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변을 고한 이세직에 대한 국문과 공초
요망한 이세직(李世直)이 무고죄에 걸려 참형에 해당되었는데, 옥중에서 지레 죽었다. 이세직은 공산(公山) 사람인데, 이달 7일 종각(鐘閣)에 난입하여 발로 종을 차고는 형조에 체포 이속되어 치죄를 받았다. 이세직이 인해서 역변을 고하는 말을 하자 형조가 보고하였는데, 드디어 대신과 원임 대신, 의금부 당상, 양사의 장관을 명패로 부르고 또 문사 낭청(問事郞廳)을 차출했다. 그날 밤 내병조(內兵曺)에서 국문하자, 이세직이 공초하기를,
"본래 풍수(風水)를 업으로 삼았는데 청주(淸州) 남면(南面) 주성(酒城) 근처에 좋은 집터가 있다는 말을 듣고 찾으려고 하였습니다. 8월 15일 청주의 가암(加巖)에 도착하였는데, 그 마을에 사는 배상준(裵尙俊)·배상율(裵尙栗) 등을 실로 우연히 만났습니다. 그때 배상준이 자기 집터를 보아 줄 것을 청했으므로 서로 이야기하던 중 배상준이 ‘연속해서 흉년이 들어 앞으로 백성들이 모두 죽게 되었다.’면서 무도한 말을 많이 하였습니다. 또 말하기를 ‘만약 몇 년이 지나면 초목만 남을 것인데 이러한 같은 때에 지리(地理)를 해서 무엇에 쓰려는가.’ 하였습니다. 또 8월 10일 송 정승(宋政丞)의 집에 갔는데 그곳에 충청 감사 이홍연(李弘淵), 충청 병사 서 감사(徐監司), 통제사 구씨(具氏)가 와서 모여 있었습니다. 가만히 마루 밑에 엎드려 들으니, 9월 27일 아침에 서로 모여 서울로 들어가자고 약속하였습니다. 그런데 이홍연이 말하기를 ‘9월 25일 새로 번 서는 어영군을 직산현(稷山縣)에서 점고할 때에, 이들을 수합하여 상경하게 되면 군병이 부족하지 않을 것이다. 서 감사는 꼭 금천(衿川)에서 기다리라.’ 하였습니다. 이홍연이 또 말하기를, ‘기상을 두고 말한다면 송 정승을 왕으로 세워야 할 것이나 후사가 없고 양손(養孫)이 있을 뿐이며, 송 판서는 친손자가 많이 있으니, 어떻게 해야 되겠는가.’ 하고, 또 도읍을 신도(新都)로 옮길 일을 말하였습니다. 이런 말을 듣고 일의 낌새가 급박하였으므로 올라와서 고한 것입니다."
하였다. 국청이, 그의 말이 혼란하여 문자로서는 진달할 수 없다고 하여, 직접 뵙도록 해 줄 것을 청하였다. 이에 상이 불러 보고 물었는데, 허적이 아뢰기를,
"국문할 때에 말이 매우 조리가 없을 뿐만 아니라 어긋나는 단서가 많았습니다. 더구나 공초한 내용 중에 말한 송 정승 집에 모여 의논하였다는 말은 더욱 혼란합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어제 이 일을 보고 나도 모르게 한심스러웠다. 인심이 이 지경까지 나빠졌단 말인가."
하였다. 허적이 아뢰기를,
"그의 말에 송시열(宋時烈) 집에 모였던 날 몰래 마루 밑에서 들었다고 하였는데, 들으니 송시열 집에는 마루가 없다고 합니다. 그의 말이 허망하다는 것을 여기에서 알 수 있습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그의 말투를 살펴보건대 혹시 사주한 자가 있지 않은가?"
하자, 허적이 아뢰기를,
"가령 인사를 아는 사람이 시킨 것이라면 어찌 이 지경에 이르겠습니까. 이는 공을 바라고 갑자기 한 말이 분명합니다."
하였다. 집의 신명규(申命圭)가 아뢰기를,
"그의 말을 들어 보니 필시 실성한 사람일 것입니다. 발로 종을 찬 것을 보아도 그가 정신 나간 사람임을 알 수 있습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그가 혹 배가(裵哥)와 본래부터 원한이 있다가 종을 친 김에 모함하는 꾀를 부리려고 했던 것인데, 일이 중대해지자 갑자기 이 한 가지 말을 만들어낸 것이 아닌가?"
하자, 허적 등이 모두 성상의 하교가 지당하다고 하였다. 급기야 배상준 등을 잡아왔는데 이세직과는 본래부터 모르는 사람이라고 공초하였다. 국청이 먼저 이세직에게 배상준의 용모와 집이 어떻게 생겼느냐고 물었는데, 이세직의 대답이 과연 다 틀렸다. 드디어 얼굴이 비슷한 대여섯 명으로 시험해 보았는데 이세직이 그중 한명을 가리키면서 배상준이라고 하였다. 배상준과 대면시키기에 이르러서는 도리어 진짜가 아니라고 하였다. 배상준이 이에 그가 한 말이 구구절절 사실에 어긋남을 힐난하니, 이세직이 기운없이 머리만 숙인 채 묵묵히 한 마디의 말도 없었다. 여덟 번째 형신을 받은 뒤에야 실토하기를,
"당초에는 배상준의 일 때문에 올라왔습니다. 옥에 갇히던 날 갇혀 있던 죄수 조동지(曺冬之)가 말하기를 ‘이럴 때 역적이라도 일어나면 다행이겠다.’ 하고 또 말하기를 ‘네가 이같이 사소한 일을 가지고 와서 고발하고 죽고 싶느냐. 차라리 대관(大官)을 끌어들여 고발하는 것만 못하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죄수 중에 언서(諺書)를 아는 자가 양송(兩宋)020) 및 이홍연 등을 끌어들일 것을 권했기 때문에 비로소 그럴 마음이 생겨 이런 말을 만들어 냈습니다. 8월 10일 여러 사람들이 모여 의논하였다는 말은 모두 거짓말입니다. 배상준의 일에 있어서는 8월 16일 청주를 지나갈 때에 평소 안면이 없는 연주로(延柱路)의 집에 마침 들어갔는데, 연주로가 말하기를 ‘배상준이 임금께 부도한 말을 했으니, 네가 만약 고변(告變)한다면 반드시 이익이 있을 것이다.’ 하였습니다. 그래서 그 말대로 와서 고발한 것이지 사실은 배상준에게 직접 들은 것은 아닙니다."
하였다. 무고죄로 논하였는데 미처 사형에 처하기도 전에 죽어버렸다. 조동지는 다섯 번 형신을 받고 김백추(金白秋)는 한 차례 형신을 받았으나 모두 바른 대로 말하지 않았는데, 김백추는 곧 이세직이 끌어들인 언문을 안다는 자이다. 상이, 동지 등에게는 사주한 흔적이 두드러졌기 때문에 꼭 깊이 캐보려고 하였으나 이세직이 이미 죽었고 달리 대면시켜 변증할 사람도 없으므로, 모두 형조에 되돌려 보내 각기 그전의 죄목으로 죄주라고 명하였다. 배상준 등은 모두 풀려났고 연주로에게도 묻지 않았다.
- 【태백산사고본】 18책 18권 38장 A면【국편영인본】 36책 675면
- 【분류】사법-치안(治安) / 사법-행형(行刑)
- [註 020]양송(兩宋) : 송시열·송준길.
○己巳/妖人李世直坐誣告當斬, 徑斃獄中。 世直, 公山人, 是月初七日, 闌入鍾閣, 以足叩鍾, 捕屬刑曹治之。 世直因發上變之言, 刑曹以聞, 遂命招大臣原任大臣禁府堂上兩司長官, 又出問事郞廳。 是夜鞫問于內兵曹, 世直供曰: "素以踏山爲業, 聞淸州 南面 酒城近處, 有家基可合之地, 將欲尋得。 八月十五日行到淸州 加巖, 實與其里居人裵尙俊、尙栗等, 偶然相逢。 尙俊請看其家基, 相與談話之際, 尙俊曰: ‘連歲凶荒, 民將盡死’, 因多發不道之言。 又曰: ‘若過數年, 但餘草木, 如此之時, 何用地理爲哉’? 且於八月初十日, 進往宋政丞家, 則忠淸監司李弘淵、忠淸兵使徐監司、統制使具姓人皆來會。 潛伏抹樓下聽之, 則約以九月二十七日朝, 相聚入京。 而李弘淵言: ‘九月二十五日新番御營軍稷山縣點考時, 收合上京, 則兵非不足。 徐監司須留待於衿川云。’ 弘淵又言: ‘以氣象言之, 則宋政丞當立, 而但無後, 只有養孫, 宋判書則多有親孫, 何以爲之乎’。 又言移都新都之事。 旣聞此言, 事機已迫, 故上來以告矣。" 鞫廳以其言語胡亂, 不可以文字啓達, 請賜面對。 上召見問之, 許積曰: "鞫問之時, 不但語極無倫, 且多違端。 況其供辭中所謂宋相家聚議之說, 尤極胡亂矣。" 上曰: "昨見此事, 不覺寒心。 人心之惡, 一至此哉。" 積曰: "渠言宋時烈家聚會之日, 竊聽於抹樓下, 而聞宋時烈家, 本無抹樓。 其言之虛妄, 此可見矣。" 上曰: "觀其語勢, 或者有指嗾之人耶?" 積曰: "若令解人事者敎誘, 則亦豈至此乎? 明是希功卒辨之言也。" 執義申命圭曰: "聽其語言, 必是喪心之人。 以足叩鍾, 亦可知其喪心也。" 上曰: "渠或與裵哥, 素有嫌怨, 欲因其叩鍾, 以售陷害之計, 及其重大而後, 卒辦下一款語耶?" 積等皆曰, 聖敎至當矣。 及尙俊等拿來納供, 以爲與世直, 素昧平生。 鞫廳先問世直, 以尙俊容貌家舍之如何, 世直所答, 果皆相左。 遂以貌似者五六人先試之, 世直指其一人, 認爲尙俊。 及與尙俊相對, 反以爲非眞。 尙俊乃詰其所言之節節違戾, 則世直垂頭喪氣, 默無一言。 受刑八次之後, 始乃吐實曰: "初爲尙俊事上來。 而被囚之日, 獄囚曺冬之謂曰: ‘此時逆賊出, 則幸矣’。 又曰: ‘汝以如此小事來告, 寧欲死乎。 不如引告大官’。 且囚人中讀諺書者, 勸以援引兩宋及李弘淵諸人, 故始爲生心, 做出此言。 八月初十日, 諸人會議之說, 皆是誣罔。 裵尙俊事, 則八月十六日, 行過淸州之時, 適入素昧人延柱路之家, 柱路云: ‘裵尙俊有向上不道之言, 汝若告變, 則必有利’。 故以其言來告, 而實非親聽於尙俊云。" 論以誣告, 未及正刑而斃。 曺冬之受刑五次, 金白秋一次, 皆不輸情, 白秋卽世直所引讀諺書者也。 上以冬之等顯有指嗾之迹, 必欲深治, 而世直已死, 他無對辨之人, 竝命還送刑曹, 各以其前罪罪之。 尙俊等皆得釋, 延柱路亦勿問。
- 【태백산사고본】 18책 18권 38장 A면【국편영인본】 36책 675면
- 【분류】사법-치안(治安) / 사법-행형(行刑)