하는 극형을 의미함. 전국(戰國) 제(齊)나라 위왕(威王)이 처음에 모든 지방 정치를 경대부(卿大夫)에게 위임하였는데, 여러 경대부 중 아 대부(阿大夫)가 정치를 가장 잘한다고 예찬의 소리가 날로 들리기에, 사람을 보내어 아(阿) 땅을 살펴보았더니, 실제로는 정치는 가장 못하고 왕의 좌우에 뇌물을 써서 여론을 조작한 것이었음. 그리하여 당장 아 대부를 불러다 가마솥에 삶았다는 고사.
  • [註 064]
    염희(恬嬉) : 직무를 게을리함.
  • [註 065]
    삼의사(三醫司) : 내의원·전의감·혜민서.
  • [註 066]
    수교(受敎) : 임금의 교명.

○癸丑/校理徐宗泰上疏, 以進學立志, 縷縷陳戒, 仍列時弊九條, 一曰, 嚴內治以肅宮禁。 竊聞近日委巷之言, 無不流聞宮掖, 外言旣入, 內言何得不播? 嘗觀暬御近習之輩。 陪侍奉引之際, 頗虧嚴敬之態。 殿下之假色辭, 亦似過於寬恕。 啓寵納侮之漸, 不可不深爲之防。 一曰, 立治體以明統紀。 今宮府內外, 判爲兩途, 微細者, 莫不關由上聽。 輔相只務簿書典例之間, 密處太密, 疎處太疎, 願先立其體, 委任責成。 一曰, 惜恩澤以節財用。 竊見貴近之家, 賜賚踰濫, 戚里駙馬, 禮葬稠疊, 而多非金石令典, 奠床賜給, 亦甚紛紜, 醫問之命, 亦及主家之幼孫, 藥物賜與, 視前倍多。 願一切寢而不擧。 一曰, 堅執守以植乾剛。 竊見凡於政務謨畫, 入對諸臣, 以一事言其便而請行者, 殿下旣許之, 其後復有言其不便而請改之, 殿下亦許之。 何不以其利病便否。 審度於始。 而未有一定之主執, 使政令不信於民乎? 一曰, 公好惡以和朝象。 竊見今日, 朝論潰裂, 始由於先進老成, 年少士流, 秉論各異, 情志睽隔, 輾轉層加, 以至於此。 聖明好惡偏重, 疑怒先着, 端委之地, 或摘罅漏, 輒至上聞, 閉上心開允之路, 致公議不快之端, 臣誠慨然。 一曰, 廣言路以養直氣。 今之臺閣, 言君上之過易, 而論宰相之失難, 言君上之過之罪輕, 論君德闕失則殿下雖未嘗轉圜從繩, 而亦不加以重罰, 其言一及卿宰, 則得罪甚重, 久不收錄, 政路又從而錮之。 如近日朴泰維泰輔金晳崔錫恒等是也。 士氣頹軟, 每多顧怵, 常加崇奬, 猶恐難言, 況摧殘沮抑如此, 誰復有硬脊强項, 爲殿下盡言哉? 一曰, 愼官方以重名器。 近來選用無漸, 官方不淸, 視諸數十年前, 規制大乖。 官通政則銀臺閫臬, 無不卽踐, 愼簡之意荒矣, 歷試之路絶矣。 以近事言之, 知申事任緊選重, 而官資雖準聲望不叶者, 遽爾充擬, 【指李秞。】 諫長尤號高選, 而先取衰朽, 【指黃玧】 各岐調用, 歲增月加, 內外各軍門久勤。 及醫卜方技雜術之類, 無不陞出六品, 俱通仕路, 此等人, 旣不得出宰郡縣, 又無他遷移之路, 瓜滿於此, 相換於彼, 充滿各司, 積有年所。 宜令該曺, 一倂査正。 一曰, 律貪汚以解民困。 近來內而卿宰之列, 關節公行, 苞苴狼藉, 外而監司守令, 專營己私, 輦載陸續, 至於閫帥及各衙門屯將之輩, 尤甚放縱, 剝割軍民, 大而起家, 小而殖産, 又以其餘日, 轃於權貴之門, 以爲營進之計, 此皆生民膏血。 民安得不困乎? 今國家不設烹阿之鼎, 間有現發, 至於輕配而止, 雖其衆論之所共知者, 淸路顯擢, 未嘗坐此爲累, 貪官汚吏, 顧何所懲畏也? 願申嚴贓律, 且命抄擇淸白吏, 以盡激勸之方。 一曰, 警恬嬉以興庶績。 我國士風, 本多浮華, 至于近日, 其弊益甚, 大官泛泛, 小官悠悠, 晷刻之會, 少勞簿書, 退對妻孥, 弛然自便, 國事不復入思, 又競尙遊宴, 侈靡成風, 紛興土木, 第宅高深。 此雖群下之罪, 臣恐聖明勵精, 猶有所欠, 無以警動於上也。 竊聞近日勤政, 寢不如初, 公事回下, 動見淹遲。 願殿下罔敢少懈, 明飭群工, 痛革玩愒之習焉。 答曰: "縷縷誡誨, 無非切至之論。 深嘉爾憂愛之誠, 可不體念? 疏中各岐猥雜者革罷一款, 令該曺稟處。" 吏曺以事係官方變通, 請議廟堂, 廟堂覆奏: "請自今京各司堂下官仕滿者, 依守令瓜滿例改差, 錄事算員律官之類, 擇其才藝可稱者調用, 以爲激勸之地, 三醫司雜職, 經本衙門六品以上職者, 東西班實職除授時, 皆從初入仕例事, 一依受敎施行, 而其中從品數去官者, 依舊規施行, 各軍門久勤應遷者, 都目臨時, 試才試講, 其中人品庸雜, 門地卑賤者, 令該曺詳察取舍。" 上可之。


  • 【태백산사고본】 19책 17권 7장 B면【국편영인본】 39책 60면
  • 【분류】
    왕실-궁관(宮官) / 왕실-사급(賜給) / 정론-정론(政論) / 정론-간쟁(諫諍) / 인사-임면(任免) / 인사-관리(管理) / 인사-선발(選拔) / 사법-탄핵(彈劾) / 재정-국용(國用) / 정론-간쟁(諫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