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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종실록 3권, 숙종 1년 3월 14일 壬申 2번째기사 1675년 청 강희(康熙) 14년

자전이 야대청에서 제신들을 인견하고 복평군 등의 일을 분부하다

김우명(金佑明)패초(牌招)225) 하였으나, 오지 않았다. 임금이 명하여 대신(大臣)과 비국(備局)의 재신(宰臣)들을 인견(引見)하였는데, 허적(許積)·권대운(權大運)과 판의금(判義禁) 장선징(張善瀓)·지사(知事) 유혁연(柳赫然)·병조 참판(兵曹參判) 신여철(申汝哲)·대사헌(大司憲) 김휘(金徽)·대사간(大司諫) 윤심(尹深)·부응교(副應敎) 이하진(李夏鎭)이 모두 와서 모였으나, 오정위(吳挺緯)·오시수(吳始壽)·김석주(金錫胄)는 병(病)을 핑계대고 오지 않았다. 승지(承旨) 정중휘(鄭重徽)가 제신(諸臣)을 인도하여 야대청(夜對廳)에 들어갔다. 야대청은 3년 동안 인접(引接)하는 곳으로 써 왔는데, 방이 한 간이고 마루가 세 간이다. 여느 때에는 인견하면 문짝을 치우고 임금이 방 안에 남쪽을 향하여 자리하였는데, 이날에는 임금이 문을 사이에 두고 마루 밖에 동쪽을 향하여 앉고, 두 환시(宦侍) 조금 아래에 서쪽을 향하여 대신의 자리를 두고, 마루 아래 벽돌 위에 동쪽을 향하여 재신들의 자리를 두었으며, 때가 이미 어두웠으므로 전상(殿上)에는 촛불이 밝게 비쳤다. 대신 이하가 들어가 자리에 가서 부복(俯伏)하니, 문짝 안에서 부인(婦人)의 울음소리가 나므로 비로소 자전(慈殿)이 나와 있는 것을 알았다. 허적이 말하기를,

"이는 무슨 까닭입니까? 신(臣)들은 황공하여 어찌할 바를 모르겠습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나는 내간(內間)의 일을 모르므로, 자전께서 복평(福平) 형제의 일을 말하려고 여기에 나오셨다."

하였다. 권대운이 말하기를,

"이것은 비상한 거동이시니, 신들은 입시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하고, 허적이 말하기를,

"자전께서 하교하시려는 일이라면 신들이 진실로 들어야 마땅하니, 전하께서 안에 들어가 그 울음을 그치시도록 청하셔야 하겠습니다."

하고, 허적이 제신과 함께 당하(堂下)로 물러가 부복하였다. 임금이 문안으로 들어가서 조금 있다가 울음이 그치고, 임금이 문 안에서 나와 앉으니, 제신이 다시 입시하였다. 자전이 말하니 허적·권대운이 자리를 떠서 문을 향하여 부복하여 들었다. 자전이 말하기를,

"미망인이 세상에서 살 뜻이 없어 늘 죽지 못한 것을 한탄하는데, 이제 망측한 일이 있어 선조(先朝)에 관계되니, 대신에게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선왕께서 복창(福昌) 형제를 두텁게 사랑한 것을 외신(外臣)들이 아는 바인데, 궁중에서 예모(禮貌)가 지극히 엄하여 나도 선왕의 지극하신 뜻을 몸받아 차이 없이 대우하였다. 이제 이들이 범한 것은 내가 잘 아는 바이나, 드러나게 되면 죽을 처지에 나아가게 될까 염려되므로, 내가 편의한 대로 처치하려 하였는데, 주상(主上)은 어려서 곡절을 모르신다. 내가 무함한다고 하는 것은 관여할 것도 못되나, 선왕께서 이들을 사랑으로 대우하신 뜻이 장차 헛된 데로 돌아갈 것이므로, 그 판부(判付)의 말을 보고는 곧 선왕의 능 옆에서 죽고 싶었으나, 선왕께서 의지하고 존중한 사람이 영상(領相)임을 돌이켜 생각하였다. 대점(大漸)226) 때에 세자가 어려서 나라의 일을 맡기는 것을 근심하셨는데, 영상이 왔다는 말을 듣고는 기뻐서 나에게 말씀하시기를 ‘수족(手足)이 왔으니, 나는 앓더라도 근심이 없다.’ 한 이 말씀이 지금도 귀에 있다. 이 목숨은 돌볼 것도 못되나, 선왕께서 이들을 친애하여 덮어 주려 하신 것이 도리어 무함으로 돌아가니, 드러내어 밝히지 않고 죽으면 지하에서 선왕을 뵐 수 없을 것이기 때문에, 우선 죽는 것을 참고 대신에게 말하려는 것이다.

주상께서 춘궁(春宮)227) 에 있을 때에는 학문에 부지런하였을 뿐이고 다른 일에 간여하지 않으셨으니, 어찌 내간(內間)의 일을 아시겠는가? 나인 김상업(金常業)은 인물이 본래 변변치 못하다. 인선 대비(仁宣大妃)의 초상(初喪)에 두 왕자(王子)와 복창 형제가 들어와 상사(喪事)를 돌보았는데, 그때에 복창상업이 망측한 일이 있었으나, 나는 병이 위중하였으므로 미처 잘 알지 못하였다. 인선 대비께서 사장(私藏)하시던 기물(器物)을 선왕께서 망극하신 중에 공주(公主)들과 함께 친히 구처(區處)하실 때에 복창도 입시하였는데, 상업의 기색이 수상한 것을 보고 선왕께서 깨닫고 나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보는 곳에서 이들이 뚜렷하게 불안한 기색이 있는데, 뭇사람의 눈이 보는 데에서 드러나게 되면 반드시 복창의 화(禍)가 될 것이니, 이제부터 서로 가까이 하지 못하게 해야 하겠다.’ 하셨으므로, 내가 이 말은 번거롭게 말할 수 없다고 생각하여 늙은 상궁(尙宮)을 불러 분부하기를, ‘상업은 해괴한 거동이 있으니, 네가 잘 살펴야 한다.’ 하였다. 그 뒤에 자꾸 들어와 애써 찾는 기색이 있으므로, 선왕께서 ‘남녀의 욕정은 남이 제지하기 어려운 것인데, 이제 복창의 기색을 보면 큰 근심을 일으킬 것이다.’ 하셨다. 칠석(七夕)의 다례(茶禮)를 대내(大內)에서 설행(設行)하여 친림(親臨)하실 때에, 두 왕자와 복창 형제가 집사(執事)가 되고 나인이 제물(祭物)을 받들어 바쳤는데, 상업복창을 보고는 실색(失色)하고 복창상업을 주시(注視)하느라 제 머리가 돌아가는 것을 스스로 깨닫지 못하였다. 선왕께서 지극히 놀라서 처치 때문에 근심하시므로, 내가 다른 일로 내치기를 여러번 청하였으나, 인선 대비께서 신임하시던 바이므로 차마 문득 내치지 못하였다. 여느 때에 나인은 일 때문에 밖에 나가려면 어필(御筆)로 철패(鐵牌)에 출(出)자를 써 준 후에야 비로소 나갈 수 있는데, 어느날 상업이 병을 핑계대어 욕초(浴椒)를 청하니, 선왕께서 무심코 출 자를 써 주셨다. 그 뒤에 나인이 밖에 나간 것을 치부(置簿)한 것을 보고 물으시기를, ‘나인 김씨가 누구냐?’고 하니, 상궁이 상업이라고 대답하므로, 선왕께서 크게 놀라서 말씀하시기를 ‘이것이 무슨 말이냐? 그 집에 이미 나갔으니, 더불어 상종하여 자식을 낳게 되면 덮어 주기 어려울 것이다. 빨리 불러들이라.’ 하셨다. 안에서 여러 번 불렀으나 핑계대고 오지 않으므로, 선왕께서 별감(別監)을 보내어 무슨 까닭으로 나갔는지 물었더니, 혼전 상궁(魂殿尙宮)이 나가게 하였다 하므로, 선왕께서 상궁을 불러 물으셨으나, 상궁은 모른다고 대답하였다.

선왕께서, ‘버려두고 묻지 않으면 징계되어 두려워하게 할 수 없고, 힐문(詰問)하게 되면 복창을 해치게 될까 염려된다.’고 생각하셨으므로, 우선 대령(待令)하게 하셨으나, 늘 일의 자취가 드러날까 염려하여 나에게 말씀하시기를 ‘대간(臺諫)이 알면 반드시 논계(論啓)할 것이고, 대계(臺啓)가 있으면 나도 구제할 수 없을 것이다.’ 하고, 선처하려고 생각하여 미루어 나가고 결단하지 아니하시다가 문득 승하하시게 되었다. 승하하신 뒤에 상업이 비로소 스스로 들어왔는데, 패란(悖亂)한 말이 궁중을 진동하므로, 내가 망극한 중에 그 분한 것을 금하지 못하였다. 또 복창 형제가 또한 습렴(襲斂)의 집사(執事)로 바야흐로 내간(內間)에 있으므로, 다시 전일과 같은 변이 있을까 염려하여, 주상께 파직하여 내치도록 말하였으나, 주상은 어릴 때부터 저들 형제가 출입하여 함께 놀아서 애정이 도타운데, 그것이 손상될까 염려하여 내 말을 듣지 않더니, 이제는 이런 판부를 내리셨다. 선왕께서 이 일을 보고 덮어주려고 힘쓰셨기 때문에, 이제 와서 도리어 알 수 없는 일로 구함(構陷)한 것으로 돌아가니, 내 마음의 아픔을 어떻게 이르겠는가? 내가 선왕의 뜻을 몸받아 그 죄를 덮어 주려 하는 것도 될 수 없으므로, 안에서 상업에게 힐문하기를, ‘내가 본 일을 네가 감히 속이고 숨겨서 선왕께서 함해(陷害)하신 것으로 돌리느냐? 네가 정직하게 말하지 않으면 형장(刑杖)을 써야 할 것이고, 네 부모도 보전하지 못할 것이다.’ 하였더니, 상업이 낱낱이 정직하게 공초(供招)하였다. 그 말은 이러이러한데 말하기 더럽다. 인선 대비의 초상에 염습(斂襲)할 때에 복창이 의대(衣襨)를 펴고, 저도 옆에 있었는데, 손이 제 편으로 오면 문득 서로 잡게 되었고, 또 나인과 왕자 등 뭇사람이 모인 가운데에서는 뒤에서 치맛자락을 잡으므로 제가 놀라서 피하였는데, 그 뒤에 복창이 저에게 말하기를, ‘나는 연련한 이 있는데 너는 어찌하여 돌아보지도 않고 나를 피하느냐?’ 하여 서로 저항하였으나 마침내 핍박당하였다 한다. 또 서찰을 왕래한 일을 물었더니, 윤여(輪輿)를 배설(排設)할 때에 복창이 쪽지를 떨어뜨렸는데, 글 가운데에는 상사(相思)의 을 극진히 말하였다 한다. 선왕께서 친족을 친근히 하시는 의리 때문에 덮어 주려 한 것이 이제 드러나게 되었으니, 내가 죽어서 모르고 싶다."

하고, 이어서 또 울면서 말하기를,

"모진 목숨이 이제까지 죽지 않고 이런 망극한 변을 당하였다. 그들은 이미 선조(先朝)에서 드러났는데, 지금에 와서 숨기어 마치 선왕께서 함해하신 것인 듯이 하니, 어찌 마음 아프지 않겠는가? 귀례(貴禮)의 일은 눈으로 보지는 못하였으나, 더러운 말이 많이 있다. 지난해 봄 내가 병이 위중하여 거의 죽어 갈 때에 선왕께서 바야흐로 망극하신 중에 계시어, 복창 형제를 시켜 병후(病候)를 알아보게 하셨으므로 밤낮으로 안에 있었는데, 복평이 늘 차[茶]를 요구하여 마시고 나서는 종지를 남겨두었다가 귀례가 찾으러 가면 복평이 말하기를, ‘번번이 차를 찾으면 어찌하여 친히 가져오지 않느냐?’ 하고는 손을 잡아 희롱하자, 귀례가 아주 가까운 곳이라 시녀(侍女)가 많이 있다고 거절하고는 여러번 회상전(會祥殿)의 월랑(月廊)에 가서 만났는데, 억지로 핍박하여 따르게 되었다 한다. 이것은 선왕께서 친히 들으신 것이고 내가 잘 아는 것인데, 이제는 함해하는 것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선왕께서 영상를 대우하신 것으로 말하면 내가 아는 바이거니와, 믿고 존중하는 뜻을 늘 말씀하시고, 그 이름까지 부르며 말씀하시기를, ‘허적이 있으니 나에게는 근심이 없다.’ 하셨으니, 지금 마음을 같이하고 힘을 합하여 어린 임금을 돕고 신료(臣僚)를 살펴서 내가 바라는 바에 어그러지는 일이 없게 하는 것은 오직 영상에게 달려 있다. 그 밖의 입시한 신하들도 누구인들 선왕께서 맡겨 부리시고 선왕의 녹(祿)을 먹은 자가 아니겠는가? 정신이 어지러워 나라의 일에 생각이 미칠 겨를이 없어도 모진 목숨이 이제까지 구차하게 남아 있는 것은 신하들이 어린 임금을 도와서 세상을 태평하게 하는 것을 보고서 선왕께 가서 고하려는 것이었다. 그래서 여러 번 죽으려 하였으나, 참고 죽지 않은 것이다. 대신과 삼사(三司)·비국(備局)의 신하들은 다 내 말을 들었으니, 소견을 죄다 말해야 한다. 이 일이 과연 무함이며 내 이 거동이 지나침을 면하지 못하겠는가? 하늘이 무너지는 아픔을 당하고부터 남을 대할 낯이 없어 시녀가 앞에 있더라도 낯을 들고 싶지 않았으나, 이제 이 일을 당하여 선왕의 누가 될까 염려되므로, 한 몸의 시비(是非)를 헤아리지 않고 신하들에게 한 번 드러내어 밝히고 나서 죽는 것이 쾌할 따름이다."

하였는데, 허적이 일어나서 말하기를,

"자전의 하교는 신들이 감히 듣지 않을 수 없으나, 신들의 말은 감히 자전께 곧바로 아뢸 수 없으니, 각각 생각한 것을 상전(上前)에 아뢰겠습니다. 자전의 어좌(御座)는 벽하나로 막혔으니, 들으실 수 있을 것입니다."

하고, 이어서 앞을 향하여 목이 메어 말하기를,

"신이 늙어도 죽지 않고 이제까지 살아 남았습니다. 자전의 분부가 없으셨더라도 선왕께선 노신(老臣)을 신임하신 뜻은 전에 이미 탑전(榻前)에서 아뢰었으나, 이제 자전께서 대점(大漸) 때에 부탁하신 말씀을 분부하기까지 하시니, 신이 아직도 죽음을 늦춘 것이 더욱 매우 한스럽습니다. 이번의 처치는 과연 마땅함을 잃었습니다. 자전의 분부가 아니면, 신들이 어떻게 이러한 사정을 알았겠습니까? 청풍(淸風)은 다른 사람들과는 다른데, 그 차자(箚子)에 선왕께서 놀라신 바요 자성(慈聖)께서 처치하기 어려워하신 바라고 말하였으니, 신의 생각으로는 이들이 말없이 승복해야 할 것인데, 그 공초한 것을 보면 헛된 말로 스스로 변명하였으니 신은 참으로 괴이합니다. 성상께서 빨리 놓아 주신 것은 경솔함을 면하지 못하므로, 신이 오늘 다시 잡아오기를 굳이 청하여 한나절 동안 힘써 다툰 것이 이 때문이었습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이는 내가 내간(內間)의 일을 몰랐기 때문이다."

하자, 허적이 말하기를,

"내간의 일을 신들은 더욱 모르는 바이나, 이제는 죄상이 드러났으니, 다시 물을 일이 없습니다. 전하께서 용서하려 하시더라도 나라에는 법이 있으니, 법에 따라 처치해야 할 따름입니다. 인선 대비(仁宣大妃)께서 그들을 아들처럼 생각하여 궁중에서 기르셨으므로, 기르신 은혜가 있는데도 초상에 염습(斂襲)할 때에 감히 망측한 생각을 일으켰으니, 항간의 무식한 사람일지라도 어찌 이런 일이 있겠습니까? 지난 봄 자성께서 편찮으실 때에 복창(福昌) 형제가 안에 들어가 문후(問候)하던 것은 신이 아는 바이거니와, 근심되고 황급하기 그지없는 중에 감히 이런 생각을 일으켰으니, 더욱 몹시 놀랍습니다. 선왕께서는 지극한 덕을 지니셨다 하겠거니와, 친히 이 일을 보고도 바깥 사람들이 알까 염려하여 끝내 덮어 주셨으니, 골육을 친애하신 덕이 이제 와서 더욱 드러났는데, 무슨 털끝만큼이라도 누를 끼칠 일이 있겠습니까? 남녀를 유사(有司)에 붙여 법을 적용하는 외에 다시 무슨 말이 있겠습니까?"

하고, 권대운이 말하기를,

"자전의 분부가 너무도 명백하신데, 무슨 다시 물을 일이 있겠습니까?"

하고, 장선징(鄭善瀓)·김휘(金徽)·윤심(尹深)·이하진(李夏鎭)도 다 말하기를,

"일이 이미 밝게 드러났으니, 법에 따라 처치해야 할 뿐입니다."

하니, 자전이 말하기를,

"그들의 죄상이 이처럼 명백한데, 사사로운 뜻에 끌려서 다만 주상께서 파직하여 내치게 하시고, 그 나인을 죄주어 궁중에 출입하지 못하도록 하게 하셨다. 대왕 대비 전에서도 이 뜻을 아셨는데, 주상께서 어려서 내간의 일을 모르므로, 내 말을 듣지 않으셨다. 내가 생각하건대, 이 일이 이미 드러난 뒤에도 그대로 둔 채 묻지 않으면 궁중이 어지러워지는 근심을 방지할 수 없을 듯하였다. 이 때문에 부친 【청풍(淸風)을 가리킨다.】 에게 알렸으니, 이제 그 차자에 아뢴 것은 대개 여기에 말미암은 것인데, 주상은 남의 말을 믿고 사람을 망측하게 함해한다고 말씀하셨다. 내가 잘 아는 것임에도 주상이 이처럼 의심하시는데, 오늘 대신들이 앞에 있으니, 이때에 말하지 않고 다시 어느 때를 기다리겠는가? 선왕께서 선처(善處)하지 못하시어 오늘의 일이 있게 되었으니, 다시 무슨 말을 하겠는가? 오직 대신에게 어린 임금을 보도하여 나라의 일을 잘 다스리기를 바랄 뿐이다. 그러면 내가 죽어도 한이 없겠다.

선왕께서 늘 붕당(朋黨)의 행습(行習)을 마음 아파하셨으나, 조정하지 못하셨다. 오늘은 영상(領相)·우상(右相)이 같이 들어왔거니와, 대신 밖에 어찌 믿을 사람이 있겠는가? 대신이 그 시비를 밝혀서 공평하게 하려고 힘쓰면, 국가가 태평할 것이다. 나는 효종 때부터 궁중에서 시위(侍衛)하였는데, 효종께서는 재이(災異)를 당할 때마다 두려워하는 뜻이 사색(辭色)에 나타나셨다. 올해에는 홍관(虹寬)·성운(星隕)의 변이 거듭 나타나는데, 어떤 사변(事變)이 있을지 몰라서 근심되고 두렵기 그지없으므로, 번번이 덕을 닦고 행실을 살펴서 하늘을 감동시켜 뜻을 돌리게 하시라는 뜻을 주상께 갖추 말하였으나, 생각이 나라의 일에 미치면 밤에 자지 못하여 촛불을 밝히고 밤새도록 누웠다가 다시 일어나곤 한다. 제신(諸臣)은 모름지기 선왕을 추념(追念)하여 시비를 가릴 즈음에는 밝고 바르게 하여 치우침이 없이 하면 나라의 일을 다스릴 수 있을 것이다. 영상은 선왕께서 깊이 믿으신 바이니, 반드시 저버리지 않을 것이므로 이렇게 누누이 말한다."

하자, 허적이 말하기를,

"선왕께서 이들을 두텁게 사랑하신 것은 외신(外臣)이 아는 바이나, 그 일이 번거롭게 누설될까 염려하여 전하께도 말씀하지 않으셨으니, 이는 참으로 골육에 대한 지극한 정의(情誼)이며 임금으로서의 성대한 일입니다. 무릇 듣는 사람으로서 누구인들 감탄하지 않겠습니까? 오늘의 일은 법에 비추어 처치해야 하는데, 판의금(判義禁)이 입시하였으니, 곧 거행해야 하겠습니다."

하였다 장선징이 말하기를,

"승지(承旨)가 이 뜻으로 전지(傳旨)를 받든 뒤에야 거행할 수 있습니다."

하니, 허적정중휘를 시켜 전지를 쓰게 하였다. 전지에 이르기를,

"복창군(福昌君) 이정(李楨)·복평군(福平君) 이연(李㮒)과 나인 김상업 (金尙業)·귀례(貴禮) 등의 원정(原情)은 정직하게 공초하지 않았더라도, 그 전후의 죄범(罪犯)이 이미 밝게 드러났으니, 해부(該府)로 하여금 법에 비추어 처치하게 하라."

하였는데, 정중휘가 쓰고 나서 한 번 다시 읽었다. 자전이 말하기를,

"후환을 염려하여 안에서 이미 힐문하여 실정을 알아냈으나, 그 죄가 어찌 죽기에 이르겠는가?"

하자, 허적·권대운이 말하기를,

"왕법(王法)은 가볍게 하거나 무겁게 할 수 없으니, 자성(慈聖)께서 선왕의 지극한 뜻을 몸받아서 용서하고 감싸려 하시더라고 될 수 없습니다."

하니, 자전이 말하기를,

"먼 곳에 정배(定配)하는 것이 옳겠다. 죽기에 이르게 하는 것은 내가 차마 하지 못할 바이다."

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사형(死刑)을 감면하여 정배하는 것이 어떠한가?"

하자, 허적이 말하기를,

"자성께서 살리려 하시는 것은 참으로 후한 덕이나, 나라를 다스리는 도리는 법이 아니면 서지 않으니, 단연코 용서할 수 없습니다."

하고, 권대운이 말하기를,

"사형을 감면하는 것은 사은(私恩)이고, 법에 비추는 것은 공의(公議)입니다. 법은 한 나라의 공정한 것이니, 임금이 사사로운 뜻으로 올렸다 내렸다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였다, 허적이 말하기를,

"처치는 이미 정해졌으므로 말을 많이 할 것 없으나, 신이 감히 아뢰지 않을 수 없는 말이 한 가지 있습니다. 변변치 못한 소신(小臣)은 늙어서 사리에 어둡고 재주가 없으므로, 위로 유주(幼主)를 받들어도 보도하는 책임을 다하지 못하나, 오직 공정하기로 마음먹은 것은 신명(神明)에게 보증할 수 있는데, 불행히도 조정에 큰 논의가 있어서 사람이 많이 상해되었습니다. 신이 사복(嗣服)하신 처음에 구습을 버리고 새로워지기를 꾀하시라는 뜻을 아뢴 것은 이 때문입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발인(發靷)전에 경(卿)이 과연 그 말을 하였다."

하였다. 허적이 말하기를,

"복제(服制)의 일은 선왕께서 친히 예경(禮經)을 살피고 정녕히 하문하셨는데, 신하들이 끝내 어겼으니, 과연 그릅니다. 처분(處分)이 이미 정해진 뒤에 이르러서도 만약에 허물을 뉘우치고 스스로 승복하였다면, 또한 함께 탕평(湯平)한 지경으로 갈 것인데, 그렇게 하지 않고 도리어 선왕께서 바로 잡으신 것을 그르다 하고, 전하께서 여러번 매우 배척하셨어도 그들은 끝내 스스로 옳다 하였습니다. 그래서 공의(公議)가 발분(發憤)하여 이미 수죄(首罪)를 바루고, 또 그 변명하여 구제하는 자를 죄주었어도 서로 앞다투어 그리 향하여 가서 죄망에 많이 걸렸으므로, 지금 조정에는 한편 사람이 거의 없어졌으니, 이것이 어찌 신의 본의이겠습니까? 오늘 자전께서 마음을 합하여 공경하기를 책망하시니, 신들은 감읍(感泣)을 금하지 못하겠습니다. 신은 스스로 수상(首相)이 되어 조정하려고 힘쓰나, 나이 젊은 대관(臺官)은 조정하는 대신이라고 희롱하기까지 합니다. 이제 자전의 분부를 받았으니, 신이 물러가서는 신료(臣僚)에게 선포하고, 이제부터 앞으로 당론(黨論)을 일삼는 사람은 신이 들어와 전하께 고하겠으니, 전하께서도 중벌을 베푸셔야 하겠습니다. 신이 고한 것이 있어도 전하께서 죄주지 않으시면 누가 대신을 두려워하겠으며, 두려워 조심하는 것이 있겠습니까?"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그들이 스스로 옳게 여겨 반드시 승부를 겨루려 하니, 어찌 어렵지 않겠는가? 윤가적(尹嘉績)은 내가 써 보려 하였어도 곧 나가서 공박하였으니, 이러하고도 안정(安靖)을 바랄 수 있겠는가?"

하였다. 자전이 말하기를,

"예(禮)를 의논하는 일은 선왕께서 명백히 결단하신 것을 내가 아는 바이지만, 그 가운데에 혹 과격한 논의가 있다면 대신이 살펴야 한다. 나이 젊은 사람은 깊은 생각이 없더라도, 대신이 마음을 합하여 서로 공경하면 진정할 수 있을 것이다."

하자, 허적이 촛불을 가리키며 말하기를,

"오늘 촛불을 밝힌 아래에서 친히 자전의 분부를 받고, 신도 생각하는 것을 대략 아뢰었으니, 노신(老臣)이 만약에 친척·고구(故舊)를 위하여 전하를 속이는 자가 된다면 이 촛불과 같이 될 것입니다."

하였다. 임금이 자전의 분부를 신료(臣僚)에게 포고(布告)하라고 명하니, 허적이 말하기를,

"분부대로 선포(宣布)하겠습니다마는, 근래 나이 젊은 사람들은 늙은 사람을 업신 여기는 버릇이 있어서 늙은 사람의 말은 전혀 듣지 않으니, 이 때문에 어렵습니다."

하였다. 신하들이 각각 자리에 가고, 유혁연(柳赫然)·신여철(申汝哲)이 앞에 나아가 아뢰기를,

"자전께서 물으실 때에 신들은 멀리 앉아서 한 가지도 말하지 못하였으므로, 감히 아룁니다. 법이 근친(近親)에게 행해지지 않으면 나라를 다스릴 수 없으니, 한결같이 대신의 청에 따라 법에 비추어 처치해야 하겠습니다."

하니, 임금이 응낙하였다. 임금이 승지에게 말하기를,

"청풍 부원군(淸風府院君)이 바야흐로 금오(金吾)에서 명을 기다린다 하니, 명을 기다리지 말라는 뜻을 사관(史官)을 보내어 이르라."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2책 3권 8장 A면【국편영인본】 38책 252면
  • 【분류】
    왕실-국왕(國王) / 왕실-궁관(宮官) / 왕실-의식(儀式) / 왕실-종친(宗親) / 왕실-비빈(妃嬪) / 인사-관리(管理) / 사법(司法) / 역사-전사(前史) / 정론-간쟁(諫諍) / 윤리-강상(綱常)

  • [註 225]
    패초(牌招) : 승지(承旨)가 왕명(王命)을 받고 신하를 부름. ‘명(命)’ 자를 쓴 목패(木牌)의 한 면에 부름을 받은 신하의 성명을 기입하여 승정원 하례(下隷)를 시켜 송달함.
  • [註 226]
    대점(大漸) : 임금이 위독하여짐.
  • [註 227]
    춘궁(春宮) : 세자궁(世子宮).

○牌招金佑明, 不至。 上命大臣、備局諸宰引見。 許積權大運及判義禁張善澂、知事柳赫然、兵曹參判申汝哲、大司憲金徽、大司諫尹深、副應敎李夏鎭皆來會, 吳挺緯吳始壽金錫冑稱病不至。 承旨鄭重徽引諸臣而入夜對廳。 爲三年引接之所, 而乃房一間, 廳三間也。 常時引見, 則撤去戶閤, 上御房內南向, 是日則以閤隔之, 上御廳外東向坐, 兩宦侍稍下, 西向設大臣席, 廳下甓上東向設諸宰席。 時已昏黑, 殿上燭光煌煌。 大臣以下入就席, 俯伏閤內。 有婦人哭聲, 始知慈殿出臨也。 曰: "此何故也? 臣等惶恐不知所措。" 上曰: "予不知內間事, 故慈殿欲言福平兄弟之事, 出臨於此矣。" 大運曰: "此乃非常之擧, 臣等不當入侍。" 曰: "慈殿欲有下敎之事, 則臣等固當聽受。 殿下宜入內, 請止其哭。" 與諸臣退伏堂下, 上入閤內。 移時哭止, 上出閤坐, 諸臣復入侍。 慈殿發言, 大運離席, 向閤伏而聽之。 慈殿曰: "未亡之人無意在世, 每以未死爲恨。 今有不測之事, 關係先朝, 不得不言于大臣。 先王之篤愛福昌兄弟, 外臣所知也。 宮中禮貌極嚴, 而予亦體先王之至意, 待之無間矣。 今者此輩所犯, 予所詳知, 若至彰露, 恐就死地, 故予欲從便處之, 而主上幼沖, 不知曲折。 以予爲誣陷, 固不足關, 而先王愛待此輩之意, 將歸虛地。 見其判付之言, 卽欲歸死於先陵之側, 而顧念先王之所倚重者, 領相也。 當其大漸之時, 以世子年幼, 國事靡托爲憂, 及聞領相之來, 喜而謂予曰: ‘手足旣來, 予雖病, 無憂。’ 此言今猶在耳。 此生雖不足恤, 先王之親愛此輩, 而欲爲掩覆者, 反爲誣陷之歸, 若不暴白而死, 則無以見先王於地下, 所以姑忍一死, 而欲一陳於大臣矣。 主上在春宮時, 只勤於學問而已, 不預他事, 安知內間之事乎? 內人常業, 人物本來無形。 仁宣大妃初喪, 兩王子及福昌兄弟, 入治喪事, 其時福昌常業有不測之事, 而予方病重, 未及詳知矣。 仁宣大妃私藏器物, 先王罔極之中, 與諸公主親自區處, 福昌亦入侍, 見常業氣色殊常, 先王覺之, 言於予曰: ‘我所目見之地, 此輩顯有不安之色。 衆目所覩, 若至現露, 則必爲福昌之禍, 自今無令相近可也。’ 予以爲此言不可煩說, 招老尙宮分付曰: ‘常業有駭異擧措, 汝必善爲伺察。’ 厥後再三入來, 有綢繆尋覓之色。 先王以爲: ‘男女之慾, 人所難制。 今見福昌氣色, 必生大患。’ 七夕茶禮, 自內設行, 親臨之時, 兩王子、福昌兄弟爲執事, 內人奉祭物以進, 常業褔昌失色, 褔昌注視常業, 不自覺其首之回也。 先王極用驚駭, 以處置爲憂。 予屢請以他事黜之, 而以仁宣大妃嘗信任之故, 不忍黜矣。 常時內人以事出外, 則以御筆書出字於鐵牌, 然後始出。 一日常業稱病, 請浴椒, 先王無心之中書出字。 其後見內人出外置簿, 問之曰: ‘內人金氏誰耶?’ 尙宮以常業對。 先王大驚曰: ‘此何言耶旣? 出渠家, 與之相從, 而至於生子, 則難以掩覆速爲招入。’ 自內屢次招之, 而稱托不來。 先王遣別監, 問何故出去, 則稱以魂殿尙宮使之出去。 先王招問尙宮, 尙官對以不知。 先王以爲: ‘置而不問, 則無以懲畏, 若至詰問, 則恐害福昌。’ 故姑使之待令, 而常恐事跡現露, 言于予曰: ‘臺諫若知, 則必有論啓。 若有臺啓, 則我亦不能救矣。’ 思欲善處, 而遷延未決, 遽至昇遐。 昇遐之後, 常業始自入來, 悖亂之言, 震動宮中。 予於罔極之中, 不勝其忿。 且福昌兄弟, 又以襲斂執事, 方在內間, 恐其復有如前日之變, 言于主上, 使之罷職放送, 而主上自在幼時, 彼兄弟出入從遊, 情愛篤至, 恐其傷害, 不聽予言, 今乃有此判付。 以先王目覩此事, 務欲掩覆, 到今反爲構陷不測之歸, 予心之痛, 何以爲喩? 予之體先王之意, 欲掩其罪者, 亦不可得, 故自內窮詰常業曰: ‘予所目覩之事, 汝敢欺隱, 歸先王於陷害之地乎? 汝不直言, 當用刑杖, 汝之父母, 亦不得保全。’ 云, 則常業一一直招, 其言如此如此, 言之醜矣。 仁宣大妃初喪斂襲時, 福昌展布衣襨, 渠亦在傍, 手及渠邊, 遽至相握。 又於內人及王子衆會之中, 自後把握裳裙, 渠驚遑躱避。 其後福昌言于渠曰: ‘吾有戀戀之情, 而汝何邁邁避我?’ 相持抵抗, 終見逼迫云。 又問書札往來之事, 則輪輿排設時, 福昌落下小紙, 書中極道相思之情云。 以先王親親之義, 而欲其掩覆者, 今至發露, 予欲溘死而無知也。" 仍且哭且言曰: "頑命至今不死, 遭此罔極之變。 渠輩旣已發露於先朝, 而到今隱諱, 有若先王陷害者然, 豈不痛哉? 貴禮之事, 雖不目覩, 醜言甚多矣。 上年春, 予病重垂死, 先王方在罔極之中, 使福昌兄弟探問病候, 晝夜在內。 福平每索茶飮後輒留鍾, 貴禮往索, 則福平曰: ‘每每索茶, 何不親自持來?’ 仍握手戲之。 貴禮以至近之地, 侍女多在辭之, 乃摟至會祥殿月廊, 强逼見從云。 此乃先王之所親聞, 予之所詳知, 而今乃爲陷害之歸。 至於先王之待領相, 予所知也。 倚重之意, 常常稱道, 至呼其名曰: ‘許積在, 吾無憂矣。’ 卽今同心合力, 裨補沖主, 糾察臣僚, 無有作非, 予之所望, 惟在領相。 其他入侍諸臣, 孰非先王之所任使, 而食先王之祿者乎? 精神荒迷, 不暇念及國事, 而頑命之至今苟存者, 只欲見諸臣協贊幼主, 措世太平, 而歸告先王, 故欲死者數, 而忍而不死耳。 大臣、三司、備局諸臣, 皆聽予言, 宜悉陳所見。 此事果爲誣陷, 而予之此擧, 未免過當耶? 自遭天崩之痛, 無面對人, 雖侍女在前, 不欲擧顔。 今遭此事, 恐爲先王之累, 故不計一身之是非, 欲一暴白於諸臣而後, 死爲快耳。" 起而曰: "慈殿下敎, 臣等不敢不承聽, 而臣等之言, 不敢直達于慈聽, 當各陳所懷於上前。 慈殿御座隔壁, 可以垂聽矣。" 仍向前嗚咽而言曰: "臣老而不死, 至今生存。 雖無慈敎, 先王信任老臣之意, 前已陳達於榻前, 而今者慈殿至以大漸時所囑之語爲敎, 臣之尙遲一死, 尤所痛恨。 今此處置, 果爲失當。 如非慈敎, 臣等何由知如許事狀? 淸風非他人之比, 而其箚以先王之所駭, 憂慈聖之所難處爲言臣意謂, 此輩當無辭就服, 觀其所供, 費辭自明, 臣實怪訝。 自上徑先放釋, 未免率爾, 故臣於今日, 固請更拿, 半日力爭者此也。" 上曰: "此予不知內間事故也。" 曰: "內間之事, 臣等尤所不知, 而今則罪狀現著, 更無可問之事。 殿下雖欲容貸, 國有三尺, 只當依法處之而已。 仁宣大妃視渠輩如子, 鞠養宮中, 有生育之恩, 而乃於初喪襲斂之時, 敢生不測之意, 雖閭巷無識之人, 安有此事? 前春慈聖未寧時, 福昌兄弟入內問候, 臣所知也。 當其憂遑罔極之中, 敢生此意, 尤可痛駭。 先王可謂至德, 親見此事, 而恐外人之知, 終始掩覆, 親愛骨肉之德, 到今益彰, 有何一毫貽累之事乎? 男女出付有司, 用法之外, 更有何言?" 大運曰: "慈敎不啻明白, 有何更問之事?" 善澂夏鎭皆曰: "事旣彰著, 只當依法處之。" 慈殿曰: "渠輩罪狀, 若是明白, 而牽於私意, 只令主上罷職放送, 罪其內人, 使不得出入於宮中。 大王大妃殿, 亦知此意, 而自上幼沖, 不知內間事, 故不聽予言。 予念此事旣發之後, 置而不問, 則宮闈瀆亂之患, 無以防禁, 以此告知于父親。 【指淸風也。】 今其陳箚, 蓋由於此, 而主上乃以信聽人言, 陷人不測爲言。 予所詳知, 而主上致疑若是, 今日大臣在前, 此時不言, 更待何時? 先王不能善處, 致有今日之事, 益復何言? 惟願大臣, 輔導沖主, 善爲國事, 予死無恨。 先王每痛朋黨之習, 而不能調停。 今日領右相同入, 大臣之外, 寧有可恃者耶? 大臣明其是非, 務欲公平, 則國家庶幾太平。 予自孝宗朝, 侍衛宮中, 孝宗每遇災異, 恐懼之意現於辭色。 今年虹貫星隕之變, 層見疊出, 未知其有何等事變, 憂懼罔涯, 每以修省感回之意, 備陳於主上, 而念及國事, 夜不能寐, 明燭達夜, 臥而更起。 諸臣須追念先王, 是非之際, 明正無頗, 則國事可爲。 領相乃先王之所深信, 必不相負, 故如是縷縷。" 曰: "先王篤愛此輩, 外臣之所知, 而恐其煩泄, 亦不言及於殿下, 此實骨肉之至誼, 帝王之盛節。 凡在聽聞, 孰不感嘆? 今日之事, 當按法處之。 判義禁入侍, 宜卽擧行。" 善澂曰: "承旨以此捧傳旨後, 可以擧行。" 重徽書傳旨曰: "福昌君 福平君 , 內人常業貴禮等原情, 雖不直招, 其前後罪犯, 已盡彰露。 令該府按法處之。" 重徽書訖, 申讀一遍。 慈殿曰: "爲慮後患, 自內旣已窮問得實, 而其罪何至於死?" 大運曰: "王法不可輕重之。 慈聖雖欲體先王至意, 有所容護, 不可得也。" 慈殿曰: "遠地定配可也。 若至於死, 則予所不忍。" 上曰: "減死定配何如?" 曰: "慈聖之欲其生者, 實是厚德, 而爲國之道, 非法不立, 斷不可容貸。" 大運曰: "減死者私恩, 按法者公議。 法者一國之公, 非人主所可以私意低昻者也。" 曰: "處置已定, 不須多言。 而臣有一言, 不敢不陳。 無狀小臣, 老昏無才, 上奉幼主, 不能盡輔導之責, 而惟是以公爲心, 則可質神明。 不幸朝有大論, 人多傷害。 臣於嗣服之初, 以棄舊圖新之意, 陳達者此也。" 上曰: "發靷前, 卿果爲此言矣。" 曰: "服制一款, 先王親攷禮經, 丁寧下詢, 而諸臣終始違拒, 果爲非矣。 及至處分已定之後, 若能悔過自服, 則亦可以偕之蕩平之域, 而不此之爲, 反以先王之釐正爲非, 殿下屢加痛斥, 而渠輩終始自是。 於是, 公議憤發, 旣正首罪, 又罪其營救者, 猶且爭相赴蹈, 多抵罪罟。 卽今朝廷幾盡一邊之人, 此豈臣之本意哉? 今日慈殿責之以寅協, 臣等不勝感泣。 臣身爲首相, 務欲調停, 而年少臺官, 至以調停大臣戲之。 今承慈敎, 臣當退出, 宣布於臣僚, 而自今以往, 專事黨論之人, 則臣當入告于殿下, 殿下亦宜施以重罰。 臣有所告, 而殿下不之罪, 則誰肯畏憚大臣, 而有所惕慮乎?" 上曰: "渠輩自是, 而必欲角勝, 豈不難哉? 尹嘉績予欲試用, 而旋出搏擊, 如是而可望安靖乎?" 慈殿曰: "議禮一款, 先王明白決之, 予所知也。 第於其中, 或有過激之論, 則大臣宜察之。 年少之人, 雖無深慮, 大臣寅協, 則可以鎭靜。" 指燭而言曰: "今日明燭之下, 親承慈敎, 臣亦略陳所懷。 老臣若爲親舊地, 而欺殿下者, 有如此燭。" 上命以慈敎, 布告臣僚。 曰: "當依敎宣布, 而近來年少輩, 有侮老之習, 老人之言全不聽從, 以是爲難。" 諸臣各就座, 赫然汝哲進前啓曰: "慈殿詢問之下, 臣等坐遠, 不得一言, 故敢達。 法不行於近親, 則無以爲國。 宜一從大臣之請, 按法處之。" 上唯唯。 上謂承旨曰: "聞淸風府院君方待命于金吾, 勿待命之意, 遣史官諭之。"


  • 【태백산사고본】 2책 3권 8장 A면【국편영인본】 38책 252면
  • 【분류】
    왕실-국왕(國王) / 왕실-궁관(宮官) / 왕실-의식(儀式) / 왕실-종친(宗親) / 왕실-비빈(妃嬪) / 인사-관리(管理) / 사법(司法) / 역사-전사(前史) / 정론-간쟁(諫諍) / 윤리-강상(綱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